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덴마크와 핀란드에 다녀와서

샘연구소 2012. 3. 4. 23:01

북유럽과 대한민국 교육의 '차이’

 

 

 

 

1. 준비

내 여행의 준비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2005년 무렵인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스웨덴에서 오신 분에게 강의를 들었다. 2004년 5월 미국의 학교사회사업 100주년기념 전국 학교사회복지사 대회에서 스웨덴에서 온 학교사회복지사를 사귀었다. 그리고 이후 부산과 뉴질랜드에서 열린 두 번의 세계학교사회복지학회에서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의 학교사회복지사들을 다시 만났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자유롭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씩씩하고 멋스러웠다. 북유럽에서는 사회복지사가 교육계에서 일한지가 30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들과 나눈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몇 가지 있다.

 

 

#1.

나: 거기서는 학교사회복지사의 개입이 효과적인지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나요?

그: 평가요? 그런 걸 왜 하나요? 당연히 아이들에게 좋은 걸 하고 관심가지고 돌보면 다 좋아지는 데 굳이 시간들이고 애써서 남에게 평가를 하는 수고를 왜 해요?

 

아,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평가하느라 보고서 쓰는 시간을 차라리 아이들에게 더 쏟고 싶었다. 유명 교수 모셔다 평가보고서 쓰게 하는 돈을 차라리 아이들과 떡볶이라도 먹으면서 대화하는데 주었으면 싶었다. 우리나라는 불신의 사회. 내부 사정도 잘 모르는 외부인이 단시간에 조사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보고서만을 신뢰한단다.

 

 

#2.

나: 거기는 교사자격증 없어도 사회복지사가 학교에서 일할 수 있나요?

그: 네? (이해 안 됨) 간호사, 상담사, 사회복지사 다 그냥 똑같이 일해요. 모두가 인간발달과 이해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인데 교직을 따로 이수하다니요?

나: 그럼 각자 다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협력이 잘 되나요?

그: 항상 ‘student in the center'의 관점으로 일합니다.

 

아, 우리나라는 teacher in the center 인데... 나 역시 교사였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속상하고 억울할 때가 지금도 많다.

또, 우리나라의 학교는 지금도 ‘교사’ 자격자로 구성된 교원직과 행정직의 두 직제로 나뉜다. 사회복지사나 청소년상담사가 계약직으로 일하더라도 행정직이 된다. 교사와 아이들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해야하는데 행정직이 되면서 정체성도 혼란스럽고 활동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3.

나: 거기도 애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고민도 있고 방황도 할 텐데... 주로 어떤 문제에 개입하나요?

그: 음.. 사소한 문제들은 뭐 비슷할 것이구요. 가끔 자살문제가 생겨요. 주로 사춘기 여학생들이 손목을 그어요. 사회적으로 큰 걱정이지요. 그럼 교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의사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나가요.

 

그래.. 북유럽이 아무리 복지국가라고 해도 먹고 살기가 편하니까 삶에 의미를 못 느껴서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럼 그게 좋은 나라인가? 그냥 가난해도 먹고사느라 ‘죽지못해 사는’ 게 더 나은 건가? 하지만 우리나라도 청소년 사고사 1위가 자살인데.. 고교생 중 30%가 자살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가서 보고 해결책을 배워와야 하나?

 

그러는 동안 PISA 결과를 두고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온통 핀란드 교육 소개로 난리가 났다. 또 정치계를 중심으로 복지국가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떠오르면서 스웨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는 여러 가지 자료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다. 북유럽 복지국가 시스템에 대해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복지국가 스웨덴>(신필균 저, 2011)이고 북유럽 교육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은 <핀란드 00혁명>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책을 읽다보니 점점 더 가서 보고 확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복지국가의 모델인 북유럽에서 시민의 삶이 어떤지,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하며 학교사회복지사로서 배워올 점이 무엇일지 알아보기로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에 대한 것들은 이미 많이 접했으나 덴마크에 대한 자료는 새롭게 구해서 읽었다. 그리고 정병오 선생님의 보고서를 읽고 더 알아보고 싶은 것들을 질문목록으로 만들어 갔다.

 

 

 

교실에서 그렇게 조용히 집중하던 아이들이

체육관엣는 맨발로 무섭게 뛰며 운동을 한다.

