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무렵 학교에서 진정한 교육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고민했다. 궁리 끝에 교사운동에서 해법을 찾아도 봤고, 대안학교도 생각했다. 1997년 처음 산청에 간디학교가 대안학교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활동을 지켜보던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대안고등학교를 가겠다고 자청했다. 아이는 스스로 인터넷으로 대안학교들을 검색해서 꽤 정보를 수집했고 몇몇 재학생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름방학 동안 아이와 함께 아이가 가장 가고 싶다고 생각한 3개의 대안학교를 직접 방문해서 따져보기로 했다. 그건 거창고등학교, 한빛학교, 간디학교였다.
거창고등학교에 가보았다. 입구의 기념비였던가? 지금은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이라고 알려진 전영창 전 교장선생님(목사님)의 철학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감동받아 나도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막상 교감선생님과 아이가 준비해간 질문들을 주고받으면서 입시위주 학교같은 인상을 받고 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간디학교로 갔다. 처음 아이는 학교 지붕위에 모여 앉은 요란한 머리 염색과 온갖 귀걸이, 찌르개 등을 한 아이들을 보고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학교를 돌아보고 마음이 기울어서 한빛학교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하는 방학중 캠프에 자원해서 참여한 뒤로 아이는 확실히 마음을 다잡았다.
고등학교 지원서를 내고 경쟁율이 높아서 걱정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에선 선생님들이 말렸다. "대안학교라면 문제아들이 다니는 학교라든데.."라는 걱정이 가장 많았다. 교장선생님 등은 아이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동일 재단의 고등학교에 다닐 것을 강권하셨다. 가족들은 "말은 제주로 보내고 아이는 서울로 보내라고 했는데 왜 서울 아이를 그 산골짝 하꼬방 같은 데로 보내냐!"고 반대하셨다.
아이는 잘 다녔다. 처음 방학식에 가보고 기절할 뻔 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헤어짐이 슬퍼서 줄줄 우는 것이었다! 이런.... 졸업식? 그거야 말할 것도 없지... 정말 모든 것이 감동의 도가니였다. 학부모들끼리도 학교동창들처럼 친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을 모셔서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모든 부모님의 모든 자녀들로 사랑받으며 잘 자랐다. 아이가 제 엄마 아닌 나 말고 다른 엄마랑 고민도 얘기하고 퀼트도 배우고 가서 자고 그럴 땐 좀 섭섭하기도 했지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아이가 찾았던 간디학교나 한빛학교, 그리고 그 이후에 생겨난 여러 학교들은 일반 학교의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이고 학습일변도이고 획일적인 문화에 반대해서 '참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로 생겨난 대안학교들이다. 그리고 그런 학교는 대부분 386세대 부류의 좀 '깨인' 중산층의 부모들이 많이 보냈다. 서울의 유명 학교들 못지 않게 학부모들의 열의는 뜨겁다 못해 근처에 가면 열기에 데일 지경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목말라 하는 자유를 한껏 준다. 기다리고 격려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으라고 한다. 부모들도 교사들도 사회와 교육의 문제점들을 알고 있기에 아이들에게는 그런 비판적인 안목이 잘 길러진다.
그 무렵 다른 대안학교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 중 일부는 학생 스스로 학교를 뛰쳐나갔거나 학교를 나가주었으면 하는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들이다. 내가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몇몇 아이들을 그런 대안학교에 보냈다. 2004년 무렵부터는 서울시교육청에서 그런 학교에 다녀도 재적학교 학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생겼다. 어떤 아이들은 그런 학교에서 문화 예술 프로그램 위주의 활동과 사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제법 잘 적응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다니기가 멀어서, 거기도 불편해서 싫어했다. 어떤 아이들은 1주일, 한 달을 다녔어도 돌아오면 여전히 그대로였고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서 부과한 징계기간만을 때우기 위해 다니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대안학교를 검색하면 수도권의 고급 귀족형 영어위주의 기독교계 대안학교들이 많이 뜰 것이다. 위의 두 부류와는 다른 유형이다. 위의 학교들이 대개 무료이거나 일반 학교의 학비에 기숙사비와 약간의 체험비가 추가되는 반면, 이 학교들은 엄청(!) 비싼 교육비를 받고 있다. 그래도 성업중이다. 그런 학교들 중에는 비인가도 많은데 대개 아이들이 미국 고등학교나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굳이 학교 인가를 받고 교육부의 감독을 받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안학교들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과거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학교교육과 다른 자발성과 사랑, 생태 공동체 등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들. 이념과 지향이 뚜렷하고 결속력과 자부심도 크다. 사회적으로는 좀 지식있고 소득으로는 중산층 정도의 부모들이 많이 보냄. 대부분 인가형, 즉, 특성화학교로 공교육 체제 내에 편입되었음. 산청간디고, 한빛고, 이우고 등.
