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으로 많은 '가난한'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가?
그렇다. 그리고 아니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많다.
가난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무료로' 경험하고 있다. 그 중엔 스키캠프, 비행기타고 제주도 가보기, 뮤지컬 관람처럼 엄두도 내보지 못할 값비싼 고급문화들도 포함되어 있고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진료비, 가족상담, 그리고 방과후 돌봄과 학습지원 등이 포함된다.
학교가 그동안 나몰라라 했던 가난하고 그래서 공부도 잘 못하고 교사들에게 귀찮은 일거리를(아울러 보람을! 맛보지 못한 교사들도 많겠지만...) 주었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보이고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도 큰 발전이다.
학교의 문턱이 낮아지고 학교가 지역사회 다양한 기관들과 소통하며 아이를 위해 손을 잡게 되었다.
이런 보람과 성과들 덕에 교사들과 사회복지사들이 열심히 기쁘게 일한다. 공교육이 활성화되고 학부모(주민, 시민)들의 행복이 증가했다.
그런데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근거도 많다.
이것은 현재 나타나는 부작용이기도 하면서 앞으로 개선하거나 또는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새로운 발상의 정책대안이 필요함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선별적' 복지제도가 갖는 한계이다. 소위 '집중지원학생'을 가려내어 이들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구조가 갖는 문제점이다. 이미 가난이 사회적으로 수치스런 일이고 비난의 대상이기도 한 시기에 아이 자신의 탓도 아닌데 아이들을 가난한지 아닌지, 얼마나 가난한지 서류로 검사하고 자격부여 과정을 거치는 것부터가 사실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이다. 구청이나 동사무소가 할 수는 있지만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업을 5년 이상 한 학교들은 어떻게 하면 '일반'학생과 '집중지원(가난한)'학생을 자연스레 섞어서 프로그램을 운영할지를 연구한다. 그러나 그래도 아이들은 다 알고, 정책구조가 가진 한계는 너무나 큰 장벽으로 버티고 있다.
어쩌면 이 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정권의 실세들이거나, 교육과학기술부 및 그 산하 직원(교사,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일 수 있다. '집중지원대상' 아이들과 가족을 보라. 그들이 3년째, 5년째, 또는 8년째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집중지원대상'층으로서의 삶은 얼마나 달라지고 풍요로워졌는지.. 이 사업은 다만 아이들이 거쳐가는 초중학교 시절, 학교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마치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지 큰 선심을 제공하는 양 뻐길 일이 결코 아니다. 사실 지금 50세 이상의 어른들은 맨 바닥에서 스스로 힘들게 노력해서 지금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이룬 분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정책이 못 마땅하고, 혜택을 받는 부모를 볼 때 부당하다고 느끼기 쉽다. 그런 감정은 자신도 모르는 새, 학교와 교육청 주변 공기에 퍼져있고 아이들에게도 표현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수치심 또는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한 번, 두 번 겪다보면 사람은 자체 방어기제가 발동해서 소위 '뻔뻔스러워'질 수 있다. 군대에서의 지옥체험, 매맞는 체험, 구걸체험을 해보라. 그래서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기도 하고 사업 내용에 없는 부분까지 지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 '공짜근성'이라고 하지만 선별적 복지제도에서 구조적으로 길러지는 부작용이다. '고마움'을 모른다고 한다. 이는 틀린 말이다. 대개는 고마워한다. 그러나 일부는 실제로 그렇다. 이는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과정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어떤 이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지, 나는 어떤 이에게 고마움을 갖게되는지를 보면 왜 그렇게 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나아가 '집중지원학생'으로서의 경력이 여러해가 될수록, 초등학교시절 지원을 받고 중학생이 되면, 프로그램 참여도가 뚝 떨어진다. 그래서 중학교 교사와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은 아이들 '잡으러' 다니는 일에 큰 수고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 중에는 "나 좀 내버려둬요.", "왜 나만 갖고 자꾸 오라고 해요."라며 반항하기도 하고, "아휴! 선생님 불쌍해서 이번만 참여해줄게요."라고 하기도 한다.
이 문제들을 두고 계속 고민하고 연구한다.
지금까지 내 머리에 떠오른 대안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첫째, 보편적 교육복지 프로그램(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다. 최소한 의무교육(초, 중)에서는 급식비, 수학여행비, 학습재료비, 그리고 진료비 등을 점차 무상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정에서 기초수급권자에서 차상위로 점차 맨 밑바닥 빈곤층부터 수혜계층 %을 늘려나가는 식이 아니라 아이템을 늘려나가는 식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초등 '4학년~6학년 전체' 무상급식->'모든' 초등학생에게 무상급식 ->'모든' 초등학생에게 준비물 제공->'모든' 중학생에게 준비물 제공->'모든' 중학생에게 수학여행비 10만원 지원-> '모든' 중학생에게 수학여행비 전액 지원...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보편적'이다. 학교에서 학생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입증하는 일은 정말로 교사가 할 짓이 못 된다, 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아주 특별한 장학금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편적 교육복지 프로그램을 과감히 확대해나가야 한다.
둘째는 프로그램 운영상의 전략이다. 현재 방과후 학습과 문화활동에 많은 예산이 투여되고 있다. 교육복지 사업에 포함된 프로그램 중 대다수를 이쪽으로 빼서 일반 아이들과 한 가지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 단, 가난한 아이들은 동사무소에서 바우쳐를 지급받게 하거나 이것 역시 꼭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면 일부라도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화해나가는 것이다. 이 때 가난하고 방임되며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겉돌지 않게,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세번째의 대안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서 프로그램의 질도 향상시켜야 한다.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은 학교내영재교육이니 사교육이니 해서 시간당 높은 수당을 받는 강사에게 교육을 받는데 교육복지사업에서는 그 보수가 정말로 '찌질하다(아이들이 찌질한 게 아니다!). 공부 못 하고 가난한 아이들은 무보수의 자원봉사자나 대학생에게 맡기고 잘 살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소중하게 키운다고 하면 어떻게 성과를 거둘 수 있겠나. 가난한 아이들에게 싸구려 써비스 주려면 애초에 이런 사업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셋째, 프로그램은 빠지는 대신 사람을 심어야 한다. 흔히 "문제학생 뒤에 문제부모 있다"고 하고, "어려서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못 받아서 아이가 저렇다"고 한다. 그러니 학교에 문제를 해결해주고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하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주어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집 저집에 아이를 내돌리기 전에 내집에서 아이를 잘 알고, 늘 보며, 의미있는 관계를 갖고, 의미있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 사이의 '다리'가 되어서 네트워커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껏 해오고 있는 일이고 교사가 아닌 전담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직 이 '사람'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인건비가 사업비에 포함되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은 사업비가 축소되면 비중 큰 인건비부터 줄일 생각을 하게 된다. 인건비는 따로 책정되어야 한다. 어차피 사회가 비정규직 판으로 가고 새롭게 일자리를 얻는 대다수가 150만원 이상의 급여를 구하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제도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학교와 사회에서 낙오자나 주변인으로 여겨지는 아이와 가족을 존중하는 일을 하려면 많이 싸워야 하고 큰 내공이 필요하다. 전국에 약 1500개가 되는 학교들마다 그런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나는 많은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학교들이 사업을 잘 하고 있는 것을 안다. 정규직인 교사들이 수고하고 비정규직인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주려고 애쓰는 것을 안다.
그러나 구조적 결함을 해소하는 것은 이제 10년을 바라보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새롭게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계속 이 고민과 대안에 대한 생각들을 '진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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