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복지사업 현장방문 컨설팅으로 몇몇 학교들을 계속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 연구소가 속한 광진구에도 교육복지사업학교들이 생겨나서 각별한 관심과 함께 구민으로서 조금이라도 주민생활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컨설팅에 참여하고 있지요. 광진구와 성동구는 성동교육지원청에서 관할하고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기 전 옛 서울의 동쪽 거의 끝까지인 셈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성동구는 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우리집은 영등포 외곽에 있었는데 외할머니의 교육열 덕에 일찌감치 집을 떠나 외할머니와 외삼촌댁과 이모댁을 옮겨다니며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사근동에 살면서 외할머니 손을 잡고 지금의 왕십리 역 주변 철길을 건너 마장동교회 부설 순광유치원을 다니던 일, 마장동 교회 뒤편 천정이 낮고 쥐가 많던 단칸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다닌 동명초등학교 1학년 시절, 이후 2학년 교대부국 시절부터는 주로 이모님 댁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한양대학교 산을 넘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살곶이 다리가 있던 개천변으로 성탄절 새벽송을 돌 때 꽁꽁 언 발을 녹이라고 신발 밑에 빨간 고추를 깔아주신 할머니, 구역예배 때 나온 사탕을 모아두었다가 거룻배를 타고 개천을 건너 지금의 답십리쪽 청계천변 판자촌을 돌며 나를 데리고 어려운 이웃을 방문하신 할머니. 새벽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위하여 "에스더와 같은" 훌륭한 여성지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셨고, 내가 성경말씀대로 짖꿎은 친구들에게 한쪽 뺨을 맞은 후 다른 쪽 뺨을 내어주어 맞고 돌아오자, 미련한 것이라고 크게 화를 내며 야단치신 할머니. 잠시도 놀거나 눕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집 근처 공터에서 야채나 옥수수를 기르시고, 집 안에 앉으시면 성경을 읽으시던 부지런한 노동꾼, 살림꾼. 내가 속옷을 빨 때면 2번만 비누칠을 하라고 옆에서서 감독하시고 빵꾸난 양말 꿰매는 법을 가르쳐주시던 할머니, 이런 할머니 덕에 친구들 중 제일 먼저 두둑한 빨간 내복을 입고 제일 늦게 벗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생리를 시작할 때 손수 천기저귀를 만들어주신 분도 외할머니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집에 다녀온다고 하면 길에 돈을 뿌리고 다닌다며 못 가게 하셔서 나를 울리기도 하셨지요.
당시는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던 시절인데 내가 길눈이 밝았던지 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친구 집들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친구들이 살던 곳은 지금의 신당동 지역인 왕십리시장 주변, 무학중고교 주변, 성동소방서와 경찰서가 있는 번화가, 뚝섬과 성수동까지 넓었었지요. 외갓집이 있는 한양대학교 뒤 산기슭에서 친구들과 개구리도 잡아 구워먹기도 했고, 가을엔 가을걷이한 들판에서 온 동네 사람이 막걸리를 나누며 농악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겨울엔 꽁꽁 언 미나리꽝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썰매를 탔고 넓은 운동장 끝(지금의 행당중) 비탈에서 개궂은 남학생들이 온갖 작은 벌레와 짐승을 잡아와서 여학생들을 놀려주기도 했지요. 외삼촌 댁에 살 땐 사촌오빠가 '달걀귀신'놀이를 좋아해서 숲가에 별채로 있는 뒷간을 갈 때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한양대학교병원을 건축해서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국화빵집이 생겨서 1원에 2개인가 했고 그걸로 어떤 해에는 제 생일축하파티 겸 실컷 사다 먹은 즐거운 추억도 있습니다.
당시 우리학교(서울교대부국)는 지금으로 말하면 선진, 혁신, 명품학교였던 것 같습니다. 넓은 운동장, 뒷뜰의 축사, 가사실습실, 과학실험실, 치과진료실(의사가 가끔 방문하여 치료해줌)도 있었고, 기악연주반과 합창반에 들어가서 열심히 좋아하는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학교에 도서관이 생긴 것입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면서 특히 위인전과 탐정소설 시리즈를 싹싹들이 다 읽어치웠지요. 선생님들도 참 좋으셨는데 단연 2,3 학년 '연구반' 시절의 심경석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그분 말고도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을 존중해주시고 성심과 사랑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런 근면, 성실, 절제, 엄격함과 함께 이웃에 대한 사랑과 실천을 몸소 보여주신 할머니와의 추억,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며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마음껏 미래의 꿈을 키우던 추억이 서린 곳이 왕십리이고 성동구입니다. 학교컨설팅으로 이런 지역을 다니면서 새롭게 옛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어제는 금호동 산동네에 있는 금북초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1968년에 설립한 역사깊은 학교입니다. 작은 학교에 10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다니는데도 부산스럽지 않고 따가운 햇살 속에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학교였습니다. 교육복지사업을 시작한 지 3년차가 되었는데 벌써 안정되게 사업이 잘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계획서도 깔끔해서 지적할 곳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부장님의 브리핑을 들으니 칭찬할 것만 보였습니다. 또 교과부의 사회복지사 활용 연구학교시절부터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회복지사가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있어서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담당 교육과정부장 선생님은 7년째 이 학교에 머물면서 남들이 마다하는 연구학교사업을 맡아 이런 저런 사업을 계속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지역이 재개발로 주민이 줄어도 오히려 학생수가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이 다양한 사업을 학교 교육과정과 운영에 잘 녹여서 열심히 수고하신 결과가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새롭고 풍성한 기회들이 늘어나고 학교가 활기차니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번져서 이사간 후에도, 또 조금 멀리 살거나 행정구역이 다른 곳에 살아도 이 학교를 더욱 더 찾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되기까지 선생님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수고를 하셨을 텐데도 자기를 내세우지도 않고 전혀 고생스런 내색도 비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교육복지사업으로 가난한 아이들이 늘어나서 학교 분위기가 나빠지고 학교 이미지를 버린다며 사업을 반납하겠다고 하신 교장선생님을 보았는데, 사업을 사업으로 여기지 않고 주인된 아이들을 생각하며 교사의 헌신으로 녹여낼 때 이처럼 학생과 부모, 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학교, 가고싶은 학교, 명품학교가 만들어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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