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ADHD 문제아?

샘연구소 2011. 11. 23. 17:15

오늘 어느 초등학교에 복잡한 폭력적 학생 문제로 회의에 다녀왔습니다.

이 아이는 10살(3학년)인데 입학때부터 종종 선생님, 친구, 행인, 노인을 가리지 않고 거친 욕설과 폭력을 마구 퍼부어서 모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친구와 다투다가 심하게 상처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부산하고 거친 행동을 하면 교사는 부모를 불러서 정신과 상담을 권유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진단을 하고 대개 약물처방을 해줍니다. 그리고 더 추가할 때는 해당 정신과나 소개하는 상담센터에서 개별/집단 상담을 받게 됩니다. 이 모든 일에는 치료비가 부과됩니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ADHD라고 부릅니다. 이 아이의 경우는 주로 충동성과 공격성 등 화나는 상황에서 자기를 자제하는 일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 아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정신과에서 약도 먹고 있고(무려 하루 세번, 한번에 2~4알씩), 상담센터에서 엄마와 아이가 집단상담/치료도 받고 있다고 하네요. 학교는 아이가 약먹고 상담받는다니 그냥 제껴두었지요. 병원은 병원대로, 상담소는 상담소대로 진행할 뿐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가정 안의 역동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엄마는 의사나 상담사와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해 하고싶은 말만 하고 약 타오고 아이를 상담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저 약만 먹이고 상담만 받으면 학교에서의 문제도 없어질 줄 알았겠지요. 그런데 아이는 3년째 문제행동이 줄지 않고 있습니다. 줄기는 커녕 최근에 더 심각해졌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아이를 생각하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 자신은 하루 한 알 약 먹기도 싫어합니다. 보약도 안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만 요즘 갱년기 증상으로 마지못해 약을 하루에 한 번 몇 알 먹는데 정말 싫습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먹습니다. 잘 빼먹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가 하루 세 번 몇 년 동안 수백알의 화학약품(약)을 먹고 있네요. 얼마나 먹기 싫을까요? 아무리 영양제라도 부작용이 따르는 법인데 그건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요?

 

더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본 어린 아이들 중 대개의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개인적인 장애나 성격특성 외에 부모님의 부부관계, 가족 내 화목함 등에서 필요한 욕구를 얻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옳은 먹거리, 편안한 수면, 가족의 친밀감과 안전감, 사랑, 존중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이 어떻게 충족되고 있는지를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속의 '화(분노)'는 대개 여러 욕구 중에서도 사랑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 때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무시, 억압, 차별, 조롱, 비난, 그리고 폭력에 무기력하게 노출될 때 우리는 마음 속에 '화'라는 불을 키우게 되니까요.

 

어쩌면 오랜 정신과 약물치료와 심리상담 외에 정말 이 아이의 영혼은 자신도 모르면서 속 말로 "나는 불안하고 두려워요.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너무나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요. 내 존재의미를 알고 싶어요. 나는 과연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우리 엄마 아빠 좀 변화시켜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로 인해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가족, 선생님 모두가 또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전학시키는 것, 교사가 물러나는 것이 능사가 절대로 아니지요. 다행히 아이가 사춘기를 맞기 직전입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치유하고 아이가 교육의 기회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아이의 엄마, 담임선생님, 학년부장선생님, 관심있는 다른 학부모님, 교감선생님,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과정은 진정으로 그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힘을 모으는 쪽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아이 엄마와 학교가 구체적으로 취할 행동들을 조언해드리고 확인했습니다.

 

1. 아이에게 기존에 진행되는 치료를 서로 연계하고 모니터링, 조정하는 기능을 학교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하시기로 했습니다.(주사례관리자 역할)

2. 엄마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의 역동을 새롭게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가족치료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가족치료)

3. 아이는 기존의 치료들을 계속하되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 정기적으로 학교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학교 안에 중요한 지지적 성인 만들기, 통합적 지속적 개입, 일상적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 보듬어주기) 

4. 학생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서로 화해할 수 있는 특별한 집단경험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쏘시오드라마 방식을 알아보고 있고 부모님도 동의하셨습니다.(공동체 회복)

5.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유능감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연수도 하기로 했습니다.(교사 , 학부모 인식과 행동변화) 

6. 마지막으로 이 문제는 하루 이틀 묵은 게 아니니만큼 개입 기간도 최소 6개월 정도로 길게 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같이 협력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이를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해서 학교 안의 교사와 학생, 다른 학부모들, 그리고 그 아이의 가정, 병원과 상담소 등이 함께 손을 잡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에 사회복지사가 일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제 곧 겨울방학이 됩니다.

방학동안 아이들은 또 쑥쑥 자라겠지요. 나쁜 습관이 더 고착화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부모들은 이 아이와 한 반이 된다면 전학을 시키겠다고 한답니다. 아이들도 모두 두려워한답니다.  오늘은 겨우 시작입니다. 하지만 좋은 시작입니다. 내년에 새봄의 움이 터 올 때, 다시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학교사회복지사와 전화와 이메일로 여러번 고민을 듣고 조언하고 계획을 세우는 등 깊은 논의, 그 과정에서의 저의 고민과 판단, 결단, 그리고 오늘 시간을 내어 먼 곳의 학교에 찾아가서 가진 모임자리까지 사실 바쁘고 피곤한 중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참 놀라운 보상을 받았습니다. 학교컨설팅비요? 그런 거 있나요? ^^

 

더 좋은 것이랍니다.

마침 이 학교 텃밭에서 오늘 배추를 뽑아서 온 학교가 김장을 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 학교 선생님과 보건선생님이 '공모를 해서' 배추 몇 포기와 무우를 담아주셨습니다. 이런 컨설팅비 받아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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