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반성

샘연구소 2011. 6. 3. 08:51

졸다가 전철역을 한 정거장 지나쳤다. 어떡할까 망설이면서도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그냥 전철역을 나와버렸다. 약 30분 정도 얕으막한 산(동네)을 2개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길은 작은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 그 공간에도 주차된 차들이 곳곳에 있고, 더 좁은 골목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져나간다. 어둡고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며 주변에 빼곡한 주택, 다세대 건물들을 둘러본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저 방에 엄마, 아빠들이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이 있겠구나. 군데군데 '희망슈퍼', '불티나슈퍼', '머리사랑' 같은 작은 가게들이 아직도 불을 밝히고 있다. 속옷바람의 어린 아이가 쪼르르 달려들어가 물건을 사들고 나간다. 엄마 심부름이려나?

 

조금 가니 야광조끼를 입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골목의 쓰레기를 거두는 청소부아저씨가 보였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장바구니를 무겁게 들고 오던 젊은 남녀가 아저씨에게 음료수병을 건넨다. 인사를 하며 아저씨 덕분에 우리 동네가 깨끗하다고 감사를 드린다. 나를 지나치며 둘은 행복해한다. 아저씨도 음료수를 마시고 다시 쓰레기 봉지들을 추스린다.

 

또 조금 가니 가족모임이 있었는지 대문앞에서 늙스구레한 아저씨들과 아주머니, 조금 젊은 자녀들이 헤어짐을 미루고 있다.  몇 걸음 가니 아저씨들 세 분이 거나하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흔들흔들 걸어오신다. 바로 내 옆을 스치듯 엇갈렸지만 나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저렇게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집에 가까우면서 동네길은 넓어져서 큰 차도 마주치며 지나다닐 수 있고 차들은 구획된 공간에 주차되어 있다. 길은 환하고 동네는 고요하다.

 

순간 나는 반성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집 - 전철역 - 사무실이나 일터를 오가면서 학교현장을 떠나 산지가 5년째에 이른다. 현장 학교사회복지사들에게 늘 듣고, 학교방문을 하면서 주변 환경을 보고, 기사나 책을 통해 늘 관심을 갖고 산다고 하지만 난 어느 새 그들(당사자인 집중지원대상아동과 가족들)의 주변인이 되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 도닥이며 열심히 사는 그 아이들과 가족들을 외면한채 애써 비참하고 억울한 측면만을 보려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다.

그런 증언이나 고발도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위선이 아닌가.

그래서 진정한 위인들은 '바로 그곳으로' 갔다. 그들이 위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들의 말씀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그들 속에 있었고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 문제이다.

몸 속에 박힌 가시처럼 수십년을 통해 콕 콕 나를 쑤시는 가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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