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만화(그림)책이 몇 권 있다. 그 중에 가장 아끼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장 자끄 상뻬의 그림책들이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내가 오래전에 산 <라울 따뷔렝>이 절판되었나본데 같은 책이 다른 이름으로 나온 것 같다.)>, < 사치와 평온과 쾌락>, <각별한 마음>, <프랑스 스케치>, <속 깊은 이성 친구>, <얼굴 빨개지는 아이>들은 집의 거실, 이부자리 옆, 화장실, 식탁 위 어디서나 나를 반겨준다.
그의 책들은 하나같이 소시민의 사소하지만 부끄러운 콤플렉스를 그저 평범하고 자연스런 일상으로 함께 할 수 있게 해준다. 나 역시 자전거를 잘 못 타는데 자전거를 너무나 잘 타고 싶어서 '라울 따뷔렝'을 집어든 것이 처음 장자끄상뻬와 만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따스한 그의 이야기에 그대로 빠져버렸다.
유능한 마을의 자전거 수리공이지만 사실은 자전거를 못 타는 <라울 따뷔렝>의 도전과 사랑 이야기나, 재채기 알러지와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인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읽다보면 마치 내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이 되는 것 같다. 또, <각별한 마음>이나 <속깊은 이성친구>는 여자와 남자의 문화적 차이와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는데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를 별로 느낄 수 없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나 <프랑스 스케치>는 그저 편안하게 나를 위로하고 싶을 때, 서울의 경쟁적이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도시생활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싶을 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이 외에도 그는 여러가지 시사 만화와 삽화들도 그렸는데 상황과 옳고 그름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나타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웅변하지 않으며 유머러스한 공감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가 좋다.
아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의 한 장면이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마르슬랭 까이유와 재채기쟁이 르네 라또 두 친구처럼 아무 것을 해도,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음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친구는 진짜 친구일 것이다.
... 또 여전히 짖궂은 장난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림 출처: <얼굴 빨개지는 아이(별천지)>의 116~119쪽을 스캔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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