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아이들 정신건강

샘연구소 2011. 12. 4. 11:18

학교들을 다니면서 선생님들, 사회복지사들로부터 아이들 정신건강이 나쁘다는 우려를 많이 듣는다.

한 학년에 두어명 정도는 심한 ADHD, 반사회적 행동, 우울증, 충동장애, 분노조절 실패, 높은 공격성, 부모의 알콜릭이나 정신문제, 부모도 우울증, .... 그렇다고 한다.

 

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스스로 깊은 우물 속으로 빠지고 있는 것처럼 아득함을 느낀다.

 

어제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을 어떻게 잘 이해하고 대화할지에 대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장선생님이 나를 소개하시면서 우리학교에도 문제가 심각한 아이들이 꽤 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의 문제는 다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셨다.

나는 또다시 온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득해졌다.

 

학교에서 만난 몇몇 보건교사, 사회복지사들도 이야기했다.  아이들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데 아무리 담임이, 상담교사가 교장이 만나고 아이 부모까지 불러서 주의를 줘도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한다. 사회복지사가 보자고 해도 아예 복지실에 오지도 않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개의 아이들은 집에서 편안하지 않아 보인다. 부모님은 스스로도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가지고 있다. 부모도 아이도 모두 상처입고 피흘리거나 제 상처를 핥으며 겨우 연명해가는 웅크린 짐승들처럼 보인다. 주변에서 조금만 자극이 오면 금새 이를 드러내고 공격할 수밖에 없는.

 

그런데 이들을 '치유'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대개는 교사의 훈육, 징계, 학교 내 상담, 위센터 등 외부 상담기관 의뢰 등의 절차를 거친다. 

그리고 정신과에서 약을 먹기도 한다.

 

왜 하필 이런 아이들이 가난한 집인지, 왜 할아버지나 엄마가 장애인인 집인지, 왜 부모님 가방끈이 짧은지, 왜 부모님 일자리가 막노동인지 나는 포기가 안 되고 자꾸 묻고 싶다.

왜 아이들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더 죽고싶은지, 학교가 입시공부에 열을 올릴수록, 공부를 왠만큼 하는 아이일수록 더 힘들어하는지, 사랑없이 강압적인 교사가 담임인 반일수록 아이들끼리 폭력이 더 많은지 나는 묻고 또 묻고 또 묻게 된다.

아이들이 교육적 훈육이나 징계, 심리상담만으로 안 되는 걸 다 알지 않나? 나는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은 외부 상담기관에 잘 가지도 않지만 상담센터도 일정이 밀려있거나 아이가 거부하면 애써 아이를 붙잡고 문제와 씨름해주지 않는다.

 

문제가 아이들 우울증이니 ADHD라니 하는 식으로 명명되는 순간 그 뒤의 가정환경이나 교육제도, 정치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더 큰 사회구조의 문제는 사라져버린다.

모든 문제는 아이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고 만다.

 

하지만 당장 아픈 10살짜리 어린이에게 사회구조의 문제를 말하고 분노할 수도 없지 않은가.

실직하고 빚지고 폭력을 휘두르며 우울하고 죽고싶지만 죽지못해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분노하게 한들 어쩔 것인가.

교사들과 구조의 문제를 공부하고 토론하지만 당장 직면한 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각자 바쁘게 살아간다.

......

 

 

안타까움에 몇몇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쉬운 말로 '상담'이다. 개별상담도 있고 집단상담도 있다.

하지만 옳은 표현은 이게 통합적 일반주의 사회복지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네 글자로 사례관리가 아닐까?(사례관리는 학교 외부 기관에 아이 보내고 전화하고 실무자들과 회의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을 집단으로 또는 개별로 만난다.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아이들 요구도 들어주고 직면도 한다. 우리는 솔직하다. 아이들은 후련해한다. 내가 과자 하나 없이 한 시간씩 상담을 해도 나와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기꺼이 와준다. 그 산만하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즐겁게 경청해준다. 고맙다. 나를 번번이 살려준다. 하지만 스스로 알고 있어도 원하는 변화가 그리 쉽게 빨리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노력중이다.

 

담임교사도 만나고 과목에 들어가는 교사들과도 회의를 한다. 우리는 팀원이 된다. 실제로 변화의 추동체는 내가 아니라 바로 늘 아이들을 만나는 이분들, 교사들이다. 아이들을 관찰하고 격려할 기회를 만들어드리고 아이들의 기대와 감사도 전한다. 어떻게 할지 학교 전체 속에서 고민한다. 내년엔 '터가 나쁜' 교실 자리를 특활교실로 바꾸자는 제안도 내고, 학년초에 복지실 기획으로 학급프로그램을 모두 다 하게하자는 제안도 한다. 사회복지사가 아이들 관심과 흥미를 살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참여시킬 공모도 한다. 그러기 위해 지역의 대학과도 연결하기로 한다.

 

부모님도 만나고 가정방문도 한다. 가족치료(가족상담)가 필요한 집안도 있다. 여기부터는 학교가 어디까지 개입할지 고민을 해야한다. 돈 문제도 걸린다. 함께 고민한다. 참 안 됐다. 크게 바뀔 수는 없지만 지금 사는 모습에서 어떻게 조금씩 꼼지락거릴 수 있을지 계기(이벤트)도 마련하고 억눌리고 왜곡되어 있던 아이에 대한 사랑의 욕구도 다시 일으켜세워준다.

 

더 나아가 지역교육청 프로젝트조정자와 지역 기관단체들과 주민들의 삶을 살피고 지역을 변화시킬 꿈을 꾼다. 광역교육청 담당자들이나 교육감에게도 건의하고 고민한다. 교육계 내의 다른 사업들, 다른 정부부처 유관사업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그들도 만난다.

 

그리고 이런 만남과 고민들이 다시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로 이어진다.

 

 

초창기 사회복지사들이 학교에서 활동하면서 '학교사회복지'라는 분야를 열어갈 때 이런 일을 다 해야하는 것으로 배웠다. 그래서 대학원이상 재학생이 실습을 받았고 실습기간도 1년에 걸쳐 이수를 하면서 학교의 1년 흐름을 익혔다.

이제 교육복지사업을 하면서 지전가가 이런 일을 다 할 여가가 없다. 하지만 3년만 지나고 나면 프로그램들을 교사들과 분담하면서 지전가도 비로소 '아이들이 보인다'고 말한다. 진정한 학교사회복지사로 거듭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개입도 어느 정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회복지를 배운 사람이 상담을 안 배웠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어떤 교장은 상담은 무조건 위클래스 보내야지 왜 지전가가 상담을 하냐고 하시기도 한다. 상담의 의미부터 되새긴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지역사회에 사회복지의 개입실천이든 통합적 상담이든 제대로 배우신, 더 훌륭한 분들이, 이런 활동비로, 이런 외진 지역에, 아이들과 교사들 편한 시간에, 아이를 힘들게 하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를 전체로 보고 협력하고 변화도 시키면서, 최소3개월 이상 끈질기게 붙잡고 해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상담하다가 사진 찍자고 하니 신나서 온갖 포즈를 잡았다.

얼굴 안 보이는 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