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살림의 경제학 - 강수돌

샘연구소 2011. 12. 11. 21:46

 

 

<살림의 경제학>

강수돌 저, 인물과 사상사, 2009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못한 책을 근래에야 읽었다.

그가 쓴 <나부터 교육혁명>을 읽고나서 참 쉽게 읽히면서 명쾌하고 공감이 갔었다. 그이는 내 딸아이가 다닌 산청간디학교의 학부모이기도 했다. 직접 시골에서 이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경제학자의 책이 궁금했다.

 

이 책은 경제학적으로 얼마나 인정을 받는지 모르겠다. 글들은 경제학자에 의해 쓰여진 사회과학책이기보다 인문학서적처럼 아니, 어쩌면 수필처럼 엉성하기도 하고 감정과 통찰, 선언이 넘실댄다. 하지만 충분히 오늘날 경제의 문제를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서론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부자아빠"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처럼 우리사회가 근래에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는 행복보다는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고 보았다. 오직 돈을 위해 살고 죽는 비참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숭례문 화재 사건이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으며 그 속에서 인의예지신의 몰락을 본다.

여기까지만 봐도 좀 너무 막 쓴 거 아니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이런 경제분석에서 마르크스가 유용하지만 자본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히는 경제가치나 사회가치의 분석을 넘어 생명가치(생태순환, 생명평화)까지 적극 사고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가? ...

 

그래서 사다리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의 '죽임의 경제'를 극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의 내면과 정신을 살리는 '살림의 경제'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가르침처럼 이는 사람이 '티끌보다' 겸손해질 때에만 가능해진다. 허세와 자기기만, 그럴 듯한 웅변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림'의 길을 걷는데 꼭 가지고 갈 것이 두 개 있는데 이는 '자율성'과 '연대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어깨를 걸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자며 자신의 '살림의 경제학'은 곧 '희망경제학'이며 '행복경제학'이라고 했다.

 

책은 1부 자본주의의 끝에서 외치는 '살림의 경제학', 2부, 과도한 경쟁과 죽음을 부르는 시장논리, 3부 허울좋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4부 죽임의 현실을 바꾸는 행복경제학의 순으로 펼쳐진다.

 

본문에서 우리가 진정 행복하게 살려면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 관점으로 경제행위와 구조를 재창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사람들이 경제가치로부터 사회가치와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로 바뀌어야 하며, 그래야만 만족과 충분함을 알면서도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하느 ㄴ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돈벌이와 살림살이라는 두 패러다임의 차이를 아래와 같이 모델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돈의 패러다임과 삶의 패러다임의 차이> (71쪽)

  돈  삶 

인간

자연

농업

교육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인적자원, 가변자본

자연자원, 원료, 개발 대상

경쟁력 없는 산업, 저부가가치업

노동력 생산 공장

돈벌이 여건 조성

무한한 돈벌이

지배이데올로기, 이윤공간

노동력 공급원, 상품시장 

 생동하는 주체

생명의 원천, 사람의 어머니

생명업, 천하 근본

삶의 자율성 학습

책임있는 자기결정

건강한 살림살이

생동하는 삶의 과정 자체

공동체, 선물 주고받는 관계

 본질  파괴적 자기증식   창조적 상호관계

 

이렇게 놓고 볼 때, 행복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운동보다는 생산성 저하운동을, 모두 부자되기 운동보다는 '두루 소박하게 살기' 운동에 힘써야 한다고 한다.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먹고 더 적게 쓰면서 더 많이 존재하고 더 많이 관계하며 더 많이 행복해지는 그런 삶이 가장 보편적인 해답이라는 것이다.

 

그는 '살림의 경제'의 제5원칙은 바로 필요의 원칙이라고 하고 있다. (76쪽) 매슬로우가 말한 '내면 살림의 원칙'이 경제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주, 소질 계발, 자아실현, 여가, 창작 봉사와 같은 사람의 진정한 내적 필요에 귀 기울이고 이를 건강한 방식으로 실현하려는 경제라고 규정한다.

