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속터지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실내에서 기다리다가 살아나오지 못한 것이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실내에 있다가 배에 물이 차면 어떻게 나오라고...
일단 구명조끼를 입는다는 것은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반성하는 것이 이것이다.
우리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결정하며 서로 존중하는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이고 본성인데
그것을 수십년에 걸쳐서 철저하게 짓누르고
순종하고 '지침'만 따라하는 기계부속같은 인간을 찍어내고 있다.
가장 똑똑한 아이들도 외워서 정답을 맞추도록 잘 훈련된 아이들일 때가 많다.
생각하는 아이.
스스로 머리를 쓰고, 질문하고, 남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듣고 토론하는 것이
진보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어느 대학 수업에서 첫시간에 '질문하기'의 연습삼아 나에게 궁금한 것 3가지를 질문하라고 했다.
미리 나는 좀 괴짜이고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분위기를 띄워가며 충분히 보여주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재가 무엇이냐, 전화번호가 몇 번이냐를 물었다.
그건 질문하지 않아도 학교 웹 강의실에 다 나오고 내가 말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난 적어도 '몇 살이에요?' 이거나, 옛날 같으면 '첫사랑을 몇 살에 하셨어요?' 라거나 하는 질문이 나오기를 기대했었다.
메마르고 주눅든 학생들.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오래 전 청소년과 어른들 100명이 모여서 토론하는 자리에 있었다. 주제는 '학교폭력'이었다.
청소년들이 회의한 내용을 발표하는데 어떤 어른이 '야, 임마, 그만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허걱....
그러나 청소년들은 포기하지 않고 잠시 후 침착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아.. 그래도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구나.. 생각했다.
황선준씨 글을 보며 스웨덴에서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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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학생 키우는 독립적, 비판적, 창의적 교육 | 황선준
(우리교육 2014년 봄호)
* 황선준씨는 스톡홀름대 및 Mid Univ에서 강의하며 교수·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스웨덴 국립교육청에서 스웨덴 초중고 및 성인교육 등 스웨덴 교육 전반에 걸친 정책 평가 및 정부 특수 재정을 책임지는 일을 했다. 〈스웨덴의 교육 자치〉, 《금발 여자 경상도 남자》,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등을 썼다. 서울교육연구정보원 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이다.
다음은 위 싸이트에 실린 글 중의 일부이다.
전문은 길어서 싣지 않는다.
그럼 우리의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될까? 스웨덴에서의 내 경험담으로부터 문제를 풀어 보고자 한다.
스톡홀름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의 첫 관문인 정치 이론 과목은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과목은 국가론, 자유주의론, 민주주의론, 여성론feminism, 자본주의론, 전체주의론 등 정치철학과 정치 이론에서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이론과 저서들을 총망라했다. 힘든 과목이었지만 그만큼 기대도 컸다. 밤새워 읽고 요약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외우고, 한국에서 했던 방식대로 수업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러나 수업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교수의 강의는 아예 없었고 우리 5~6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주제별로 나누어진 교재를 읽고 교수가 던져 주는 주제에 따라 토론을 하는 세미나 형식이었다. 코스 페이퍼는 자신이 주제를 하나 정하여 15~20쪽의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읽어야 하는 교재의 분량도 많았을뿐더러 교재의 내용 자체도 어려워 무척이나 힘든 과목이었다. 세미나의 토론을 따라가기도 힘들어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내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고민했다. 그러나 이 과목의 후반부에서 민주주의 이론을 다룰 때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어느 친구는 참여 민주주의의 단점에 대해 비판하고 다른 친구는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나는 이해했다. 나는 손을 들고 그런 민주주의의 장단점에 대한 답이 우리 교재의 어디 어디에 있는데 교재도 읽지 않았는지, 왜 토론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일침을 가했다.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교수는 정색을 하고 나에게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교수의 이 질문은 내게 과히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은 교재를 읽고 잘 요약해 외우고 이것으로 선택형 시험에 답을 잘 맞히면 되었다. 즉 교재에 있는 것은 정답이고 그런 정답을 잘 외우고 있으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학교가 요구하는 것은 그런 공부가 아니었다. 물론 교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교재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생각으로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주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여러 주제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의 여러 이론이 국가론 또는 여성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내가 한국에서 해 왔던 언제나 정답이 있고 많은 사실을 암기하는 공부와는 정말 판이했다. 수준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식의 공부를 스웨덴에선 초등학교에서부터 한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문제로 설정하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공부에서의 독립심은 더욱 강했다.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아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혼자서 공부를 잘 해내는 아이와 저녁에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한번은 아이가 중2 때 쓴 작문(에세이) 숙제를 도와준 적이 있다. 아이와 얘길하며 내가 표현을 달리한다든지 첨삭을 해 주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에 보니 내가 도와준 부분은 전부 삭제하거나 원위치로 되돌려 놨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고쳐도 자기가 고치지 남이 고쳐 준 대로 절대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 수업 시간에 자신의 작문을 발표해야 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표현에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어른들이 조언을 하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정은 자신이 하고 그 결정에 대해 어릴 때부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학 과정이든 초, 중등 과정이든 교육에서의 이러한 독립심은 교육학적인 한국말로는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러한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길러 주는 데 노력을 경주한다. 교육에서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가치는 비판력 또는 비판적 사고(시각)라 할 수 있다. 창의력은 이러한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과 비판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독립심Independence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이를 토대로 해서 나오는 창의력Creativit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