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강원도 양구

샘연구소 2012. 3. 22. 11:17

강원도 양구에 다녀왔습니다.

 

2010년인가 2011년부터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교육지원청에 프로젝트조정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교원업무경감 차원에서 도교육청에서 모든 사업학교에 교육복지사(지역사회교육전문가)를 배치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업 계획서 컨설팅 및 관계자 연수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아직 코끝이 싸한 아침 7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홍천을 거쳐 가더군요. 몇 명 없던 승객 대부분이 홍천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금세 떠나는 줄 알고 앉아있었는데 기사님이 담배를 피우다말고 올라와서 "10분 후에 출발하겠습니다."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부랴부랴 바람도 쐴 겸 화장실을 가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서 두리번거리니 다른 기사님이 화장실 저쪽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조촐한 시외버스 터미널 안에 기다리는 승객은 몇 없고 화장실을 막 치우고 나온 청소 아주머니, 그 옆에 가게 지키는 아주머니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나도 모르게 서울에서 잔뜩 긴장하고 움츠리고 있던 마음이 솔솔 풀립니다.

홍천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습니다. 이제 버스엔 저 외에 할머니 한 분, 할아버지 한 분, 그리고 멋진 썬그라스를 낀 젊은 기사 이렇게 넷 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EBS TV의 "꼬마버스 타요" 만화가 떠올라 신이 납니다.

 

버스기사는 70살은 족히 더 되셨을 아버지뻘 되는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목수인 할아버지는 아마 양구 근처의 어느 식당 공사에 가시는 모양입니다. 얼핏얼핏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눈치챌 수 있습니다.

버스가 신호등에서 잠시 섰다 출발하니 갑자기 앞에 앉은 할아버지에게서 세월의 냄새, 노동의 냄새가 훅 밀려옵니다.

가슴이 갑자기 먹먹해집니다.

할머니 둘(저를 포함해서 ㅎㅎ), 할아버지 하나를 태운 버스 라디오에서는 지나치게 명랑한 여자 진행자의 목소리와 요란한 팝송이 울려퍼집니다.

그늘녘엔 아직 얼음과 눈이 그대로입니다. 양지쪽 개천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흐르는 것을 보니 강둑의 땅 밑에서도 개구리, 벌레, 풀뿌리들이 "봄이 왔어? 나갈까? 아니야, 좀더 기다려. 아, 답답해... "이런 속닥임이 들리는 듯 합니다.

 

 

 

 

버스는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달립니다.

저 아래엔 아마도 소양강댐에서 멈춰서 있을 듯한 강물이 모여있습니다. 좁은 길과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보니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옛날엔 저 아래 계곡에 꼬불꼬불 길이 있었겠지? 길 따라 밭도 있고 집들이 있고 아침이면 닭이 울고 개들이 짖었겠지?

그러자니 너무 짧고 쉬워서 읽자마자 외웠던 시가 생각납니다.

 

수몰지구

                                                  - 정기복 

 

 

종국이 아버지 생애의 팔 할이

물 밑에 가라앚아 있다면 이 할은

안개에 녹아 있다

 

 

그렇게 꼬불꼬불 흔들흔들 달려가니 점점 집들이 많아지네요. 이런 산골짜기 오지에 마을이 있구나. 사람이 살고 있다.

학교건물처럼 생긴 곳들이 보입니다. 저렇게 큰 학교가 있나? "산악전투 자신있다"란 간판을 보고야 군대인 줄 알았습니다.

길가 표지판에 '삼팔선로'라는 표지가 보입니다.

 

 

 

버스는 2시간 반을 달려 9시 반 경에 양구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욕 먹으려나? ... ) 내 아들같은 군인들이 고향에 가려고 터미널에 삼삼오오 모여서 있습니다. 나도 주변을 슬슬 걸으며 마을의 냄새와 공기, 분위기를 느껴봅니다. 한 가게에 들어가 교육청을 물으니 비질을 하다말고 나와서 손수 손짓을 하며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양구 버스터미널 주변에 군청, 읍사무소(주민자치센터), 보건소, 교육청, 청소년문화의집... 등이 모두 모여있습니다. '관공서로'입니다.

