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국 영화 <굿바이 보이 (2011)>를 보았다.
약 두 시간 정도 길이로 지난 6월에 개봉한 노홍진 감독의 최신작이다. 출연한 영화배우들은 주인공 격인 소년 연준석, 아빠 안내상, 엄마 류현경, 누나 김소희 등인데 안내상 외에는 아주 낯선 이름들이다. 이 영화는 제14회 멕시코 과나화토국제영화제 신인경쟁 부문에서 대상(Best International Opera Prima)을 수상했다.
영화는 1988년, 백수 아빠와 사는 네 식구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출처: daum 영화)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6036&videoId=31480
찢어지게 가난한 집. 아빠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대충 산다. 정치판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아들이 아끼는 개를 동네 껄렁한 남자들과 '먹거리'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술주정뱅이에 고리타분한 남자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 헤어지려고 자주 보따리를 싸들고 나가지만 금세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역시 1980년대다. 원수같은 남편이라도 그 화상이 불쌍해서 차마 떨치지 못하고,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라도 지긋지긋한 집으로 되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같으면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화끈하게 나갈 것이다. 아내들도 더 이상 그런 것을 참지 않는다.
고등학생인 딸은 그런 아빠와 엄마를 제법 냉철하게 본다. 아빠를 경멸하고 당차게 비난한다. 엄마가 나갔어도 금세 되돌아올 것을 예견한다. 엄마를 한심하게 보지만 그래도 까막눈 엄마가 '당하고' 사는 걸 보다못해 한글을 가르치기도 한다.
중학생인 아들은 주인공이지만 별 말이 없다. 주장도 그리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누나와 대비되게 아빠를 종종 따라 나서서 싫은 표정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돈을 벌겠다고 신문을 돌리면서 밑바닥 생활을 배우고 익힌다.
주변엔 집에 방 하나를 세들어사는 여자 대학생, 결국은 민주화투쟁 중 전경의 곤봉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신문사의 가난한 밑바닥 사람들 모습. 동네 청소년 폭력의 현장에도 가진 자와 없는 자로 갈리는 현실. 뒷골목 양아치가 조폭으로 성장하기도 하는 모습 등이 배경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들이 사는 물리적 조건은 빈곤이다. 사회적으로는 소외계층이다. 정치적으로 무력하다. 문화적으로 학식도 없고 촌스럽고 단순하다. 부모는 백수이거나, '비정규직'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일을 하는 노동자다. 배운 것도 없고, 인맥도 빽도 돈도 재산도 없다. 자녀들도 요즘으로 치면 '교육복지사업 집중지원대상 학생'이다.
영화는 화려한 스토리나 화면을 기대했다면 참 싱겁다 할 수도 있고,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마치 성실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본 이들의 영화평도 양 극단으로 갈리는 것 같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들도 살짝 희화화해서 웃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심각한 문제를 지나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신파쪼로 눈물을 쥐어짜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 현실.
나는 보는 내내 그 가족의 고통과 행복, 자라나는 딸과 아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느낌과 생각이 떠오르고 멀어져갔다. 이들은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집에 살고, 변변한 옷도 못 입고, 짜장면조차도 잘 못 먹고,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억눌리고 빼앗기고 맞으면서 사는 우리이고 이웃. 가난의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가난하다고 해서 이렇게 '총체적'으로, 전인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제되고 억압되고 조롱당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것이 세상의 법칙인가?
이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인간다움, 예의, 배려, 사랑, 희망, 그런 것들은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사라질까. 이들의 인내와 그 탄력성은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
남자아이는 실업계 고교로 진학했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 공부는 잘 했을까? 학비는 잘 냈을까? 친구관계는 어땠을까? 선생님들에게 맞고 무시당하진 않았을까? 노는 날, 방학 땐 무엇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졸업후엔 어떻게 되었을까?
누나는 아마도 상업계 고교를 다녔던가? 영화에 나오지 않은 삶은 어땠을까? 아마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알바를 했겠지? 졸업 후엔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는 어떻게 살게 될까? 10년쯤 지나면 영양부족과 고된노동, 심리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싸우게 되겠지? 한글공부는 잘 마쳤을까? 글을 깨우친 엄마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족이란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학교는 이 아이들의 삶에 무엇일까?
이들이 살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나 더 악화되었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가 죽은 뒤 세식구가 달동네를 떠나 이사를 간다. 그리고 주인공 진우는 따라오는 친구(형이었나?)를 떨쳐낸다. 자전거를 타고 끈질기게 따라오던 그는, 주인공의 소년기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그 우상같은 존재, 그러나 폭력의 피해자로 지적장애인처럼 되어버린 그는 사실 실제가 아니라 상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마저 이별한다. 그래서 굿바이! 소년시절이다.
감독에게 이들 가족의 이후 삶을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진우야, 잘 살고 있니? 누나는? 엄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