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둘째들의 수난

샘연구소 2011. 7. 29. 00:15

학교에서 일할 때나 요즘 법원에서 의뢰받은 학생들을 만날 때 많은 아이들이 '둘째'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왜 하필 둘째들일까?

 

1.

영미는 언니와 연년생 자매이다. 언니는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그런데 영미는 외모에서부터 눈에 띄는 데다가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삥을 뜯어서 나에게 의뢰되었다.

이야기하다보니 영미는 계속 이 집 저 집 친구집이나 그냥 길에서 만난 아이들 집을 전전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건 또 왠 일?

엄마와 아빠가 이혼 후 아빠와 살고 있는데 아빠가 너무 악랄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단다. 아빠는 아주 포악해서 전에 술을 먹다가 술병을 깨서 스스로 자기 배를 그어서 군대에도 안 갔고 옆 집 개가 짖어서 시끄럽자 뺀치로 혀를 잡아 뽑아서 잘라버렸다고 한다. 자기가 놀다가 조금만 늦게 들어가면 어떻게 할 지 모르고 너무 무서워서 못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우선 영미가 요즘 지내는 집에 같이 가보았다. 동네에서 놀다 만난 남학생(우리학교도 아니고 평소 알던 친구도 아니다)의 집에서 며칠밤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마침 그 남학생의 엄마가 계셨다. 엄마는 영미가 불쌍해서 재워주고 있다고 하셨다. 참 고마우신 분이었다. 나는 일단 집과 보호자를 확인하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다음엔 영미 아버지를 만날 차례였다.

영미는 절대로 혼자 오지 말고 경찰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글쎄?

전화를 드리니 저녁 9시 이후에 퇴근이라고 하셨다. 그 시각에 집으로 찾아갔다. 어둡고 외진 골목을 따라서 좁은 다세대주택 3층으로 올라갔다. 아버지가 열어주셨다. 영미와 영미 언니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편안한 인상에 예의바른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나는 영미 아버지와 마주 앉아서 약 30분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영미가 서너살 때부터 엄마와 다툼이 잦았고 그래서 영미를 엄마가 잘 못 돌봤는데 결국 다섯에 엄마가 집을 나가서 이혼하게 되어 줄곧 아빠 혼자 키워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집에 늦게 들어오고 외모나 하는 짓이 탈선청소년 같아서 몇 번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반성을 하게 하고 야단 친 적을 있지만 때린 적도 없는데 계속 집에 안 들어와서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이혼한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용돈을 타내서 흥청망청 쓰고 있다면서 엄마가 영미의 이간질에 놀아나서 영미 말만 듣고 아빠를 미워한다고 걱정했다.

10시가 되어서 나오자 잠깐 기다리라며 근처에 가서 배를 한 상자 가져다 주셨다.

 

이후에 영미는 집에 들어갔다가 상담을 거쳐서 시골의 엄마집에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와 한 학기를 지내고 다음 해에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그 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엄마 품에서 지낸 덕일까?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난 것일까? 잠시만 변한 척 하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영미는 눈에 띄지도 않게 잘 지냈다. 가끔씩 사회사업실에 와서 생글생글 웃으며 내 근황을 물어오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을 평가해주기도 했다. 밝고 귀여운 모습이 되살아나서 기뻤다. 그땐 왜 그랬을까?

 

 

 

2.

수진이는 어른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성행위를 해주며 길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과 살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서울 외곽의 인가가 뜸한 동네에 사는 수진이네 집으로 가정방문을 해서 아버지와 언니, 수진이를 한 자리에 만나 나를 소개하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에 인터넷에 빠진 엄마가 채팅으로 만난 남자를 찾아 집을 떠나버린 이후 일탈이 계속되었다고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안 하고 무단결석 하는 날이 생기다가 결국 중2에 그 무단결석이 몇 달로 길어지면서 이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언니는 차분하게 생겼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식당에서 주방일을 보는 아빠 대신 살림도 잘 하고 있었다.

수진이는 짙은 화장과 손톱 매니큐어, 옷 등 외모만으로는 중2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수진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무섭게 생긴 수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말이 없는 수진이와 몇 번을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등등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 둘이 만나서는 잘 웃고 나에게 질문도 해왔다.

네 번쯤 만나는 동안 수진이는 집에서 사는 것에 조금씩 적응해갔고 아빠와의 관계도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영락없는 사춘기 여학생이었다.

내 맡은 기간이 끝나서 만남을 종결했지만 또래 친구도 없는 사랑스러운 수진이가 지금도 잘 지내는지, 요리학원은 마쳤는지 궁금하다.

 

 

내가 만난 둘째들이 생육사에서 중요한 시기에 엄마와 아빠의 불화나 이혼으로 안정되고 따스한 사랑을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정신역동이론상 '애착'에 손상이 간 경우이다.

또 애들러(A. Adler)가 말했듯이 형제서열상 첫째는 어려서부터 책임감을 강조하고 동생을 돌보고 엄마를 도와 살림을 거드는 등 가정에서 기여하고 칭찬받을 만한 역할을 부여받기 때문에 일탈의 기회가 적지만 둘째는 상대적으로 언니를 따라 '무임승차'하면 되는 역할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로부터 지적을 받을 일도 피할 수 있지만 칭찬을 듣거나 역할을 부여받을 기회도 적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의 자리가 비어지면 순간 어디에 소속되어야 할지,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자라서는 첫째들이 새로운 일에 모험이나 도전을 몸사리게 되고 오히려 둘째들이 변화에 잘 적응하고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칭찬과 꾸중 등 외부로부터의 잦은 보상에 노출되며 자란 첫째들은 계속해서 외부에서 그런 확인이 오지 않는다면 도전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외동이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둘째는 비교적 그런 외부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더 공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보면 내 밑의 둘째인 여동생은 맏이로서 모범적인 책임을 강요받고 그대로 수용하며 자란 나에 비해 부모님의 칭찬을 덜 받았고 그래서 나에 대해 피해의식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보다 씩씩하고 당당하게 잘 살고 있다.  두 딸을 기르면서 느낀 것은 첫째 때 멋 모르고 기르느라 실수한 것들을 오히려 둘째때 수정하게 되고 '내리사랑'이라고 둘째를 더 애지중지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꼭 둘째가 성장과정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내가 본 결정적인 일탈의 시기는 사춘기인 중학교 1, 2학년 무렵이었다. 여학생들에게 사춘기에는 소속감과 애정에 대한 욕구가 강해서 가족이나 또래 친구로부터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따돌림 당한다고 느낄 때 방황을 한다. 생육사와 이혼의 시기, 둘째라는 형제서열, 그리고 사춘기 여학생 시절의 혼돈이 중첩되면서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나 생각된다.

 

사춘기 여학생들, 특히 둘째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과 기대를!

그 시기만 잘 지내면 누구보다도 밝고 당당하고 멋진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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