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스승의 날

샘연구소 2011. 5. 17. 22:41

지난 일요일이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교육청 PC로 일하는 후배 학교사회복지사의 고마운 선물!

 

이제 집안에 스승의 날을 챙길 아이도 없고 나도 학교를 떠났으니 스승의 날은 남의 집 잔치처럼 스쳐간다.

 

교사시절엔 나도 나름 인기있는 선생님이었다. '뽀대'나고 '값'나가는 선물은 없었지만 코찔찔이 아이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선물이 책상 가득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고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스타킹 하나, 손수건 한 장이라도 나눠주며 은근히 자랑도 하고 식구들의 칭찬과 부러움도 받으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딸아이의 선생님에겐 작은 도시락통에 오색 과일을 예쁘게 담아서 보온병에 담은 차와 함께 보내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서울시교육청 생활지도시범사업의 학교사회복지사가 되어 학교에 들어간 첫 해. 난 무척 우울했다. 스승의 날, 선생님들에겐 아이들이 부지런히 찾아왔고 카드와 선물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바로 옆자리인 나에게는 개점휴업. 허... 예전 교사시절 생각이 났다. 나는 일찌감치 학교를 나와서 친구를 만나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회포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엔 주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시켜서 카드를 보내오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받은 선물을 나눠주시기도 했다. 덜 허전했다.

햇수가 흐를 수록 나는 점점 더 허전해졌다. 3년, 4년째가 되자 나는 점점 더 잊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열심히 일했고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어서 속으로 은근히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점점 나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스승의 날에도 아이들에게 감사선물조차 받지 못하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까? 아니, 왜 나는 스스로 잊혀진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 것일까?

 

첫째,  3년, 4년째 한 학교에서 일하게 되자 선생님들은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나누면서, 또 다양한 교사연수와 복지실 소식지, 교사 소모임 등을 통해서 학교사회복지의 준전문가로 성장했다. 선생님은 좀 궁금한 아이가 발견되면 즉시 나와 상의하셨고 나는 선생님들에게 전문적인 조언과 자문을 드려서  되도록이면 담임선생님 선에서 아이들이 품어질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아이들이 편안하고 행복해할 곳은 복지실이 아니라 교실이고, 사랑을 주고받을 사람은 나보다도 담임선생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은 자기들이 힘들고 문제를 일으켜도 어느날부턴가 담임선생님이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주시고 부모님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놀라며 조금씩 변해갔다. 그 이면엔 나의 가정방문과 전화통화, 학부모면담, 교사면담과 외부기관과의 회의 등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둘째로는 아이들을 주체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결핍되고 문제를 가진 아이로만 보고 일방적으로 지원을 하다보면 결국 그 아이는 주체성을 잃고 수동적이고 받을 줄만 아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물어서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해결책도 제안하고 그 중에서 스스로 좋은 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도록 안내할 뿐 내가 전문가가 되어 진단하고 평가하고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달라지고 나서도 나에게 '감사'함을 느끼기보다 스스로 자신이 대견하다고 느끼고 자랑스러워한 나머지 심지어 '교만'해보일 정도였다. ㅎㅎ 나도 늘 그렇게 칭찬했으니까. "야, 너 대단하다... 수고했어! 멋지다. 이젠 더한 일도 해낼 수 있겠는 걸!"

 

마지막으론 내가 직접 개입해서 개별상담이나 사례관리, 집단프로그램을 한 경우에도 부지런히 아이들과 담임교사 사이에서 '중매쟁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너네 선생님이 요즘 네 모습이 활기차고 밝아졌다고 하시더라."라고 칭찬하고 담임선생님에게는 "000가 요즘 시간을 꼬박꼬박 잘 지키고 나옵니다. 지난 시간엔 스스로 남아서 청소도 하고 갔어요. 오늘은 발표도 했구요. 제법 재주가 있는 학생이더라구요. 가정방문 가보니 집에서는 살림꾼이더라구요. 대단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떤 땐 담임선생님에게 초콜렛을 하나 사서 책상에 얹어놓고 메모를 써두었다. "선생님, 000가 5월 10일이 생일이에요. 아무말 하지 마시고 초콜렛 주고 안아주세요." 또 아이에게는 프로그램 끝날 무렵이나 특별한 날, 예쁜 카드를 준비해서 그동안 관심가지고 지켜보면서 잘 되기를 기대해주신 담임 선생님께 짧게 한 줄이라도 열심히 하겠다고 써서 갖다 드리도록 했다.

 

그랬더니 결국 내 의도대로 된 것이다. 흑흑... ㅜ.ㅜ 

아이들은 스승의 날 뿐 아니라 졸업식에도 제 담임선생님만 찾아가서 사진찍고 꽃다발 드리고... 나는 썰렁했다. 에이... 이럴 바엔 앞으로 졸업식날엔 출근하지 말까보다... 싶을 정도였다. 물론 감사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온 아이나 학부모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이것이 학교상담사나 학교사회복지사의 옳은 자세라고 본다.

아이들이 당당하게 자기 삶을 주도하고, 담임선생님과 사랑을 나누고, 교실이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가 되도록 아이들을 세우고, 아이들에게 공을 돌리고, 중매쟁이 노릇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구리남양주교육청 교복투 현장에 컨설팅과 교사연수를 겸하여 다녀왔다. 교육청에서 담당 계장님이 피씨와 지전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점심을 사주시고 특별한 선물을 나눠주셨다. 멋지시다!

 

 

 

전국의 학교에서 일하는 학교사회복지사, 지전가와 피씨 여러분들에게 스승의 날이 그리 외롭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 외롭더라도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사랑하고 행복하다면 그 외로움을 알아서 잘 삭히고 달래기 바란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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