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

샘연구소 2012. 3. 25. 23:44

지난 겨울, 북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조사해서 읽을 거리, 볼 거리들을 섭렵했다. 그 중에 꽤 흥미로운 영화들을 몇 편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가 ‘In a Better World(인 어 베러 월드)’ 였다.

스웨덴과 덴마크 합작 영화여서 내 그물에 걸린 것이다. 보고나니 ‘대어(大魚)’다.

 

영화의 주인공은 두 남자아이와 그들의 가족이다.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아이와 어른들 사이의 갈등, 폭력사건, 분노와 복수심, 인내, 용서, ... 등이 얽힌다. 내가 보기에 중심 사건은 네 가지 정도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1. 학교 내 아이들간의 폭력과 청소년기의 일탈행동

엘리아스. 남자. 초등학교 6학년~중 1 정도? 스웨덴에서 이민 온 듯. 치아교정 중. 얼핏 봐도 좀 어리버리하고 착하게 생겼다.

거기도 약한 아이들을 제 '밥' 삼아 힘을 자랑하는 애들이 있는 모양이다. 엘리아스는 그런 아이, 우리 식으로 하면 '짱'의 괴롭힘을 당하지만 집에 와서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킨다.

이 학교에 크리스티안이 전학왔다. 눈매가 무서운 아이다. 어린 애 속에 악마가 들었거나 어른이 들어있는 듯 한 포스다.

엘리아스가 당하는 걸 본다. 그리고 복수하려다가 자기도 당하자 무섭게 복수해서 졸지에 힘 센 아이를 제압해버린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맞짱'을 떠서 '일짱'이 된 것이다.

엘리아스는 자기를 구해준 크리스티안과 친해지면서 갈등과 번뇌 속에서 분노와 복수를 배운다.

 

 

 

 

2. 이민자에 대한 폭력

덴마크는 왕년에 노르딕 국가들 중에서 좀 맹주 구실을 한 모양이다. 한때 스웨덴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끼리 그네놀이하다가 티격태격한 것을 두고 덴마크 토박이인 남자가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에게 폭언을 하고 스웨덴으로 꺼져버리라는 둥 욕을 하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마구 때린다.

안톤은 조용하고도 깊은 카리스마로 그 모멸감을 참는다. 한 쪽 뺨을 맞아도 복수하지 말고 다른 쪽 뺨까지 내어주라는 성경말씀을 보는 것 같다. 보는 나도 치밀어 오른다. 아이들은 자꾸 보챈다. 그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그이를 찾아가서 따진다.

그런데도 그는 또다시 몰상식하게 스웨덴 떨거지라고 안톤을 욕하고 때리고 폭언을 한다. 주변 사람들도 그저 비웃거나 방조한다.

그래도 그는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며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자기는 진 것이 아니라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고.

크리스티안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친구 아버지를 위해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사제 폭탄을 만들어서 친구 아버지를 욕보인 그 사람의 차를 터뜨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찝찝하게 가담한 엘리아스가 폭발 순간에 행인을 구하려다 중상을 입고 만다.

모든 사건이 밝혀지면서 이 일을 꾸민 크리스티안이 위기에 빠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못 사는 이웃 아시아 사람들을 천대하고 막 부려먹고 사기치고 괴롭히는 것과 같다.

 

 

 

 

3. 인격을 따지지 않고 베푸는 의술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

아프리카의 분쟁지역 난민캠프촌에 진료소를 마련해놓고 사람들을 치료한다. 아이들과 모든 주민들이 그를 믿고 따르고 고마워한다.

그러다가 폭력적인 독재자 스타일의 반군 지도자를 치료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그가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한 악마라고 진료를 거부한다. 실제로 캠프촌의 사람들을 공격해서 임신한 부인의 배를 갈랐던 위인이다. 지금 한 쪽에서는 그 여인이 치료 중인 것이다.

안톤은 갈등한다. 의사로서 그를 치료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는 결국 장군을 치료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장군에게 당했던 여인이 결국 숨졌다. 그리고 그 장군은 안톤을 협박하며 제 멋대로 행동한다.

안톤은 화가 치밀어 그를 내쫓아버린다. 그리고 캠프 사람들이 결국 그 장군을 끌고 나가 복수의 집단폭행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살린 사람이 죽고, 죽인 사람이 다시 죽임을 당하고... 증오와 폭력, 복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4. 가족 갈등(부부, 부자...)

사실 주인공인 두 아이들의 각각의 가족관계도 풍파가 많았다.

