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런던 여행중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았다.
출처: http://www.billyelliotthemusical.com/explore/showstory.php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역경을 딛고 꿈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시대배경은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수상의 보수당 정권하에서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재편 과정에 맞선 1984~85년 광부들의 대파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빌리는 광부인 아버지와 형을 포함하여 마을 전체, 아니 나라 전체가 겪고 있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의 반대를 뚫고 ‘춤’을 향한 열정을 추구한다.
특히 이 이야기는 원작자인 Lee Hall 자신이 1980년대 초 북동부 뉴캐슬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
“Thatcher 수상 정부는 북동부 지방이 자랑스럽게 간직해온 산업적 유산, 공동체로서의 연대감, 심지어 광부들의 거친 유머까지도 속물적인 도시 중산층의 관점에서 공격을 해대며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것 같았다. 마치 나라가 1930년대로 되돌아가서 빈부의 양극단으로뿐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에 의해 둘로 갈라지는 듯 했다.(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홈페이지에서 원작자의 말)”
그는 당시를 마치 ‘내전’을 목격하는 것과 같았다고 회상한다. 당시 소년이던 작가는 시와 음악, 연극에 심취하면서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몇몇 의식있는 선생님들 덕에 작가의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글쓰기에 가장 중요한 창조적이고 풍요롭고 영감이 풍부한 소양은 이미 고향인 탄광마을 뉴캐슬에서 만들어져 있었음을 깨닫고 캠브리지를 떠나 자신의 실제 삶에 바탕을 둔 일종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극본으로 쓰기 시작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작품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 속에 내재한 이런 가능성들이 자라나 꽃피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빌리 엘리어트들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빌리 엘리어트가 시사하는 의미는 태어난 출신배경에 주저앉지 않고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 있다.(Lee Hall)”
이미 영화를 본 적이 있지만 뮤지컬이기에 훨씬 더 생생하고 감동적이었다. 억센 사투리와 유머, 남성합창과 남자들의 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많이 웃었고 박수를 치며 몸을 흥겹게 흔들었고, 몇 번이나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빌리 엘리어트가 성인 남자 무용수와 둘이 춤을 추다가 하늘 위로 나는 부분에서는 모두가 넋을 놓고 감동했다. 생김새도 각각인, 전혀 춤이나 노래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들이 리듬에 맞춰 노래를 하고 몸을 놀려서 훌륭한 춤과 노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로 큰 즐거움이었다. 빌리 엘리어트의 춤은 그가 말했듯 그의 노래이고 꿈이고 절규이고 자유 그 자체였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영혼으로 추는 춤. 몸이 그대로 움직이게 하는 춤처럼 보였다.
광부들이 경찰들과 대치하는 시위 모습과 아버지가 큰 아들과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평택 쌍용자동차 사건과 이랜드, 콜텍, 유성기업, 지금도 진행중인 한진중공업 사태들이 떠올라서 더욱 남의 이야기 같이 들리지 않았다. 이상을 굳게 붙잡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아들, 작은 아들의 오디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노련한 삶의 지혜로 보아 결국 그 파업이 실패로 끝날 것임을 알고 출근하는 아버지의 그 마음 모두가 다 각각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의 갈등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런 속에서 과연 우리나라의 빌리들은 무용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한의 탄광부의 아들이 ‘서울예고’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한가 말이다. 아니, 입학한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지금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은 죽지 못해 산다. 그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이 꾸던 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안타까운 것은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그 넘치는 껄쩍지근한 유머를 다 웃어주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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