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내 학교가 사라진다면?

샘연구소 2011. 9. 30. 00:41

며칠 전 강서구 공진초 학부모님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공진초등학교는 가양대교와 지하철이 지나는 한강변으로 편리한 교통, 아름다운 조망, 주변의 여러 생활시설 등으로 살기에 참 좋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90년 무렵엔 공장도 있고 논밭도 있었는데 개발 초기에 서민층 대상 아파트들부터 들어섰고 공진초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동네가 개발되고 중대형 아파트가 차차 들어서면서 초기에 세워진 4, 5단지 서민아파트단지 동네와 복잡한 심리적 지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좀 살만한 부모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고 거칠다고 생각하고 자녀를 가난한 아이들과 분리해서 기르고 싶어했습니다. 실제로 초창기엔 학생간 갈등과 폭력문제도 심심찮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 개발된 단지에 탑산초가 생겼고 공진초와는 점점 더 딴 세상처럼 분리되어갔습니다. 공진에 다니던 살만한 집 아이들은 전학을 갔고, 4, 5단지 아이들은 다른 선택권이 없어 공진초만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아이들이 많은 공진초가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 대상학교가 되었습니다. 지역사회교육전문가라는 민간 사업 실무자로 학교사회복지사들이 채용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후배이고 동지인 친구들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배려와 교육, 지원이 마련되었습니다.

 

공진초 아이들은 주어진 여건은 비록 많은 '결핍'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학교를 통해 회복되고, 채워지고, 지지되고, 치유되어왔습니다. 뒤쳐지는 친구를 기다릴 줄 알고, 모자라는 친구를 품을 줄 알고, 자신의 상처들을 스스로 보듬으며 밝게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교사수도 줄어들어야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많은 업무를 마다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세워주셨습니다.

교육과정운영 우수학교 서울특별시 교육감 표창, 상서교육청 음악 줄넘기 대회 우승, 서울특별시 지정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특별시 흡연예방학교 우수학교 표창, 강서교육청 과학활동 우수학교 표창, 전국 100대 교육과정 취우수 초등학교 교육부총리 표창, 초등교육발전 실행방안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 학력신장 추진방안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 좋은학교만들기 자원학교 종합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 학교장 평가 S(최상위) 등급 .... 이 모든 수상경력은 공진초의 자랑 중 일부일뿐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학교 교육시설과 다양한 교육기회를 넉넉하게 제공하고 있고 그래서 서울특별시 교육감과 현 교과부장관인 이주호 당시 교과부 차관, 국회의원, 교육장등이 방문했던 자랑스런 학교입니다.  

 

그럼에도 학생수가 계속 줄어서 겨우 전교생이 200명도 안 되는 소규모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학교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 폐교의 부당성과 결정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항의해왔지만 아직 시원한 해결책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아마 폐교되겠지요?

 

저는 어머님들과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우선  어머님들이 아이들뿐 아니라 학교와 마을과 선생님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하며 스스로 성실하게 살고 있는 모습의 연장선에서 호소하고 싸워오신 것에 대해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틀림없이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성숙하고 강해지셨을 것이며 또 지켜보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당당함과 지혜로움, 정의감과 사랑이 더욱 자랐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님들과 상황과 대안들, 예상되는 갈래들을 합리적으로 살펴보고 차분하게 우리의 욕구를 살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은 학교는 좋은 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또 가난한 아이들만 모인 학교의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공진초등학교가 도시속 소규모 학교로서 경기도 혁신학교나 여러 대안학교들처럼 그 특색을 살려서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학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 새로운 단지가 또 신축되면 자연스레 학생수가 불어나게 될 것이고 작은학교의 문제점이 해소되면서 보존해온 좋은 교육적 전통을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힘과 결정력을 가진 분들의 판단에 의해 문을 닫고 현재 재학생들이 탑산초로 옮기거나 일부 좀더 멀리 떨어진 마곡지역 새 학교로 간다고 할 때에는 최대한 아이들의 물리적, 심리적 안전과 복지를 존중하도록 배려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사, 학부모, 그리고 또래들의 보이지 않는 무시와 차별, 편견 등이 예상됩니다. 이를 예방하고 올바르게 통합될 수 있도록 적절한 과정과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공진초에서 꿈꾸어 온 아이들과 또 함께 한 선생님, 학교사회복지사의 추억이 사라질까봐 마음이 아픕니다. 힘겹지만 아름답게 이루어온 교육적 성과들을 잃게 될까봐 더욱 안타깝습니다.

 

어머니들은 삶에, 투쟁에 지쳤을 텐데도 오히려 일부러 먼 길 늦은 시간에 달려간 저를 따스히 맞아주시고 안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곁에서 함께 하는 가양4복지관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찌 되든지, 싸워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아이들, 가족에게, 이웃을 늘 돌보고 배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칫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즐겁고 세련되게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에 끝날 일도 아니지 않아요? 그래서 교육장님 만나러 가실 때 드레스코드도 맞춰서 가보고, 교육위원 만나러 갈 때 방 앞에서 아름다운 노래도 한 곡 부르고 들어가고, '플래시몹'으로 길에서 모르는 척 하고 있다가 일시에 재미난 포즈도 잡아보고 우리끼리 깔깔 웃어도 보아요.

 

그리고 우리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누굴 미워하거나 억울함, 허탈함, 앙심 품지 않고 마음 속 평화를 깨지 않도록 지금부터 마음밭을 지키고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진초 홈페이지에 보니 교장선생님 인사말씀에 예전 그 동네인 공양나루에는 형제간에 우애가 깨질까봐 주운 금덩이를 한강물에 던져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득정도에 따라서 갈라져 이웃이 등을 돌리고 아이들을 갈라세우는 일이벌어졌습니다.

 

공진초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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