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참 좋아한다.
한때 "무인도에 간다면 무얼 가지고 갈래?"라는 물음이 유행했는데
나는 파란하늘과 나뭇잎, (강)물만 볼 수 있다면 살 것 같지만 그래도 음악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대답했다.
어릴 적 엄마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청소하시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는 칠십이 넘도록 성가대를 하셨다.
가족이 노래를 하면 음치이신 아버지가 시종일관 2도 낮거나 높게 소리를 내시는 바람에 '가족합창'의 기회를 누리지 못했고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해 자녀들은 엄마의 음악성을 넘지 못한다.
어려선 피아노 배우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쉬는 시간에 교실 앞에 놓인 오르간을 건드려보았다. 친척집의 피아노도 쳐보았다. 6학년 때에야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진도가 팍팍 나갔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 현악연주단이 있었다. 나는 그윽한 첼로 소리에 반했다. 하지만 악기값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부모님 말씀에 포기하고 말았다. 전축이나 오디오가 흔치 않던 시절이어서 방학 때면 KBS FM을 듣고 감상노트에 꼬박꼬박 메모했다. 일요일이면 교회를 마치고 친구들이 우리집에 모여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중창을 하기도 하고 트윈폴리오 뺨치는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 때에도 음악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그 땐 유난히 독일의 바리톤 성악가 헤르만 프라이를 좋아했고 오페라를 열심히 구경다녔다. 음악 잘하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고 멋져 보였다. 내가 반하는 남자의 조건 1위에 들 정도? ^^
어제 내 수입의 큰 부분을 투자해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송영훈의 4 첼리스트 연주회"에 다녀왔다.
이전에 송영훈의 첼로 연주를 몇 번 보고 그에 반해버렸는데 이번에는 특히 탱고가 주제였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우리의 송영훈 외에 중국의 리웨이친(사진보다 훨씬 젊고 장난스런 모습! 현란한 테크닉), 스위스의 조엘 마로시(유수의 오케스트라 수석다운 포스), 스웨덴의 클래스 군나르손(체구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깊이)이 함께 연주했고 피아졸라 밴드의 멤버였던 파블로 징어가 편곡을 해주었다.
첼리스트 송영훈 홈페이지 http://www.celloyoungsong.com/
와... 각각의 고향도 개성도 다른 4명의 쟁쟁한 남자 첼리스트들이 뿜어내는 그 깊이와 넓이와 힘과 열정!
가슴이 두근두근 부풀어오르다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련한 듯 소리가 멀어지면 나도 숨을 죽이게 되고 춤추듯 힘을 풀면 나도 몸이 흔들릴 것 같았다.
남성미가 넘치고 섹시했다. 2시간 내내 긴장되고 온 몸이 저릿저릿한 감동이었다.
연주도 훌륭했고 편곡도 훌륭했다.
마지막의 'mission impossible'은 익살스럽게 편곡된 데다가 검은 썬글래스를 끼고 신나게 연주해서 모두를 열광시켰다.
연주가 끝나고도 박수가 끊이지 않아 앵콜곡을 두 곡이나 연주했다.
교육복지사업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을 위한 멋진 음악 프로그램이 미미해서 아쉽다.
꼭 돈을 들여서 비싼 악기를 배우게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음악의 멋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영화 <미션>에서 음악이 없다면 그만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사운드 어브 뮤직>을 보며 그 음악에 몸을 실어보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은 악기 하나라도 잘 연주할 수 있게 꾸준히 가르치기, 노력 끝에 숙달의 만족과 성취를 누리게 하기, 합창이나 합주로 조화와 일치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가족과 친구, 이웃 앞에서 연주하면서 기쁨을 나누게 하기.
음악을 듣고 보면서 내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고 때론 즐거움을 때론 위로를 때론 힘과 격려를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기.
그런 것이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돈이 없어서 C석이나 '합창석'에 앉아서 공연을 보기도 하고, 공연은 못 보고 TV 중계나 라디오 중계를 메모했다가 보기도 하면서 R석에 앉은 사람들을 시샘하다못해 증오할 뻔 했다. 지금도 나의 큰 소비 중 일부분은 음악회이다
비록 지금 가난한 아이들이 내 어릴 때처럼
비싼 악기를 배우지 못해 섭섭하거나, 음악회에 가지 못해 아쉬워할지라도,
그리고 음악을 누리는 부유한 사람들을 시샘하다못해 증오할지 몰라도,
살다보면
음악은 생각보다 늘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