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사태로 긴 시간 휴교했던 학교가 다시 개교를 해서 아이들이 교사와 친구들을 만나고 제대로 입학을 체감하기도 했다. 교사들과 교직원들은 온라인 수업하랴 시시각각 바뀌는 지침에 대응하랴 정신없는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아동학대 기사가 몇 개 나와서 걱정이 커졌다.
어쩌면 기사로 밝혀진 2건의 사례 외에 20건, 200건이 진행중일지 모른다.
자기가 나았거나 동거하는 사람, 새로 가정을 꾸린 파트너가 데려온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돌보지 않는 부모.
보통사람의 윤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엄마들은 솔직히 고백한다. 사랑으로 갖고 내 몸에 열달 품어 아프게 낳은 자식도 종종 때리고 싶고, 아이가 내 삶을 더 힘들게 한다 싶으면 아이가 없었다면 하고 바란 순간이 왜 없었겠느냐고. 그래서 엄마들은 더 자녀들과 미운정 고운정, 사랑스럽고 소중한 만큼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겹쳐서 더 끈끈한 공동체가 된다.
아동학대를 '발굴'한다는 게 뭘까 생각한다.
젊은 부모들, 또는 이혼, 재혼, 동거 등 형태로 아이와 함께 사는 어른들, 또는 위탁양육시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철두철미 감시하고 색출하기 위해 의심하고 발견되면 엄벌하고 그러는 것에 못마땅하다. 뭔가가 부족하다.
젊은이들이 12년 이상 학교에서 교육받고 20년 가까이 자라나는 동안, 가족의 중요성과 좋음을 배우고, 감사하고, 기대하고, 꿈꾸고, 어떻게 만들고 유지할 지 이야기하고 공부한 적이 있었을까?
아마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는 상처때문에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또한편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원가정과 의도적으로 분리되길 시도한 아이도 있었다.
수년전 타계한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스 벡 부부는 사회의 변화와 가족의 형태, 기능에 대해 통찰력있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었다. 제목은 어울리지 않게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등에서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사회, 세계화는 노동관계를 바꾸어 모든 사람이 유연한 1인 노동자로 개별화되도록 하며 대가족체제에서 근대 산업화와 함께 이어온 핵가족은 이제 다시 분자처럼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왜 아무도 부모가 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의 소중함을 꿈꾸게 하지 않는가.
온갖 정책과 언론은 출산율 저하를 염려하며 여성의 권리를 진작해야 한다 주장하고 또 일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젖도 떼지 않은 아이부터 24시간 맡아 주는 공공 서비스를 계속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이가 거추장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암암리에 강변해오지 않았는가.
아이는 무조건 보호되어야 한다. 이유가 필요없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고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자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빼앗아서 공공시스템이 기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벌이만이 최고인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가장 작은 단위인 연인, 부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어릴 때부터 함께 이야기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빨리.
하긴 요즘 학교교육에 이런 걸 기대할 수나 있을까...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4410
(영화 <케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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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아동학대 사각지대 언제까지…법적·제도적 개선 시급하다
2020-06-09
(서울=연합뉴스) 충남 천안에서 9살 소년이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가 사망한 사건으로 온 국민의 공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남 창녕에서는 같은 나이의 소녀가 눈에 멍이 들고 손가락 일부가 심하게 다친 상태로 거리를 뛰어가다가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이 소녀는 계부가 프라이팬에 자신의 손가락을 지지는 등 2018년부터 2년간 상습적으로 학대를 가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천안의 소년은 친부의 동거녀에 의해 가방 안에 긴 시간 갇혀있었다. 신체 곳곳에 멍 자국이 있었고 몸무게는 또래 남자 어린이 평균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한 23㎏밖에 되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소년은 지난해 10월부터 수차례 친부와 동거녀에 의해 폭행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아이 모두 장기간 상습적으로 학대를 받았으나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아동보호 시스템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천안 소년의 경우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에도 머리가 찢어지고 손과 엉덩이가 멍든 채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학대 정황을 발견한 의료진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훈육 방식을 바꾸겠다'는 친부와 동거녀의 말만 듣고 '분리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려보냈다. '원 가정 보호조치'를 취할 경우 귀가한 아동에게 학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기관이 적절한 관리와 보호조치를 취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소년은 또다시 학대를 받아 숨졌다. 관계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사망에 이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8년에는 친부와 동거녀로부터 학대를 받아 사망한 뒤 암매장된 고준희 양 사건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인천에서 계부가 자신의 학대로 보육원에서 2년 넘게 지내던 다섯 살 의붓아들을 집으로 데려온 지 한 달 만에 온몸을 20시간 넘게 목검으로 때려 숨지게 한 극악무도한 일도 있었다. 왜 이런 패륜적인 사건이 반복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위기 아동을 사전에 파악하고,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관계자 문책을 강화하며, 관련 전문가들과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급한 것은 분리조치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동 학대는 가해자와 피해 아동이 생활하는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 아동을 가정으로 돌려보낼 경우 또다시 학대가 가해질 가능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엄격한 사후 조치가 있어야 한다. 가해자 진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재발이 의심되면 피해 아동을 분리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이들이 머물 아동보호기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아동보호 법제를 개선하고 아동보호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가정 내 처벌금지를 법제화하는 문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민법 제915조(징계권)는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자녀 체벌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아동 관련 단체들이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아동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아동학대 가능성이 커졌지만, 사회 기관의 보호 서비스를 받기는 어려워졌다. 이런 때일수록 아동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통념상 아직도 아동 체벌을 묵인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개별 인격체이다. 훈육을 빙자한 폭력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아동학대는 해당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다. 아동학대가 의심될 때는 이웃, 학교, 마을이 모두 나서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사 출처: 연합신문
https://www.yna.co.kr/view/AKR20200609094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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