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파블로 네루다

샘연구소 2011. 6. 2. 10:02

1983년쯤.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남자는 '파블로 네루다'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좋았고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돌아와 바로 네루다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마음에 잘 오지 않았다. 

 

1996년인가? 한 이태리 배경의 영화가 개봉했다. 중요한 모티브가 네루가가 나온다고 했다. 영화 포스터에는 남이탤리의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잡은 남자가 서있었다. 혼자서 가서 보았다. 가슴을 울렸다.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그 영화의 음악을 배경으로 유명인사들이 낭송한 네루다의 시들을 테이프로 사서 듣고 또 들었다.

 

2011년 6월 2일. 파블로 네루다가 죽은 지  38년만에 그의 사인을 밝히고자 부검을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칠레의 민중이 사랑한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외교관, 정치인, 혁명가였던 그가 칠레군부 쿠데타 직후 사망했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 인물정보)

 

신문에는 작은 지면에 짧은 그의 시가 실렸다.

 

"와서 보라 거리의 피를

와서 보라

거리에 흐르는 피를

와서 보라 피를

거리에 흐르는!"

 

요즘 같은 시절 이보다 간결하고 강력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요즘 갑자기 그의 시 '시(詩)'를 되뇌어 읽던 참이었는데... 

 

시 (詩)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렸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정현종 옮김)

 

 

 

작년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김용택 시인이 나와서 시를 가르친다.

그도 시가 마음에 찾아오기를 바래야 한다고 말한다. '미자(윤정희)'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김용택 시인이 말한 것처럼, 파블로 네루다가 말한 것처럼 시(詩)를 쓴다. 영화의 마지막엔 여학생의 시신(屍)이 떠내려간다.

 

김용택 시인이 사랑하는 시를 엮어 낸 시집 제목도 ‘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이다. 아마 그이도 네루다를 무척 좋아했나보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루다의 시들은 여전히 나에게 시시하거나 야하고 껄끄럽다. 아마도 칠레민중의 언어가 아닌 번역한 한국말이라서, 내가 칠레인이 아니라서(문화) 그럴 것이다. 아쉽다.

 

 

* 관련 책: 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박병규 옮김, 민음사 펴냄)

* 네루다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싸이트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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