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샘연구소 2014. 2. 20. 10:38

영화예매권을 선물로 받았다.

무얼 볼까 하다가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왔다.

 

 

 

 

한윤미 아버지의 마지막 변론

 

"증거를 대라고요?

요금 안 내고 뺑소니친 택시 손님이 내가 택시비 안낸 증거 대라는 것과 똑같잖아요?

여기 있는 환자들, 죽은 이들의 가족들이 증거입니다.

이보다 더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요?"

 

 

영화만을 보면 답답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고 캐스팅도 불만족, 카메라 앵글도 화면도 내내 거슬렸다.

박철민은 원래 입꼬리가 웃는 인상인데다가 그런 역을 많이 해서 아무리 억울하고 화나는 장면,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어 '놀랬지롱~'하면서 우스개를 할 것만 같았다. 노무사인 김규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저 얼굴은 아닌데... 싶었다. (제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내 맘에 들었던 연기자는 진성반도체의 대리인 격인 악역 이실장 역의 김영재, 역시나 몸 전체, 말 한마디와 움직임에서 뿜어져나오는 깊은 내공과 포스의 과장인가 팀장역의 이경영, 판사역의 정진영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의미를 생각했다.

--- 이건 뭐 영화감상이라기보다는 노동경제학 내지 기업정치학 공부시간. ㅎㅎ

 

진성(삼성)반도체의 명성에 가리운 교묘한 노동자에 대한 폭력.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과정들에 온몸이 저려왔다. 가족과 주변사람들까지도 반목하게 되고...

정말 당해본 사람이라면 빚보다도 무서운 게 보이지 않는 감시와 뒷말, 증거찾기 어려운 목줄죄기, 반목... 그런 고차원적인 괴롭힘임을 알 것이다. 재판은 사실 그에 비하면 참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 속에서 끝까지 싸운 이들에게 존경을 넘어 경의를 보낸다.

나라면 주도는 물론 함께 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부끄러워도 그렇다.

그런데 박철민(한윤미의 아버지역)도 처음엔 그랬다. 가족도 그랬다. 그런데 해도해도 너무 하니까, 어차피 딸은 죽었고, 더 바닥으로 갈 곳도 없으니 차라리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리라.

 

 

영화를 보고 나와서 걸으며 생각했다.

진성반도체의 거대한 조직 속에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면서도 아닌 척 가담하게 되는 조직구성원들, 죽는 건 줄도 모르면서 사는 건 줄 알고 일하는 사람들.

교육도 비슷하지 않나.

가난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학교 다녀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을 올릴 수도 없고 그렇게 졸업한다면 어차피 일자리는 찾기도 힘들뿐 아니라 다 그만그만하다.

 

극소수의 가지고 누리는 부모의 자녀들에게만 허락된 그럴 듯한 대학생활과 일자리.

그런 뻔한 게임에 마치 아닌 듯, 노력하면 되는 듯, 가담하고 있는 우리 모두.

진성반도체와 노동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진성반도체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제도인 교육제도, 학교 시스템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누가.

교육복지의 비전은 무엇인가.

교육복지에 가담하고 있는 근로자인 교사, 교육복지사들의 정체감은 무엇이어야 할까.

 

한윤미 아버지의 마지막 변론처럼 말해본다.

"교육이 교육적이지 못한 증거를 대라고요?

학교교육 12년 받고도 아니 15년, 20년 받고도 자신감 없고 일자리도 없고 빚만 지고 몸 아프고 불행한 아이들이 도처에 늘비한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데

또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요?"

 

 

(아...  그래서 계속 연구하고 정책 새로 만들고 있잖아! ~~~ 라고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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