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보고회

샘연구소 2012. 11. 11. 14:50

가을이 되니 축제, 평가, 보고회 등이 이어진다.

늘 그렇듯이 사실 보고회는 참 재미없다.

격식차린 순서와 딱딱한 형식들이 나는 싫다.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는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분주하고 긴장되지만

구경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

어떤 땐 그냥 보고회 자료집만 챙겨서 나오기도 하고

차려놓은 것을 구경해서 나도 참고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보기도 하고

그냥 격려차, 인사차, 가야하니까 가기도 한다.

 

며칠 전 아산의 한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일찍 근처에 도착해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시켜먹었다.

옆에서 지역 어르신들이 신나게 얘기하며 식사를 하신다. 충청도 사투리도 무지 시끄러울 수 있구나! 독특한 사투리가 밉지 않다.

옆 자리 아저씨는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몇 번이나 외치는데 주방에서 네~ 하고는 묵묵부답. 내가 미리 떠놓은 밥을 드렸다. 그러고도 나중에야 밥이 나왔으니 충청도가 느리긴 느린가보다. 흐흐...

이 학교 아이들은 이런 곳에서 사는구나...

 

이 학교에 간 이유는 충남도교육청 교육복지사업의 기초학력증진부분 시범학교 운영보고회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나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시는 교감선생님과 연구부장선생님의 열성에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그런데 나름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배우고 깨닫고 돌아왔다.

 

첫째,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에서 기초학력증진의 의미를 새롭게 확인했다.

단지 몇몇 아이들 방과후에 마치 벌 서듯이 따로 남겨서 대학생이 공부 가르쳐주는 식이거나 EBS 청취나 인강듣기, 아니면 혼자 자습하고 가끔 교사가 돌봐주는 그런 방식의 기초학력 증진이 아니라 모든 교사가 모든 교실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수업을 내실있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뒤쳐짐없이 학력이 증진되도록 구성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초등교육의 목적에 잘 맞는다.

 

둘째,

영역별 프로그램을 초월해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융합형 5-Q'를 신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흔히 교육복지사업 운영을 위해 교육개발원이 제시한 프로그램 영역인 학습, 정서심리, 문화, 보건복지 등의 구분으로 사업운영을 보고하지 않고 그런 영역별 프로그램을 초월해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융합형 5-Q'를 신장시키겠다는 것이다. IQ, EQ SQ 같은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5개의 Q는 어떤 것이지? 다중지능도 안 되고.. 누구 이론이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아마 이것은 그냥 학교에서 정한 것 같았다.

 

 

 

 

나 역시 4대 영역이니 상담이니 사례관리니 하는 것은 방법이고 과정으로서 실적으로 보고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목표나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그런 영역과 프로그램, 방법들이 지향하는 곳은 욕구(필요 Needs)의 충족, 자아의 성장, 능력의 발휘, 자산(지적, 정서적, 건강, 시스템 등)의 증가, 공동체적 연결망의 효율화 등이라고 생각했다. 

학습, 문화, 정서심리 등이 각각 돌아다니는 것이 영 불편했다. 공부를 하든 문화체험을 하든 집단 프로그램을 하든 아이들은 학업성취나 도덕성, 사회성, 자아정체감과 자아존중감 등이 향상되어야 하는데 교육개발원은 그런 목표점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학교는 열심히 4대 영역별로 사업을 짜서 운영하는데 막상 평가는 껑충 뛰어넘어서 성적(기초학력), 징계율, 중퇴율 등으로 기준을 삼으니 맥락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늘 주장하지만, 교육복지사업은 문화/학습/정서심리/보건복지 '프로그램' 사업이 아니다!

그걸 통해 아이들의 인지(학습능력), 사회성, 자존감, 도덕심을 증진시키는 교육사업이고

궁극적으로는 학교 안에서부터 가난한 아이와 부잣집 아이, 중산층 아이가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개발원이 제시한 4대영역 틀에 갇혀서 수단이 목표처럼 되어 있다. 아이들을 오히려 더 구분하고 갈라놓고 있다!

이번에 이 학교에서 정한 5Q는 학문적으로는 얼마나 타당도 신뢰도가 있는 목표구성인지 검증할 바 없으나 교사들이 나름대로 고민하고 함께 비전을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5대 영역을 '융합형'으로 교과교육, 학생 동아리활동, 교육복지 프로그램, 돌봄 프로그램, 주5일제 토요프로그램 등으로 함께 보고 운영하였다. 참 잘 했다.

 

셋째,

대상학생을 구분하되 빈곤학생에 집중하여 별도의 관리를 하려고 하기보다 전체 속의 일부로 보았다.

나는 종종 전교생>집중지원학생(관심이 필요한 학생)>집중사례관리학생(복합적인 욕구를 가진 학생)으로 분류하여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제공하자고 주장해왔다.

이 학교에서는 이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것이 A-B-C 프로그램을 한 것이다.

A는 All 프로그램이라고 하여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기초, 기본 학력 증진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다.

B는 Basic 프로그램. 학년별, 학급별로 담임 재량하에 운영하는 수준별 수업 및 학력증진 프로그램이다.

C는 Care 프로그램이다. 미도달학생, 교육복지대상 학생을 중심으로 흥미와 수준에 맞우어 운영되는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보고회의 가장 감동한 부분은 사실 다른 점이었다.

행사가 교실별 공개수업을 비롯해서 넓디넓은 체육관에 수백명이 앉아서 3시간인가? 계속한 보고회와 나의 특강으로 이어졌는데

오신 분들이 거의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글쎄.. 앞에 충남교육청 담당과장님과 아산교육장님이 앉아계셔서 그랬을까?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도교육청 담당과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이전에도 뵈었고 존경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역시 내 특강에 대해 모나거나 치우친 부분을 꼬집으면서도 보충해서

그날의 보고회를 아름답게 완성시켜주셨다.  부끄럽고 감사했다.

 

 

이날 수고한 이 학교 선생님들은 격려와 축하의 만찬이라도 하셨을까?

시범학교 운영보고를 마치면 다시 예전으로 회귀하게 될까?

이런 실천은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너무 고연비 사업은 아닐까?

......

 

이 학교 아이들은 1년 동안 참 행복하고 즐거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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