2. 학교부적응행동이 심한 아이들을 위한 장단기 대안학교. 기숙학교도 있고 등하교형도 있음. 무료로 위탁하고 재학교의 학생으로 인정해주는 프로그램도 있음. 최근 교과부가 추진하는 '위스쿨'도 이런 유형임.
3. 좀 다른... 최고급의 미국식 교육을 제공하거나 기독교등 특정 가치관을 지향하고 실천하려는 대안학교들. 직접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독수리학교가 이런 유형인 모양이다.
1번과 같은 대안학교들은 이제 아이들을 졸업시킨 지 10년을 넘기면서 졸업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동안의 교육에 대해 평가를 해보자는 말이 나온다. 아이들은 다른 일반 고교 나온 아이들과 얼핏 보면 비슷하게 살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기들만의 생각이 뚜렷하고 자부심도 크고 동문들간의 동아리의식도 강하다.
또, 많은 학교들에서 처음 출발할 때의 옹골찬 뜻이 약해진 감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 구성원들간에 갈등도 생긴다. 종종 불화가 불거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비인가학교의 경우 더 심한데 재정이 빈약해서 애를 먹는다.
가장 큰 위기는 최근 경기도와 서울을 중심으로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하는 '혁신학교'사업이 힘차게 나아가면서라고 본다. 심지어 작년에는 마산(창원)에 정식으로 공립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태봉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대안학교의 좋은 점을 공교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추진하니 재정도 넉넉하고 인력도 지원도 풍요롭다. 그러니, 기존의 대안학교들은 과연 지금의 교육에서 '대안'이 무엇인가? 과거의 대안이 지금도 유효한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고 본다.
2번과 같은 대안학교의 경우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점들도 많다. 자칫하면 소년원같은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뒹굴면서 열심히 애쓰고 일하는 분들이 정말로 존경스럽다. 비인가인 경우 재정, 인력, 프로그램 등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지만 그에 못지 않은 자발성과 소명감으로 부족함을 오히려 풍족하게 메꿔나가는 모습이다.
서울에 위탁형 대안학교들이 많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다양한 개성을 다 담아내기엔 부족하고 또 부적응아이들만 모아놓고 교육하는 것의 부작용도 있다. 또 일반 학교의 교사들은 부적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보다 그저 아이들을 분리하고 대안학교로 내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런 학교에 아이들이 다시 돌아가기도 힘들다. 그나마도 지방에는 너무 없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정신없이 달리는 기차에서 잠시 내려서서 쉬다가 되돌아올 기회가 거의 없다.
3번 유형은 잘 모른다. 관여도 안 하고 가본 적도 없고 다닌 사람 이야기도 안 들어봤다.
입시철이다.
대안학교를 고민하는 분들이 문의를 해오신다. 절대로 동네 보통학교를 못 보내겠다는 분들이 많다.
대안학교가 생긴지 10년이 넘었지만 학교들은 여전히 팍팍하다.
그래서 혁신학교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대안학교들도 힘을 내서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다양한 개성만큼이다 다양한 진학 메뉴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다. 품질관리만 잘 된다면.
이호신 선생님이 그려주신 산청간디학교 전경
(http://gandhischool.net 에서 다운받음)
대안교육연대 http://www.psae.or.kr/index_body.php
대안교육학부모연대 http://cafe.daum.net/mf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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