 

 

 

2. 북유럽 학교 탐방

막상 가보니 내가 가지고 간 생각을 완전히 깨야했다. 다른 판이었다. 우리나라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학생의 문제를 사회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조정함으로써 해결하려는 ‘학교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제도화하고 전문화하기 위해 무엇을 배울까 했는데 그곳엔 기대와 달리 그런 전문직이 학교마다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가정과 학교, 사회 전체가 너무나 자유롭고 서로 존중하고 책임지고 평등하기 때문이다. 교육청 단위에서 전문 조정팀이 있을 뿐이었다. ‘아, 이게 바로 북유럽식 복지국가로구나!’ 글로 읽고 말로 들어 익숙했던 복지국가의 느낌이 새롭게 나를 쳤다. 나는 재빨리 머리 속을 비우고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느낀 핀란드와 덴마크 교육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이론대로 하는 교육

인간발달이론, 교육학이론에서 배운 것들을 그대로 하고 있다. 즉, ‘어려서는 오감을 통한 전인적 발달이 중요하며 이는 놀이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래서 충분히 놀린다. ‘어려서 춥게 키워야 감기 안 걸리고 튼튼하다.’ 그래서 날씨와 관계없이 밖에 내보내서 놀린다. 더구나 자연환경은 가장 좋은 교육환경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그래서 어려서 도덕심과 사회성을 익히도록 가르친다. 안 되는 것은 일관되게 안 된다. 가르치는 이가 바르고 흔들림이 없다. ‘호기심이 배움의 기쁨을 가져오고 그래야 스스로 발전한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기보다 흥미를 일으킬 수 있도록 연구하고 준비한다. 늦은 아이들이 스스로 기쁨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고 질문하고 격려한다.

발달단계나 심리학적 이해, 교육적 이해에 거스르지 않으니 아이들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사실 ‘학습부진아’, ‘문제아’라는 말도 기준을 정하기 나름이다. 각자의 공부속도대로 하는데 무슨 ‘학습부진’인가. 각자의 개성대로 하도록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고 격려하며 기다릴 뿐, 어찌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니 우리나라에 그 많은 상담사, 학교사회복지사, 성찰교실교사, 배움터지킴이, 순회상담사, 상담자원봉사자.... 들이 별로 필요가 없는 모양이었다.

미래사회에 필요한 중요한 핵심역량인 평화로운 의사소통과 협동 능력, 창의성, 스스로 즐겁게 찾아서 공부하기, 인내심, 다양성의 포용... 그런 것들을 내면화하고 재능을 이끌어내는 것이 성적보다 훨씬 중요했다.

 

 

우연히 전시회에서 사귀게 된 발도르프학교 교사 출신 선생님들과

덴마크의 '프리스쿨' 전통은 공교육을 오히려 리드하며 견제하고 더 풍성하게 한다. 

 

 

 

2) 가치관이 있는 교육

어느 학교에서나 교장이든, 교사이든, 학생이든, 가치관을 강조해서 말했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니까요.”

“그것이 ‘평등’ 아닌가요?”

“어려서부터 ‘자유’와 ‘책임’을 가르칩니다.”

교육은 이상이 있다. 그래서 교육목표를 정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목표를 우리처럼 점수나 진학률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수십년 동안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아니, 모든 시민들이 싸우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확인하고 합의했을 것이다. 사회의 가치관이 교육 속에 녹아든 것이리라.

그런데 여행중 만난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존중’이었다. 교사는 학생을, 학생은 친구를, 학교가 학부모를, 학부모가 교사를, 그리고 외국인 손님인 우리를 ‘존중’하고 있다.

나는 ‘존중’이 성숙한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삶의 기본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다. 나를 무시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차별하고, 억압하고, 왜곡할 때, 나는 화나고 슬프다. 아무리 나를 배려하고 칭찬하고 돕는 것이라도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내 ‘자존심’을 훼손시키는 것은 굶더라도, 아프더라도, 외롭더라도, 죽더라도 거부하고 싶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어리다고, 뚱뚱하다고, 공부가 느리다고, 성적이 나쁘다고, 외모가 튄다고, 돈이 없다고, 여자라고, 서열이 낮다고, 피부색이 검다고, 차별하고 무시하고 억압한다. 이러한 반(反)존중을 없애야 그 위에 자유와 책임,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존중의 문화가 유럽의 개인주의의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자연과 인구밀도, 역사, 종교와 의식 등이 버무려진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기분좋은 부러운 문화였다.

 

 

3) 가족복지의 힘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가족복지의 힘이었다. 가장 부러운 것이다.

아이들이 정서가 안정되고, 예의바르고 질서를 지키며 자기 자신을 통제할 줄 안다. 평화롭게 의사소통하고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한다. 학습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찾아서 공부한다. 모든 교사들이 만나고 싶은 아이들 아닌가?

