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종종 나쁜 조건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가족을 만난다. 도무지 이 아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야 할지, 상황을 설명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좌절하게 된다.
경수(중1)는 아버지가 실직한 후 술중독이 되셨다. 그러다가 암에 걸렸다. 몇 년 동안의 투병에 전셋방과 낡은 자동차가 사라졌다. 누나와 경수를 데리고 살던 엄마는 혼자서 살림하고 돈을 벌며 살기에는 너무 힘이 부쳤다. 여관방과 고시원을 떠돌다가 결국 누나는 혼자 살 길을 찾아 나가고 경수와 엄마는 노숙인 신세가 되었다. 경수가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은 이들의 삶에서 아주 사소한 변화이다.
권희(초6)는 아버지를 모른다. 엄마는 어린 아기인 권희에게 물말은 밥과 수저만을 주고 방을 잠근 채 혼자 일을 다니곤 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어느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고 식당에서 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권희는 아무도 없는 어둡고 차가운 좁은 방에 들어가기 싫었다. 말하는 것, 사람과 눈 맞추는 것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권희는 학교에서 관심과 사랑, 이끔과 배움보다는 더 큰 제재와 따돌림에 시달렸다. 권희는 집도 학교도 소속감 없이 떠돌며 세상이 집인 아이가 되었다.
미희(중3)는 버스기사를 하던 아빠가 돌아가시고 오빠와 엄마와 살았다. 일하던 오빠가 교통사고를 낸 뒤 교도소에 갇혔다. 엄마는 만성신부전증으로 앓고 있다. 거동이 많이 불편하시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 집에 들어가면 일을 해야한다. 들어가기가 싫다. 학교에서는 가정환경을 이야기하기 싫다. 숨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엄마의 병이 낫고 오빠도 집으로 돌아오게 했으면 좋겠다. 다시 가족이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은 모두 교육복지사업학교에 다녔거나 지금 다니고 있다. 담임교사나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모른 채로 진행된 상황들도 있고 일부 또는 전부를 알고 있는 사례도 있다.
위의 사례들에서 사실 내가 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노숙인 가족쉼터를 연계하고, 방과후 지역아동센터를 소개해주고, 상담을 해주었지만 참 초라한 실적이다. 무언가를 부산스레 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안해하고 아파해야 한다. 함께 분노하고 좌절하고 꿈도 만들어가야 한다.
교사나 지역사회교육전문가, 학교사회복지사는 이런 아이들을 대개는 그저 '가난한 아이', '집중지원대상학생' 정도로만 알 뿐이다. 그러는 사이 몇몇 아이들은 화려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의 틈새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교사나 학교사회복지사, 상담사는 아이들에게 항상 열린 마음과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아이들이 직접 말하기 전에는 그저 일상적인 '사업을 돌리느라' 아이들의 세세한 삶의 '결'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세심하게 진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막상 가정방문을 해보거나 아이 얘기를 듣고 나면 당황하거나 너무 압도되어 어쩔 줄 몰라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되기 쉽다.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침착하게 상황에서 사실과 정보를 수집하고 강점과 욕구들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을 확보하는 일을 일단 최우선으로 하면서 필요한 것, 지원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내내 모든 과정에서 내내 아이, 가족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중심에 서도록 묻고 들어야 한다.
가상의 사례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하나하나 써보자.
- 현재 수미의 생존과 학업을 위협하는 여건들
1. 의식주와 안전 2. 엄마의 병 3. 오빠의 폭력 4. 정서심리적 불안과 외로움, 슬픔
- 수미가 원하는 것들
1. 엄마가 치료받는 것 2. 오빠로부터 안전해지는 것 3. 공부를 잘 하는 것
- 수미를 위해서 해야 할 일들
1. 집단프로그램을 통해 또래와의 교제와 사랑을 나누는 일(000 프로그램 안내)
2. 담임교사의 관심과 격려(담임 000 선생님)
3. 집에 저녁 도시락 배달 서비스(복지관)
4. 오빠, 엄마와의 상담 - 폭력중단(내가? 가족상담기관?)
5. 위생점검(씻기, 건강, 영양...) - 연구필요: 동사무소 직원과 상의하기
-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인 나에게 필요한 것
1. 수미 담임교사와의 긴밀한 협력
2. 수미와 매일 만나고 지지해주는 일
3. 내 마음 속에 희망과 사랑이 계속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는 일
이런 과정은 사실 사례관리를 극단적으로 간략하고 쉽게 표현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상황에 압도되는 적이 있다.
과연 우리가 아이들을 위협하는 상황들을 몇 개나 해결해줄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결국 작은 노력조차도 물거품이 되어버릴 때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또, 교육복지사업이라는 것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힘들지만 그 한계와 무력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는 거기 머무를 수 없다.
......
그것은 좌절인가? 포기인가?
그렇다.
하지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