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 사업 배분심사위원으로 모 기관에 다녀왔다. 20기관을 선정하는데 약 4배인 80개 정도의 지원서가 접수되었다. 1차를 간추려 2배수 정도를 고르고 이것들만 읽는데도 큰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전반적으로 몇 년 전에 비해 사업계획서들이 지역적으로도 고루 분포하고 내용면에서도 일정 수준에 다다른 것 같다. 멘토링이 이만큼 보급되었다는 뜻이다.
몇몇 기관들은 제법 경험도 있고 노하우도 쌓인 것 같다. 문제점을 예상하기도 하고, 수퍼비전 등 안전장치를 만든 계획서도 보였다. 사례관리라는 큰 틀에서 멘토링을 활용함으로써 취약계층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 곳도 있었다. 인문학 강좌처럼 최근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템을 콘텐츠로 구성해서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장애인의 사회적응훈련, 장애인의 자립, 장애가정 비장애 자녀 지원, 탈북가정 학생 지원, 생활시설 아동 지원, 생활시설 아동 퇴소 대비 자립 지원, 결혼이민여성 적응지원, 노인 역량 증진, 노인 생활 적응 지원, 한센병환자 사회통합 지원 등 대상별로도 아주 다양했지만 가장 많은 대상은 막연해도 '빈곤 한부모가정 아동청소년'을 위한 멘토링이었다.
방법도 다양했다. 학습지도, 문화체험, 악기연주 배워서 공연하기, 기술훈련, 검정고시 준비, 정보 얻기, 친구 되어주기 등인데 특별한 배움이나 훈련을 빼고는 막연한 정서적 지지, 문화체험 등이 많았다.
멘토는 단연 대학생이 많았다. 그러나 간간이 노인, 지역주민, 중고생도 있었다. 참신했다.
제목에서 눈에 띄는 것들도 있었다. '건강소녀'라든지, '노노(老-老) 멘토링'이라든지.
멘토, 멘티를 어떻게 모집할 것인지 비현실적인 계획서, 세부 활동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서, 진정한 목적과 목표가 드러나지 않은 사업을 위한 사업처럼 보이는 계획서, 아이들과 멘토링을 기관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듯한 계획서, 멘티의 욕구를 거스르는 듯한 내용과 방법, 실무자의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 보이는 것, 수퍼비전이나 조정 기능이 없는 것, 실제로 추진할 만한 실현성이 낮아보이는 것 등은 제외시켰다.
그러나 며칠 간 지원서를 읽고 생각하고 오늘 회의하고 심사하면서 내내 찜찜한 그 무엇이 있었다. 내가 멘티 당사자라면 그리 개운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나를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예전에 중학교에서 멘토링을 하려고 할 때 몇몇 아이들은 '그냥 장학금만 주시면 안 되요?'라거나 '활동비만 그냥 저 주시면 안 되요?','그 애들이랑 같이 하는 거 하기 싫어요.'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1년간 멘토링을 한 후에 자존감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사례도 많았다.
맨날 그나물에 그밥. 아니, "왜 맨날 나만 갖고 그래요?"라고 할만 하다. 늘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봄이 필요하니, 우리 어른들이 이런 좋은 일을 한다하고 우리끼리 칭찬하고 감동하고 축제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이들에게 정작 어른과 함께 하고 싶은지, 어떤 어른과 함께 하고 싶은지, 무얼 하고 싶은지, 얼마동안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는다. 그리고 잘 안 되었을 경우 A/S도 없다.
내가 본 중 최고의 멘토링은 얼마전 인천학교사회복지사협회 보고회에서 들은 '우리지역지도 만들기'프로그램이었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멘토링'이란 말이 없었다.
고교생들이 멘토가 되어서 장도초 학생들과 함께 회의를 하면서 과업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어른(사회복지사)은 뒤에서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면 지원해주었다. 멍석을 깔아주고 안전하게 넓은 울타리를 쳐주고 지켜보며 격려해주었다. 실적도 성과도 고스란히 아이들의 것이었다.
고교생들이 초등학생 아이들을 '도와'주었나? 아니다, 서로 서로 도왔다. 그리고 둘다 도움을 얻었고 둘다 성장했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지원한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키워주었다.
나에게도 멘토가 있다.
내가 가난해서, 한부모가정 자녀이어서, 문제아이어서가 아니다.
내 인생에서 등대처럼 생각만 해도 등불이 되고, 바라보고 싶고, 나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닮고 싶은 고마운 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멘토링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다.
가난하고 부모님 없는 또는 탈북자, 외국인, 장애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돌봄, 보충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멘토링.
내 이 불편함과 거슬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까칠한 것일까? 더 연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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