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구제역이 지나갔다고?...

샘연구소 2011. 3. 11. 19:28

지난 해 11월 발생한 구제역(hoof-and-mouth disease)과 조류독감으로 겨울동안에 전국에서 약 880만 마리에 가까운 소와 돼지, 조류들이 죽어갔다. 지방에 다니면서 여러 곳에서 차에 약살포를 받았다. 날이 추우니 바닥이 얼고 창에 붙은 약물도 얼어서 안 떨어지고 바닥의 얼음을 연신 삽으로 긁어내는 분도 보였다.

병에 걸린 동물들을 치료하기 보다 너무 빨리 번지면 고기 유통이나 가격, 대외이미지 등에 손상이 갈까봐 급히 손을 쓰느라고 마구 땅에 묻었다.  근육이완제를 맞고 실신해서 묻힌 동물도 있지만 대개는 산 채로 땅에 묻혔다.

 

한 마리, 두 마리도 아니고, 열 마리도 아니고 880만 마리란다. 무게로 치면 사람 1천만명을 땅에 묻은 것이란다. 그 중 대다수가 산 채로 묻혔다. 어느 분이 촬영한 돼지 생매장 동영상을 보았다. 비닐을 친 좁은 구덩이에 꾸역꾸역 던져진 동물들의 비명이 천지를 찢었다. 지켜보는 농민, 공무원 중에 꺼이꺼이 통곡을 하는 이도 있었다.

 

구제역은 발굽이 2개인 소·돼지 등의 입·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긴 뒤 치사율이 5∼55%에 달하는 가축의 제1종 바이러스성 법정전염병이다. 소의 경우 잠복기는 3∼8일이며, 초기에 고열(40∼41℃)이 있고, 사료를 잘 먹지 않고 거품 섞인 침을 흘린다. 잘 일어서지 못하고 통증을 겪는다고 한다. 구제역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아직 없고 백신 예방법만이 이용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이런 구제역 바이러스는 발굽이 두 개인 소나 돼지, 말과 같은동물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전염되지도 않으며 대개는 고기를 익혀서 먹기 때문에 구제역에 감염된 고기를 먹어도 사람이 피해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소를 계속 죽이고 있는가?  

우선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많이 먼 곳까지 돌아다니니까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퍼져서 전국 축산업에 미칠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가축을 죽이려면 특별한 약물을 주사하는데 그것도 이미 고갈되어서 거의 90%의 가축을 산 채로 땅에 묻고 있는 지경이다.

 

 

결혼할 무렵 내 남편은 시골에서 주로 소를 돌보러 농장들을 돌아다니는 수의사였다.  

조심스럽게 따라다니며 가까이에서 본 소의 눈은 그야말로 빠져들 듯한 순수한 호수 같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소의 병을 슬퍼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따스하게 부엌에서 데워다주시는 소젖(우유)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영화 '워낭소리' 중에서 - 출처: 네이버 영화)

   

또, 남편의 선배 댁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경상도에서 소를 수백마리 키우시는데 소의 하루 일과에 따라 그분의 기상과 취침, 식사를 포함한 하루 일과와 365일 일정이 정해진다. 하루종일 잠시도 쉴틈없이 소들을 먹이고 치우고 준비하고 닦고 하시느라 나와 잠시 마주앉을 새도 없었다. 소는 '고기'이기 이전에 돌보고 교감하는 친구이고 자식이었다.

   

이분들에게 소는 우리가 수퍼마켓 매대에서 고르는 가격 매겨진 '상품'이나 회식자리에서 술과 대화를 거들어주며 불판위에 익어가는 '고기'로서의 소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소는 가족이고 분신이고 생활이다.

그런 소들을 죽이거나 기절시켜서 아니, 산 채로 땅을 파고 묻고 있다. 잠이 올까. 밥이 넘어갈까? 아침이면 저절로 떠지는 눈, 저절로 일으켜지는 몸, 저절로 축사로 향하던 발걸음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그리고 그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텅 빈 축사(주간경향 2011. 1. 20.) 

 

남편의 사업으로 미국의 축산업계를 잠시 돌아본 적이 있다. 그곳의 소나 돼지들은 한국에서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 것은 너른 풀밭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지내는 것을 보고였다. 우리나라의 축사는 시멘트바닥에 제가 싼 오물들이 섞인 짚 위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사료를 먹고 산다. 얼마나 비위생적이고 행복하지 않은 삶인가?

 

그러나 우리는 환경, 이웃, 동물 건강에 대한 배려 없이 그저 더 많이 고기라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다보니 사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구제역같은 전염병 말고도 많은 문제들이 그대로 쌓여왔다. 농림수산식품부(이름도 어려워. -_-;;) 통계로는, 우리 축산농가에서 동해·서해의 먼 바다에 버린 돼지 분뇨가 2009년 전체의 7%인 117만t, 지난해엔 150만t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축사에 처리시설이 충분치 않아 분뇨를 곧바로 빼내지 못하는 곳도 많고, 퇴비로 발효시키는 장치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 일쑤이다.

 

또 마리당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좁다. 지난 2010년 11월 말 소 사육은 300만마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2000년 159만마리의 거의 갑절이고, 1년 전의 263만5천마리보다 13% 이상 많아진 것이다. 또. 돼지 사육은 지난 1년 동안에만 55만마리가량 또 늘어났다. 이제 우리의 소·돼지 사육 마릿수는 땅 면적이 4배 이상 넓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큰 돼지 한 마리당 0.8㎡이라는 공간을 보장하도록 제시한 정부의 기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나오는 가축의 분뇨와 악취 때문에 지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웃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얼만큼 보느냐에 따라 해결책들도 다양하게 나올 것이다.

 

동물을 '가축 상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이들의 생명과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것이 곧 인류의 일이고 나의 일이다. 나와 소가 무엇이 다른가. 육식이 얼마나 지구 환경을 망치는지 조금만 공부해보면 알게 된다.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또 우리는 이제 이 땅을 치유하는 큰 숙제를 안았다. 이들의 영혼과 몸의 잔해는 대한민국 전체를 가축공동묘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시에 가축과 일과 밥을 잃은 사람들에게 단지 돈이 아닌 새로운 삶을 찾아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