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학교와 마을

샘연구소 2020. 4. 8. 09:54

학교는 마을 속에 위치하지만 마치 마을과는 분리된 특별한 '성'이나 '섬'처럼 존재해왔다.

학교는 우리 가족, 우리 마을이 아닌 다른 곳, 다른 나라의 지식과 역사, 사회, 자연, 사상을 전수하는 곳이었고 교사는 일반인은 접하지 못할 그런 귀한 지식과 기술, 사상을 전해주는 전령사로 우러러보아야 마땅했다.

학교라는 관문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 가족과 마을을 떠나 그 지식과 사상이 있는 곳으로 가야 성공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실 오지 시골에서 성공해서 도시, 나아가 해외에서 할동하는 마을의 아들딸들은 제 부모를 포함하여 고향을 배려하긴 힘들다. 선거때를 빼곤. 남은 아이와 가족들은 마치 성공행 기차에 오르지 못한 낙오자인 것처럼 열패감을 가지고 비루한 삶을 이어가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사회가 다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을 치켜세우고 칭찬하니까. 도시의 훌륭한 교사들은 시골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런 사실을 꽤뚫어보고 이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마 1980년대 이후일 것이다. 학생운동은 교사운동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 민주정부 이후에는 마을운동으로 다시 꽃피고 있다. 그 성공의 열매와 부작용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중 하나는 대안학교운동과 근래 진보교육감시대에 활성화된 마을교육공동체사업이다.

내가 오늘 소개하려는 곳은 한반도 남쪽 끝 경상남도 남해의 이야기다. 여기는 원래 쌍둥이 섬이다. 그런데 육지와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육지와 소통이 쉬워지고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구불구불 그야말로 창자처럼 꼬부라지며 바다를 끼고 돌아 다다른 남쪽 끝 바닷가 작은 마을 상주면. 거기에 상주중학교가 있다.

사립학교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학생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이르렀다. 이 학교에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역사가 씌여지고 있다. 일찌기 학교도서관활동에 열정적으로 일하셨고 간디학교, 태봉고등학교 등에서 대안교육을 실험하고 연구하신 여태전 교장선생님이 상주중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다.



오른쪽 끝의 건물이 학교이다. 


학교의 역사를 품은 나무 바닥의 옛 건물은 헐리고 지금 새 건물의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학교는 전국으로부터 학생들이 몰려들어 입학경쟁률이 여전히 치열하다. 학년당 두 학급씩 총 30명이 한 학년이다. 교사 옆에는 아담한 기숙사가 있다. 교실과 기숙사에서 바로 남해바다가 보이는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뷰의 학교이다.  아이들과 전 교직원은 매주 한 번 아침마다 함께 바닷가를 걷는다.  여름의 해양수업은 자랑거리다. 물론 다른 대안학교들이 하는 체험학습과 특별활동들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가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들은 하나둘씩 남해군으로 이사해왔다. 그들이 모여서 '동고동락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은 부모들이 모여 공부하고 삶을 토론하고 학교와 아이들을 지원한다.

여기서 '우리마을 인문학 강좌'라는 프로그램도 생겼고 청년들의 이주 창업 프로그램인 '팜프라'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제 보물섬고등학교와 성인을 위한 인생학교도 준비중이라고 했다. 남해군과 경남교육청도 이런 남해 섬 끝자락의 움직임을 여러모로 지원하고 있다.


교육은 학교 혼자,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같은 시대엔 더더욱이 그렇다.

온 마을이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학교가 없다시피한 아프리카 원시마을의 이야기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온 마을이 아이들에게 살만한 곳,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어른들이 서로 믿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며 협력하여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일이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르침이다.


인터넷 시대는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집합교육의 필요성과 그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거듭 질문하고 있다. 이제 교사에게 묻지 않아도 우린 너무 쉽게 알수 있고, 배우지 않아도 인터넷이 대신 해줄 수 있다.

학교가 부모, 사회, 온 마을과 더불어 잘 사는 것,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는 것 그자체가 가장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학교가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마을 또한 학교에 전과는 다른 영향력을 미치며 상생해가는 것, 학교들이 연결되고 세대가 연결되고 정치와 공공시스템이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신뢰와 행함의 마을이 교육희망을 만든다.

작은 한 분의 지혜로운 교육철학과 굳은 의지가 불씨를 지피고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본 꿈이 봄날 들에 번지는 불길처럼 보일듯 말듯 번지고 있다. 사람들이 함께 꿈을 꾸고 꿈을 보태고 지금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이제 귀촌한 부모들이 첫 마음을 어떻게 계속 이어갈지,  교사들이 대안교육의 철학을 어떻게 성숙시켜갈지, '상주중학교'의 DNA를 장착한 아이들이 외지에서 또 상주나 남해, 경남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응원하며 지켜볼 일이다.


기숙사 건물 입구의 신발장



※나와 연구원들은 대안학교 전환 첫해부터 매해 남해상주중에 방문해서 1주일을 머물면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관찰하여 평화로운 소통과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그램, 교사와의 대화를 진행해오고 있다.

 

발 모양도 개성도 제각각인 아이들이 24시간 부비며 살아가는 학교와 마을,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