샘터 사랑방

추석, 서편제

샘연구소 2011. 9. 13. 23:36

추석을 보냈습니다. 태풍이 빗겨가고 작년처럼 또 세종로가 물바다가 되는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오늘 밤엔 보름달도 제법 또렷이 보입니다.

 

명절을 보내며 헤어졌던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쁨, 한 해가 다르게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을 대하는 기쁨,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 그래도 가족의 따스함을 확인하는 기쁨, 맛난 음식들을 괴롭도록 맛보는 기쁨들이 있습니다. 또 한켠으론, 한 해가 다르게 노쇠해가는 어르신들, 이런 저런 차이와 이해타산들로 얽히고 불편한 관계를 확인하는 일, 나 혼자 감당하기도 힘든데 가족까지 챙기야 하는 압박감, 일시에 많은 이들이 먹고 머물러야 하는 뒤에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여성들의 노동, 피곤함과 외로움, 각자 나름대로의 아픔들도 있습니다.

 

차례상을 치우고 텔레비젼에서 영화 <서편제>의 일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1993년에 나온 영화이니까 어언 20년이 되어갑니다.

 

 

아리 아리랑~  얼마나 흥겹고도 슬픈 장면인지요...

이 땅에 있지만 마치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그 무엇도 거리낌없는 노래와 몸짓.

이 장면처럼 가진 것 없어도 없는 사람들끼리 한바탕

신명나게 흥과 한을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의남매의 한과 정이 서로 얽히고 풀리는 자리였습니다.

소리가 매개가 되었습니다.

둘은 뜨거운 포옹도, 애절한 인사도 없었지만

다 표현할 수 없는 세월과 정과 한을 소리로 나누었습니다. 

'해소'가 아니라 '승화'. 내 밖으로 밀어내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품은 채로 뛰어넘는.

진정한 예술, 문화의 힘이 이런 것이 아닐지...

 

일본 전단지

(이상 사진출처: Daum 영화)

 

 

20년 전 처음 볼 때도 이렇게 감동적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감동은 새롭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장면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간직하고 싶은 명품들이었습니다.

 

웅변하거나 큰 몸짓 없이도 자근자근 애간장을 저미는 듯한 그 외로움과 슬픔, 아픔은 눈물을 참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나 유봉과 송화의 대화, 노랫가락, 그 뒤로 펼쳐지는 남도의 풍광들은 더욱 슬프고 아프게 아름다웠습니다.

 

사회사업을 하면서 불편함을 해소하고,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애씁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써서 스스로 외로움과 배고픔, 슬픔,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어떤 숭고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삶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노력한 일들이 참 우습게 보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의문에 빠집니다.

 

가난, 한부모가정, 학습부진, '반사회적 품행장애', 왕따, 주의산만증, 스스로 따돌림 되기 등을 모두 나쁜 것으로 치부하고 내몰려고 하기보다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추구해야 할 무엇을 더 알아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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