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하다가 사회복지사가 되어 현장에 나가니 모든 일에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 큰 과제였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에너지를 아이들과 만나고 가정방문을 하고 교사를 만나고 활동하고 싶고 그러기에도 벅찬데 날마다 무엇을 증명해야하고 그러기 위해 기록하고 증빙자료들을 축적해서 꾸미고 비치해야 하는 일이 싫었다. 그런데 이제는 교사들조차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고 계속 컴퓨터에 기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성과주의, 효율성이란 '미신'에 사로잡힌 것 같다.
이론을 공부해보면 성과, 효율성, 다 맞는 말 같다. 그래서 그래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대로 되면 뿌듯하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또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그대로 안 된다. 된 것 같은데도 금새 엎어진다. 그럼 내가 한 짓이 사기가 된 것이다. 난망하다....
더구나 나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변화를 양적인 통계도구로 재고 증명하는데 알레르기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요즘 사회복지계에서 석사, 박사하기에 아주 고질적인 장애를 지닌 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본능이 그렇게 자꾸 외치니까...
그런데 최근 100년전 프랑스의 사상가인 자끄 엘륄이 쓴 책을 읽고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200년전 마르크스를 비롯한 인본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악마성을 보고 비판했다면 그 100년 후 자끄 엘륄은 100년전에 마르크시즘조차 효율성과 기술주의에 종속당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비판은 모두 지금 우리 사회에 다 적용된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비판 기저에 이미 기술과 효율성에의 종속이 예견되어 있다. 기술과 생산력이 노동관계과 제도를 변화시킨다고 했던 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스웨덴이나 핀란드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좀더 (교육이나 학교사회사업이란 장만을 볼 때) 기술주의에서 자유로운 것 같다. 그들은 최소한 아이들에 대한 개입이 과연 성과를 내고 있는지 돈 들여 유명학자 모셔서 때마다 평가하고 기록하고 보고서 인쇄하고 자기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는데 우리만큼 그리 열을 올리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유난히 그렇다.
그래서 모든 강의와 워크샵, 학회지조차도 기술과 효율성에 쏠려있다.
과연 아이들이, 사람이란 것이 이런 저런 이론과 '기술'을 가지고 주무르면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을까? 주무르는 사람의 '마음'이란 것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엘륄의 성찰은 훨씬 심오하다. 그는 기술이 스스로 자기 정당성을 부여하고 모든 학문을 통합하며 그 아래 복속시키는 과정을 예견하고 비판한다. 우리나라에 그의 책들이 꽤 많이 번역되어 있다.
사회복지계나 교육복지 관계자들과 그의 성찰을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