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트라우마를 생각함

샘연구소 2020. 4. 30. 18:01
월간 <좋은교사> 3월호의 특집기사를 읽었다.


제목은 '트라우마의 이해와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부평여고 교사인 김한나가 쓴 '트라우마의 이해' 중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에서 인용한 부분을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 (pp.23-24)

미국 캘리포니아주 종합건강관리기관인  카이저-퍼머넌트 센터의 내과의 Vincent Felitte와 Robert Anda가 공동연구한 결과다.

그들은 10개의 질문을 가지고 1995년-1997년까지 검진환자 17만여명에게 설문조사를 했고 답변을 진료기록과 비교했다.

이들의 연구는 ACE(Adverse Child Experience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연구)라고 이름하여 널리 알려졌었다.

ACE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언어적인 모욕을 당하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당했다.

2. 매질을 당하거나 뺨을 맞는 등 신체적인 폭력을 당했다.

3.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4.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고 지지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5. 부모가 별거나 이혼을 했다.

6. 적절한 음식 또는 의복, 보금자리를 제공받지 못했다.

7. 가정 내 폭력 장면에 노출되었다.

8. 가정 내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된 사람이 있었다.

9. 가정 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등 정신병리가 있는 사람이 있었다.

10. 가족 구성원이 투옥된 적이 있었다.

- ACE Study,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응답의 분석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가 Yes라고 답했다.

응답자는 거의 중년기 나이의 중산층 백인들로 교육수준이 높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가난하고, 유색인인, 배우지 못한, 또는 어린 부모들을 포함해서 물었다면 어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 95% 이상의 사람들이 Yes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즉, 우리가 굉장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케이스로 여기는 '트라우마'라는 경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쨌든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겪는 일상사다반사란 얘기다.

1990년대 중후반에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결과이니 우리나라에서 지금 조사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트라우마가 그렇게 일상적인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해소하는 자연치유책 또는 자가면역체계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경험한다면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보다 사회적 조치가 더 필요했을 텐데

우린 왜 트라우마에 대한 대응으로서 후자에 대한 자료는 접한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참으로 소중하다.

그리고 <<몸은 기억한다>>의 결론도 역시 정신과의사에게만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또래나 중요한 관계의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뮤지컬, 연극, 그리고 말로만 하는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 말고 몸을 놀리는 운동, 마사지 같은 것의 효과를 인정하고 추천하고 있다.

​<좋은교사> 책에서는 회복적 생활지도(써클회의 방식)를 제안한다. 그리고 특집의 끝부분에는 지역아동센터장인 사회복지사의 글이 있다. 지역기관과 학교간의 협조가 필요하고 유효하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나 부모, 심지어 학교 내 복지사들조차

PTSD 증상이 의심되는 학생에게 거의 자동적으로 정신과 진료나 상담만을 생각하고 기관을 연계해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오늘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학생에게

비정상적인 일, 특별하고 이상한 일,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대하기보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겪음직한 폭력피해나 마음의 상처이니

편하게 같이 다스려보자고

동행하면서 보다 자연스런 환경을 조성하도록 접근해보면 어떨까? 

아프고 괴롭지만 삶이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 살면서 피하기 힘든 흔한 일이라면

방법도 보다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것은 어떨까? 

전문가가

비자연스런 공간에서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치유책만 말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써클이나 회복적 상담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학교사회복지사들 역시

학교밖 전문기관으로의 학생 의뢰가 만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담임교사, 학급친구들, 방과후에 동네에서 만나는 또래친구, 가족과 친척 등 중요한 일상적 관계인들 속에서 관계인들과 함께 아이를 살피고 아이와 관계인들이 모두 함께 회복하도록 힘을 모으는 일이 아닐까.


코로나바이러스로 알게 모르게 삶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막상 절박하면 상상력이 부족하고 새로운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위험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자연스런 접근법을 통해 아이와 복지사가 같이 차근차근 상처를 살피고 돌아보며 생존을 축하하고 격려하고 주변의 관계 속에서 회복력을 길러가는 일이 있다면 평소에 어떤 위기에도 담담하고 용감하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면역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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