 

 

 

 

교육청 마당엔 수백년 되었을 커다란 나무가 맞아줍니다.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건물에 들어서니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걸려있습니다.

양구는 우리 한반도 전체를 위도 경도 위에 놓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곳이라고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 인사를 드리고 교육청 프로젝트조정자와 만나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더 알아둡니다.

 

연수에는 교육청 담당자 외에 사업학교에서오신 한 분의 교장선생님, 두 분의 교감선생님, 그리고 담당 부장선생님들과 행정실장님, 교육복지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오전에 사업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강의를 해드리고 오후엔 담당부장 선생님, 교육복지사들과 사업 내용과 계획서에 대해 구체적인 컨설팅을 한 후 최종적으로 교육복지사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흔히 이런 시골에 가면 자원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다 고만고만합니다. 그리고 연계기관 목록을 보면 헐렁합니다.

저는 교육복지사업이 꼭 무슨 전문기관, 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한 교육복지사업은 마을 사람들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가진 게 돈이면 돈, 재주면 재주, 시간이면 시간, 힘이면 힘을 내어 손잡고 고민하고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계기관, 자원 목록에 동창회장님, 마을 이장님, 학원장님(한 명의 아이라도 학원비를 깎아주거나 면제해준다면?), 가게 사장님(학교 프로그램 때 먹을 거라도 한 번 지원해주신다면?), 약사, 군인회(소질있는 젊은군인들이 아이들과 재주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대화도 한다면?), 심지어 교사회(교총지부면 어떻고 전교조 지부면 어떨까요? 지부사업으로 이런 곳에서 한 두 명의 교사라도 머무는 동안 아이들과 1:1 결연 사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도 들어가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하는 어려운 상담이나 프로그램 보다도 늘 만나는 사람이 좀더 편해지고 좋아지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신나지 않나요?

 

얘기하다보니 선생님들이 참 좋았습니다. 진정한 '선생님의 마음'을 가진 분들로 느껴졌습니다.

교육복지사들도 정말 열심입니다. 힘들었던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몰래 어금니를 꽉 깨물었습니다. 그분들의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바삐 메모하는 손길이 예쁩니다.

하지만 오늘 오지 않으신 몇몇 관리자분들은 이 사업이 무척 하기 싫고 나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모양입니다. 추진담당 교사나 교육복지사들이 무척 힘들어하십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선생님들은 연한이 차면 떠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 춘천이나 원주, 강릉이 집일 것입니다. 손님들이죠. 주민들도 아이들도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

흥미롭게도 교육복지사들은 모두가 양구 주민이면서 네 명중 세 명이 양구가 고향인, 현재 일하는 학교가 모교인 진정한 양구인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이분들이 보배이고 희망이구나 생각합니다.

 

이런 오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서 또는 조금 살 만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 대처 도시로 많이 나갑니다.

그리고 시골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은 묘한 자부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가지고 삽니다. 한참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새로울 것이 없는 작은 이 도시가 답답해서 더 튀어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봅니다. 대처로 나간 이들 중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금의환향보다는 도시에서 찢기고 지친 몸을 의탁하러 돌아옵니다.

 

교육복지사 동지들에게 지금 좀 힘들고 낯설어도 잘 버티시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양구가 고향이고 양구가 생활의 삶터인 양구 사람들, 청소년들에게 좀더 행복한 곳이 되도록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네 자식 내 자식 가리지 않고 함께 마을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마을을 안전하고도 즐겁게 만들고, 학교에 가면 나에게도 무언가 신나는 일이 있고 의뢰할만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시간을 잘못 알아서 터미널에 들어서는 순간에 한 대를 떠나보내고 1시간을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마침 학교를 파한 중고생들이 몰려듭니다. 눈과 귀에 거슬리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흐흐... 녀석들...

 

1년 후, 2년 후에 아름다운 산골 마을 양구에 꼭 다시 가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웃음을 보고 오리라 기대합니다.

양구 교육복지사 여러분, 힘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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