 

엘리아스네. 실제 아버지 역의 영화배우는 스웨덴, 엄마 역 배우는 덴마크 사람인 것으로 보아 영화 속 엘리아스 부모인 안톤과 마리안느 부부는 국제결혼을 하고 여자의 고향인 덴마크에 정착한 것으로 짐작된다.

부부가 의사인 넉넉한 가정형편. 그러나 남편은 아프리카에서, 아내는 덴마크에서 일한다. 일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둘은 별거 중이다. 과거 안톤이 다른 여자를 사랑했었기 때문에 이들의 신뢰에 금이 간 것이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학교 교사도 이런 사정을 알고 아이의 일탈행동에 대해 부모 탓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아 뒤에는 문제부모? 사실 영화에서 학교 교사들의 행동은 아이들에게나 가족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크리스티안은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함께 런던을 떠나 덴마크의 할머니댁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그는 엄마의 치료를 포기한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아빠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세상에 대한 미움과 공격으로 대신한다. 자기가 당하지 않은 일도 그냥 보아넘기지 않고 그 일을 핑계삼아 자기 속의 분노와 복수심을 표출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온갖 방법을 써서 아들과 대화하려고 하고 설명해보지만 아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아빠와 마주보고 소리지를 때 소년의 눈빛, 그 목소리,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친구 아버지를 괴롭힌 사람에게 복수해주려고 꾸민 폭파사건으로 그 유일한 단짝 친구를 죽였다고 생각한 그는 혼자 즐겨 찾던 부둣가 고층건물 꼭대기에서 투신하려던 찰나 엘리아스의 아버지에 의해 구출된다.

이후 엘리아스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그의 엄마도 크리스티안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크리스티안과 그의 아버지도 화해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 속에 늘 있는 크고 작은 갈등과 오해, 폭력들.

복수할 것인가? 증오하고 분노할 것인가? 용서하고 품을 것인가?

무엇이 도덕이고 정의이고 존엄이고 평화인가?

 

대개의 영화평들은 이 영화를 폭력과 용서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압축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없다.

폭력으로 단순화 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일상적인 갈등과 오해, 방황, 일탈이 그려진다. 또 용서는 한 마디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긴 시간동안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오래 참음과 고통스런 기다림, 아들, 연인, 친구에 대한 신뢰, 성실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두 아버지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떻게든 아이들의 일탈이나 폭력을 재생산하지 않고 대화하고, 참고, 반성하고, 설득하고, 노력하고, 기다리고, 때로는 좌절하면서 평화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엘리아스와 크리스틴. 그 아이들은 비록 한 때 부모에게 반항하고, 또래 간에 폭력피해자이고 칼을 가지고 싸운 폭력가해자이고, 차량을 폭파하기까지하는 끔찍한 폭력 청소년이었지만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후에는 분명히 비폭력과 평화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사랑'을 아는 아이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가족과 이웃 속에서 배운대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가정과 학교, 사회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자녀를 신뢰하고 포용하며 끈질기게 선으로 악을 이기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가.

이 영화를 보는 이라면 흔한 청소년 폭력 영화들이나 부부갈등 영화와 다른 깊은 사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설교하지도 주장하지도 않지만 세밀하고도 조용한 눈빛으로 사람들의 관계와 심리를 들여다보고 폭력과 용서, 가족, 평화라는 변함없는 인류의 가치들을 생각하게 한다. 자연 풍광과 배우들의 연기는 호기심, 사랑, 우정, 스릴과 공포를 엮어가면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수잔 비에르’는 1960년생인 덴마크 여성이다. <브라더즈>등 좋은 작품을 발표햔 바 있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이라면 또 보고 싶다.  이 영화는 이미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아 그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배우들은 덴마크와 스웨덴인들이 섞여있다. 나는 특히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 역의 배우 미카엘 페르스브란트(Mikael Persbrandt; 스웨덴 최고배우)가 참 멋있었다. 지적이면서도 부드럽고 정의파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역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티안 역의 윌리암 존크 니엘센(William Johnk Nielsen)가 대단하다. 그의 연기를 꼭 보아야 한다.

 

 

 

 

 

(이상 사진, 동영상 출처는 다음영화)

 

 

 

 

'책과 영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슬리퍼스>  (0) 2012.04.10
이스마엘 시리즈  (0) 2012.04.10
청소년 성장 영화들  (0) 2012.03.15
살림의 경제학 - 강수돌  (0) 2011.12.11
도가니   (0) 201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