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도서관>, 존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세종서적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유능한 직원이던 존우드는 엄청난 일벌레이고 또 그만큼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모처럼 얻은 히말라야 휴가여행에서 새로운 인생으로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배움의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아이들과 청년들,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고 책을 보내주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그가 영리기업에서 익힌 그 사업수완으로 비영리사업을 엄청나게 추진한다. 마침내 그는 'Room to Read'라는 NGO를 통해 전세계에제3세계 국가들에 150만권의 책을 기증했고 3,0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뉴스위크>지가 이런 그를 "자선을 또 다른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확장한 가장 좋은 사례이다"라고 칭찬한 것은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그가 그런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곧 지금 살고있는 환경, 잘 나가던 직장, 집, 여자친구, 관계들로부터의 결별과 분리를 의미를 의미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역시 이로인해 고민한다.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결정은 점점 힘들어졌다. 나는 부모닌ㅁ과 선생님께 사랑받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착한 아이였다. 이따금씩 내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성격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를 가장 신뢰했던 두 사람을 내가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74쪽)
그러나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을 충분히 다 이해시킬 수 없음도 동시에 자기의 의지를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민첩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대신 그가 꿈꾸는 새로운 일은 그의 가슴을 기대에 부풀고 희망으로 뛰게 했다.
나 역시 교사를 그만둘 때, IMF 경제위기 시절 사회복지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고 앞길이 환한 영어교사가 아닌 학교사회복지라는 좁은길을 선택할 때에도 그와 비슷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그 때 나를 격려한 것은 '좁은 길로 가라'라는 성경말씀, 거창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읽은 '가족이 말리는 길이면 반드시 가라'는 교훈, 그리고 이 두 가지와 일맥상통한 두레연구원 시절 김회권 목사님의 설교였다.
갈등에 빠진 그에게 힘이 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고였다.
"얘야, 네 인생을 만족시킬 단 한 사람은 너 자신뿐이란다. 네 엄마와 나 또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우리를 기쁘게 만들려 하지 말거라. 네가 생각할 것은 오직 너 자신에게만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이다." (79쪽)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묻고 마음에 들 때까지 대답을 개발한다.
"나는 도서관을 건립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맘에 들지 않아서 다시 대답했다.
"저는 책을 야크 등에 실어 히말라야의 오지 마을에 전달합니다."
아니, 이것도 정답이 아니다. 마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제 3세계를 여행하는 돈 많은 한량같이 보였다. 그리고 너무 건방져 보였다.
세 번째 대답.
"저는 네팔의 가난한 마을에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줍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목욕탕 거울로 걸어가 파티에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네팔의 가난한 마을에 학교와 도서관을 짓는 기관을 조직하고 경영합니다."
나는 똑바로 일어나서 대답했다. 정답이다! 만일 누군가가 나를 비난한다면 나는 그것을 무시할 것이다.(80쪽)
또 한 가지 이책에서 발견한 것은 '숫자'로 싸우는 것의 힘이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시절 상사인 스티브 볼머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숫자였다. 이를 그들은 '볼머주의'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숫자를 모르는군요."라는 말로 치명타를 날렸다고 한다.
볼머: 새로운 태국 버전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몇 퍼센트입니까?
폴: ....
나: 전년 대비 80퍼센트 증가했습니다.
볼머: 그래요? 이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나는 모르겠군요. 나는 전 세계 합격률을 모르니 비교대상이 없군요.
나: 전 세계 합격률은 52퍼센트입니다. 6개월 만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합격률에서 세계 평균보다 28퍼센트 향상되었습니다. 이제 태국의 윈도스 NT 자격증 소지자는 10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볼머는 내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계속 진행하라는 그의 신호였다.(177쪽)
나는 통계나 숫자와 친하지 못하다. 대신에 '감'이 강하고 타의 육감적인 통찰에 많이 의지한다. 그러나 숫자는, 데이터는 힘이 있다.
학교사회복지사협회 회장 시절, 국회의원이나 정부 부처 관료들과 정책을 논의할 때 숫자는 그 위력을 발휘했고 또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학교사회복지가 지향하는 학생과 주변 인간 관계의 변화라는 것이 숫자로 그렇게 잘 나타나지도 않으며 단기에 변하지도 않는데 매년 새로운 예산을 확보하려면 1년 이내에 아이들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계로 입증해야만 했다. 가능한 때도 있었지만 그리 쉽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또 학교사회복지사로 학교에 있을 당시, 교장이나 교사들 앞에서 학생을 옹호하거나 어떤 개입 또는 프로그램을 주장할 때 데이터가 설득력을 뒷받침해주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숫자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생복지나 교육복지 관련해서 중요한 숫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무지 노력한다. 하지만 참 어렵다. 예전에 성경이나 우리나라 산맥이름을 외우기 위해서 머릿글자로 노랫말로 만들어외우기도 했듯이 무슨 수를 내야할 듯도 싶다.
우연히도 주변을 보면 많은 학교사회복지사들도 나처럼 숫자에 무기력하다.
우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숫자(통계)를 맹신해서도 절대 안 되지만 숫자는 분명 힘이 있고 그 힘이 우리를 강하게 해준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존 우드의 박애정신이나 화려한 기부사업 추진에 대한 감동이나 찬사가 아니다. 사실 이런 식의 자선이나 기부는 그리 지지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존우드라는 이가 새로운 인생의 가치, 의미있는 일을 발견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송두리째 바꾸기 위해 어떻게 두려움과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갔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들이,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학교사회복지 분야를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존우드에게서 냉철한 자기확인의 과정과 정직한 헌신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도전하라. 끝까지 자신을 던지라고.
지금 학교사회복지를 하고 있지만 힘들고 속으로 갈등하는 이들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만족할만한 대답을 찾을 때까지 존우드처럼 자기와 싸워보라고 말하고 싶다.
너는 왜 거기 있는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하고.
이것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모범답안은 없다. 그러나 묻고 대답해야 한다.
'책과 영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대는 왜 있는 집 자녀만 다닐까? (0) | 2011.07.15 |
---|---|
산만한 우리아이 어떻게 가르칠까 (0) | 2011.07.15 |
사랑의 기술 (0) | 2011.07.10 |
합★체 (0) | 2011.07.03 |
꼴찌들이 떴다 (0) | 201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