 

살림의 경제에 참여하는 주체는 주인의식, 자율성, 상호신뢰와 협동 같은 특성을 가진다.  '일'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아실현이며 사람과 자연을 모두 살리는 길이다. 또 소규모성, 지역성, 공동체성, 분권성, 성찰성을 그 특성으로 한다. (77-78쪽)

따라서 학교와 교육 역시 무엇보다도 삶의 자율성을 기르고 자아발견을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동시에 다른 존재를 보살피고 사회 전체의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태도와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평가는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를 단면평가보다는 다면평가를 선호한다. 모든 직업 사이에 기본 보상과 대우가 거의 동일하므로 학생들은 미래 보상 때문에 원치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지 않는다. 학습 내용은 개인의 적성과 소질, 사회적 기여도를 고려하여 선택한다고 한다. (81쪽)

 

9장은 "국민의 99%가 바라는 '복지사회'?"라는 제목으로 복지국가에 대하여 성찰한다.

복지국가는 권력자에게 어린아이가 투정하거나 구걸하는 방식으로 이룰 수 없으며 풀뿌리 민중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 복지국가 구성의 주요 인물인 G. 렌과 A. 고르, H. 아렌트, 그리고 천규석 선생 등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마을의 자치공동체를 살리는 것이 진정한 복지사회임을 강변하고 있다.

결국 기득권없는 밑바닥 주민으로부터 올라오는 운동만이 세상 변화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장의 말이 귀를 때린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복지국가 체제는 근본적으로 의심스러운 체제이다. 복지국가에서 사람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제도적인 보살핌'을 받는 '국민'이라는 피동적인 객체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김종철은 인간은 살아님기 위해 '사회 안전망'을 필요로 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서 무료로 교육을 받고 무상의료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제공되는 교육체제와 의료체제가 궁극적으로 과연 무엇을 위한 체제인지,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풀뿌리 민중의 자립, 자치, 자급의 능력을 훼손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의자유롭고 주체적인 정신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복지국가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202-206쪽)

 

강수돌 교수는 이어서 후진국의 궁핍과 선진국의 복지가 동전의 양면이며 그 뒤에는 제국주의 관계라는 잘못된 사회관계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김종철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빈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부자가 없는 세상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과격한 것 아닌가? 실현 불가능한 꿈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저자는 끈질기게 우리가 돈, 가치, 노동의 범주와 긍정적으로 결별할 것, 돈벌이를 위한 노동력의 사용을 지양하는 것 등 '탈가치화 운동'을 통해 진정한 삶을 추구하자고 부추긴다. 그러면서 대신에 '지원과 연대 속에서 서로의 욕구를 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213쪽)

 

그는 260쪽부터 264쪽에 걸쳐 "나부터 실천하는 교육혁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맞서려면 '저항과 대안의 변증법'이 필요한데 바로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저항과 함께 현실적 대안에 대해 토론하고 실험하며 미시적 차원에서, '나부터'의 차원에서도 대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출발점은 기존 질서가 강제하는 '두려움'에 갇히지 말고 과감하게 박차고 나오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니야'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동료나 이웃과 공유해야 한다. 소통과 연대를 통해 저항과 대안의 변증법을 작동시켜 나가야 한다. 결과적으로 성공할지 실패할지에 연연하지 말고, 잘못된 현실을 고쳐나가기 위해 만나고 논의하고 무너가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행복한 과정이야말로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정말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나는 과연 행복한가? 내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자기 혼자만 해서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가지시 않으므로 친구, 동료, 동지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고 불안해도 대안적 실천을 하나씩 해나가다보면 그 과정에서 작아도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라기보다는 사회운동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진다.

과연 전통 경제학이 빈곤을 해결했는가? 우리의 살림살이를 윤택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물질, 돈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는가? 과연 무엇이 경제학이며 경제학자가 할 말이고 일인가? 아마 그는 그런 질문을 파고 들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진정한 행복, 삶, 살림살이는 돈과 돈벌이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성찰하고 내면의 깊은 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대로 행동하는 작은 용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말고 함께 하는 것이다.

아울러 복지국가 논쟁에서 빠진 인간의 자존심, 영성, 내면의 필요 등에 대해서도 생각할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우리의 복지국가가 저차원적인 먹고사는 것, 쓰는 것, 갖는 것 등에 주목하지 않고 더 높은 내면의 욕구를 향하여 고민할 수 있어야겠다.

 

 

 

복지국가와 내면의 필요, 영성을 깊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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