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도가니

샘연구소 2011. 11. 15. 22:03

 

[도가니] 공지영. 2009. 창비.

 

(한국교육복지연구소 최세나 연구원 읽고 씀)

 

동명소설이 영화화된 후,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어떻게 그려져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흥분하는지 궁금했다. 종종 비슷한 이슈가 언론을 통해 언급되었던 적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다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새삼스럽지?......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을 내기 여의치 않아 소설을 선택했다. 하지만 책을 구해 놓고도 몇날 며칠 열어보지 못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문장들을 직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모른 채 지나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때 수화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나에게,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남같지 않았다. 책 속의 연두를 보면서, 대학 2학년 때 처음 자원봉사 갔던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만난 10살짜리 여자 아이와의 기억들이 정말 오랜만에 떠올랐고, 그 때 한창 비리사건이 터져 떠들썩했던 경기도 평택의 모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던 청각장애 특수학교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재단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한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나오면서 그 교사와 아이들을 후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꽤 크게 일어났었고, 각 대학의 수화동아리와 특수교육학과 학생들도 동참했었던 기억이 났다.

 

복지관에서 일하면서 가끔 청각장애인이 찾아오면 내가 기본적인 접수면접을 했었는데, 그 때 한 청각장애인이 나보고 수화를 참 잘 한다면서-사실 나는 수화를 잘 하지는 못한다. 그저 아는 단어들 더듬더듬 연결지으며 이야기했던 것인데, 그래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셨던 것 같다- 너무 고마워하던 그 눈빛도 생각났다.

 

소설 속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활동상을 보면서 나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도 던져보았고, 미술 선생님을 움직이게 만든 그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민해보았다. 무엇보다 연두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정말 온 힘을 다해 꼭 안아주고 싶었다.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오로지 정의에 불타 흥분하지는 못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이 책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차이’ vs '차별‘과 ‘분리’ vs '통합‘의 이슈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우리 사회는 ‘통합교육’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분리교육’의 전통이 사라지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교육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리교육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 어떤 단계에서는 분리교육을 통한 기반닦기가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궁극적인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장애’가 있으니 너희들은 ‘여기에서만’ 공부하렴.”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 이상은 될 수 없다. ‘장애’가 있으니 ‘분리’해야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우리 사회의 이런 끔찍하고도 고질적인 병폐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비교는 어렵겠지만, 몇 년 전 미국의 초/중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일반 학급에 그 아이만을 위한 보조교사가 2명이나 들어가 자연스럽게 수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이것은 비단 장애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득, 이 소설의 내용에 흥분하는 많은 사람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흥분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장애인 관련 시설들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님비현상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곳에 격리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땅바닥에 드러눕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에게 ‘너는 나와 다르니 나와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게 될 것이고 이렇게 끔찍한 일들을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 될 터인데... 결국 우리 하나 하나의 태도가 문제인 것을 알고 흥분하고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졌다.

 

며칠 전, 해당법인이 스스로 해체하고 법인의 재산 일체를 가톨릭 관련 단체에 증여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기사가 인터넷에 등장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이 사건 대책위원회에서는 이것은 해당법인의 또 다른 꼼수일 뿐이라는 반박기사를 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사건 관계자 모두가, 조금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알게 된 우리 모두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는 나는 이따금 이런 상황들을 만날 때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 신기했던 부분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이 자꾸만 솟아나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인지상정인지, 작가 공지영은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적어 놓았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나의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아 옮겨본다.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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