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체력장'이란 체육 급수 시험이 있었는데 100미터 달리기, 도움닫기 멀리 뛰기, 왕복달리기, 수류탄 던지기, 윗몸 앞으로 굽히기, 철봉 매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600미터 오래 달리기 등을 시험봤다.
윗몸 앞으로 굽히기와 오래 달리기는 잘 했다. 유연성 만점! 하지만 철봉 매달리기는 거의 잡기가 무섭게 몸이 미끄러져 내려갔고, 수류탄 던지기(나중에 공던지기로 된 것 같다)는 늘 바로 2미터 쯤 앞의 땅에 내리 꽂기 일쑤였다. 정말 괴로웠다. 지금도 잘 못 던진다. ㅠ.ㅠ 그리고 100미터 달리기... 내가 달리면 체육 선생님이 농담으로 "얘들아, 텐트 쳐라. 경현이는 2박3일이다"라고 할 정도인 17초, 18초 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최근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렀다. 뭐니 뭐니 해도 육상의 백미는 100미터 달리기. 1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가슴을 졸이게, 벅차게 하는지! 나는 운동을 잘 못 하지만 저렇게 몸을 훌륭하게 쓰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멋있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통쾌하다. 방송을 보면서 대부분이 검은 피부여서 구분이 잘 안 되었지만 다들 정말 잘 뛰었다.
육상경기 중계방송을 보고 나니 2009년 7월 EBS TV에서 본 '리틀 러너(원제 Saint Ralph)'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중학생 쯤 되는 소년이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를 위해 기적을 일으키겠다고 마라톤을 뛰는 이야기다. 장애인 아빠의 이야기인 <I Am Sam> 과 탄광촌에서 무용수가 된 남자 아이 <Billy Eliot> 에 이은 휴먼 감동영화라고들 한다.
휴먼다큐, 감동적인 영화라고 하면 고리타분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늘 볼 때마다 빠져들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리고 보고 나면 왠지 내가 좀 착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리고 마음 속에 무언가 아주 소중하고 순수한 무언가를 간직하게 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사해진다. 이 영화 역시 그랬다.
카톨릭학교가 배경이어서 '기적'을 보는 신부 선생님들의 티격태격을 보며 나도 기적을 생각한다. 아이의 사춘기 관심들을 보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짓기도 한다. 간호사와 여자친구의 격려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여인의 힘'은 대단해!라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자연과 맨 몸으로 그저 달리고 달리는 아이의 모습 그 자체가 서럽도록 아름답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이를 응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감독 마이클 맥고완
출연 아담 버처(랄프 워커:주연 아역 배우)
캠벨 스코트(허버트 신부:<사랑을 위하여>에서 줄리아 로버츠의 연인 환자역)
제니퍼 틸리(간호사 엘리) 등
2007년 캐나다 산
엄마를 위해서 기적이 필요해.
오로지 달린다. 달리고 달린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정성으로, 열심히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대단한 능력자인 그들은 종종 숨어있다.
또 한 명, 아니 두 명의 조력자. 간호사와 수녀지망생인 여자친구.
근육키우기도 가르쳐주고 위로해주고 기도도 해준다. 여인의 힘! 엄마 말고.
드디어 결전의 날.
그냥 한다. 할 뿐이다. 그리고 모두 감동한다. 더이상 그를 막지도 못하고 비난하지도 조롱하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