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젊음

샘연구소 2011. 10. 29. 11:51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책들이 있다.

'텍스트'라는 생소한 출판사가 기획해서 내고 있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라는 책들이다.

 

'지금 이곳에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을 찾았다.

 

'젊은이들은 젊어서 너무나 희망차지만 젊어서 너무도 괴롭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어서 몹시 두렵지만 아직 오지 않아서 꿈꿀 수 있다. 희망과 괴로움, 꾸모가 두려움 사이에 젊은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 출판사는 젊은이들에게 감히 '자서전'을 쓰게 했다.

그리고 그 자서전들 중 아홉번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김류미 저,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강남 한복판 판잣집에서 살던 소녀는 그렇게 강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다녔으니 '강남소녀'가 맞다.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경험했고 중고교 시절에도 공부보다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책과 사귀며 살았다. 성실하고 엄격한 기독교인이지만 가방끈도 짧고 가진 것도 없는 부모님은 그래도 남매에게 자존심과 삶에의 성실성, 배움에의 의지를 물려주신 것 같다. 

 

학원비가 없어서 칠판지우는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의를 수강했고 내신보다는 수능으로 서울 안의 명문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학시절은 대학의 낭만이나 스펙쌓기에 필요한 공부보다도 생존을 위한 치열한 알바의 연속이었고 연극동아리가 힘이 되어주었다.

 

편의점 점원에서 시작해서 동대문시장, 노래방, 술집, 패스트푸드점, ... 학교 안 근로까지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고 있는대로 먹었다. 그녀는 소위 '권장도서' 목록도 없이, 부모의 추천도 소장도서도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만났고 대학시절 무려 400권의 책을 대출받아가며 읽었다. 그리고 출판기획자라는 꿈을 키워간다.

 

주소를 본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 강남 사세요?"라고 묻는단다.

그렇다. 리얼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아온 강남소녀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청년실업문제 해소를 위해 일하는 '희망청'이란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된다. '88만원세대'의 영향 아래서 많은 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결국 소위 '활동가'로서의 존재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자리를 떠나 '취직'을 하러간다. 이 부분 고백에서 나 역시 특별한 공감을 느꼈다. ...

 

희망청에서의 일 경험은 그녀에게 무척 많은 것을 주었다. 말투가 달라졌다. 그 시절에 대한 글에서 그녀는 비로소 사회적 의식을 일깨운 듯 하다. 그동안 책과 알바로 키운 '내공'을 드디어 발휘하게 된 듯 하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책'에 대한 사랑을 택했다.

'결국 역사에는 책으로 남는다. 남을 수 있는 흔적, 공적(公的) 기록은 아직 책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떠든 것에는, 어떤 식으로는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 글의 힘은 그런 것이다.'

그녀는 지금 블로그질, 트윗질에 집중하면서 자신이 그리도 소유하고 싶었던 문화자본이며, 구원같았던 책을 만들고 퍼뜨리는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출판사에서 일하며 꿈을 놓지 않는다. 

 

야하게 노란 표지의 가벼운 책, 서로 몸을 부비고 좁게 늘어선 작은 글씨의 이 책이 이렇게 나를 사로잡는 마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첫장을 펼쳐든 이후 결국 하룻만에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교육복지가 대상화한  '빈곤소외계층'학생으로서의 가난하고 외로웠던 삶이 아니다.

치열하고 생생한 그 속에 사람의 온기가 있고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 보였다.

그렇다.

 

우리가 만날 아이들을 생각했다.

학교가 조금만 더  평등하고 교사들이 아이를 좀더 존중하며 살폈다면 덜 외롭고 덜 힘들었을까?

가난해서, 좀 못나서, 좀 달라서 주눅들고 따돌림 당하며 지내는 아이들을 어떻게 살필 수 있을까?

무상급식도 되고 교복도 주고 학습준비물도 배부되면 부모는 좀 더 편하게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까?

 

'집중지원대상'뿐 아니라 모든 중산층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오늘 청년들의 현실은 그리 정의롭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

김류미에게 책이 구원이었듯이 아이들에게 사랑할 그 무엇 하나만 있다면 되지 않을까?

아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힘은 걱정하지 않아도 이미 그 속에 다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걸 어떻게 꺼내서 보여줄까?

 

그녀가 책을 끝내며 인용한 글이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 주제로 나는 이 사회가 바뀔 때까지 취재하고 집필하고 운동해가기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 사회에 대한 선전포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것, 그것이 위협받고 있는 나라에서 도대체 누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살게 해달라. 가능하면 과로사 같은 것은 하지 않고, 홈리스 되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그리고 가능하면 행복하게

- 아마미야 가린,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미지북스, 2011, 32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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