사실 북유럽 학교의 교사들이 우리나라 교사들보다 그리 훌륭하다고 보지 않는다. 결국 북유럽 교육의 힘은 어려서부터 부모와의 정서적 관계가 탄탄히 되어 있고, 지속적으로 가정으로부터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환경을 누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가정환경은 복지국가라는 거대한 구조로 귀결될 것이다. 출산과 양육과정에서 가족복지제도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빈곤지역 학교들을 주로 다니며 일해왔다. 아이들이 대개 거칠고 산만하고 기본 생활태도가 문란하다고들 한다. 그런 아이들이 교육복지사업으로 밝고 바르게 변한다. 하지만 ‘가난한’ 아이들만을 골라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데서 받는 상처로 인해 기대와 달리 스스로 발전의 기회를 차버리는 아이들이 생긴다.

아이들이 ‘고마움’을 모른다고 탓하기 전에 이렇게 묻고 싶다. 과연 이렇게 골라내서 '혜택‘을 주는 교육복지사업은 인간으로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인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골고루 다 참여하게 하면 안 되나? 무상으로 말이다. 아니, 왜 가난한 집 애들만 유난히 산만하고 거칠고 공부를 못 하는 거지? 그리고 왜 가난한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는 것인지 질문해봐야 하지 않나?

 

북유럽 국가들은 여성 취업률이 거의 100%이다. 그런데 임신하면 누구나 3년까지 유급 휴직을 할 수 있다. 덴마크는 임신하면 그때부터 엄마 통장으로 100만원인가가 입금된다고 하든가? 엄마나 아빠 누구나 출산/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3년 후 100% 복직이 가능하다. 그리고 아이가 아프거나 학교에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직장에서 나올 수 있다. 국가에서 약 30%의 공공임대주택을 싸게 운영하니 평생 돈벌어서 비싼 집 사지 않아도 된다. 국가에서 세금과 연금, 사회보험 등으로 질병, 실직, 노후에 대해 보장을 해주니 죽어라 일해서 나와 자식 위해 저축하고 사보험 들어두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교육비가 무상이고 학교에서는 전인교육 측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며 공부로 경쟁시키고 줄세우지 않으니 가난하다고, 한부모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학력간 임금격차가 크지 않고 야간노동이 거의 없다. 가난해도 살만한 것이다. 아이들 혼자 두고 일 다니고, 집안 일 하라고 구박하고, 자식에게 용돈 받으러 자식을 알바 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해지면 집에 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니 부모와 아이들이 만들기(덴마크에서 지겹게 들은 craft), 각종 스포츠, 책읽기(그 부러운 공공도서관들!), 여행 등을 할 수밖에. 그런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다.

 

 

 

더우나 추우나 눈비가 내려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엔 밖에서 논다.

실내에는 옷 말리는 기계, 몸 씻는 시설이 잘 되어 있다.

 

 

 

 

3. 맺는 말

북유럽 교육탐방을 준비하고 직접 핀란드와 덴마크의 학교들을 방문하고 이후에 혼자서 10일간 덴마크를 중심으로 배낭여행을 하면서 약 두 달 동안 북유럽에 푹 빠져서 지냈다. 북유럽 관련 책만 읽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온갖 자료들을 읽고 북유럽 사람이 만든 영화들을 구해서 보고 말도 못 알아듣는 그곳 TV를 열심히 보았다. 서민지역을 찾아가 구멍가게에서 장을 보고 그곳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많은 것을 알았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찰과 느낌들은 피상적이고 편협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핀란드와 덴마크의 교육과 일상을 보고 좋았던 점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벌써 잊혀진 것들도 있고 모르는 부분도 많다. 그래도 북유럽은 교육에서도 역시 선진국이고 복지국가였다. 그러나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핀란드 아이들의 학교만족도가 다른 OECD 나라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고, 북유럽 여러 나라들이 훌륭한 복지제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이혼이나 비혼상태에서 출생한 아이들이 가지는 심리적 상처와 외로움은 크며 사춘기 방황도 없지 않다고 한다.

북유럽의 좋은 점을 다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도 없겠지만 적용해도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가서 보고 느낀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도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우리 교육에도 좀더 자유롭고 평등한 바람이 불어들 것으로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교육에서 인간발달과 교육학 이론들을 되새기고 실천하는 일, 고상하고 인간다운 가치관을 실천하고 확산하는 일, 그리고 빈부와 무관하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민주사회, 복지국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것이다.

 

 

 

(북유럽 복지국가,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책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개인적 소감만을 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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