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외대앞역에서 수원을 가려고 전철을 탔습니다. 전철 안은 이미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나는 사람들의 등 사이에 얼굴이 끼어 숨쉬기도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 훤하게 빈 공간이 보였습니다. 사람 사이를 뚫고 가보니 의자의 세 칸을 차지하고 어떤 남루한 행색의 청년이 누워있었습니다.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전철 안이 그리 붐벼도 사람들은 주변을 피해갔습니다. 청량리, 제기동을 지나면서 나는 가방도 무겁고 힘이 들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이봐요. 일어나세요.”
“에?....”
청년은 부스스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장애인 같았습니다.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니 한 쪽에 앉으세요.”
청년이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냄새나고 지저분한 행색의 청년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불쾌해하거나 좀 두려운 듯 피해갔습니다. 내가 그의 옆에 앉았습니다.
얼마 가자 그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줌마, 밥 먹었어요?”
“네.”
“... 좋겠다. 난 안 먹었는데...”
“...”
“아줌마, 김치도 먹었어요?”
“네.”
“... 좋겠다. 난 안 먹었는데...”
“...”
그리고 또 몇 정거장이 지나갔습니다.
“아줌마, 행복하고 싶지요?”
“네.”
“내가 아줌마 행복하게 기도해줄까요?”
“...?...”
청년은 나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붙잡고 주변 사람들이 보건 말건 소리내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줌마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그리고 나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청년은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았습니다. 가끔 내가 읽는 책을 흘깃 쳐다보기도 하고 나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것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장애인 아들과 엄마인 것처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지나자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내 어깨에 얹고 잠이 들었습니다. 한쪽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살짝 밀어서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그래도 또 청년은 나에게 기대왔습니다. 또 세워주어도 또 기대왔습니다.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구로, 금정을 지나 수원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청년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이봐요... 다음 정거장이 수원이에요. 거의 종점인데...”
“... 네? 수원이요?”
“네...”
“청량리로 가려면 어디서 타죠?”
“저쪽 계단으로 해서 건너편으로 가요.”
“아...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네. 잘 가요.”
청년은 허름한 추리닝 주머니에 손을 꽂고 반대편 플랫폼을 향해 걸어나갔습니다. 나는 잠시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내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12월 17일. 무주 구천동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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