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교육복지증진을 위해 교사가 할 일

샘연구소 2012. 3. 4. 22:16

진정한 교육복지를 이루려면

 

 

교육과 복지가 잘 만나면 교육이 그 본 의미를 회복할 수 있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진정한 교육복지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만으로 이룰 수 없다.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 될 때 진정한 교육복지가 시작될 것이다. 가난 등의 구별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차별과 억압 없이 누구나 교육이라는 권리를 충분히, 본질적으로 누리도록 하는 것이 참 교육복지가 아닐까. 그러므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넘어서 가난한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학교가 행복하고 좋은 학교일지를 생각해보았다.

 

 

1. 알기 쉽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세요. 

“선생님, 저는 엄마 아빠 밤늦도록 일하시고 오셔도 저랑 얘기할 새도 없으셔요.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시고 화만 내셔요. 집이 어려워서 따로 좋은 학원이나 개인지도 못 받아요. 할머니 맨날 아프시고요. 집은 들어가기도 싫어서 밤늦도록 친구들과 동네에서 놀다가 잠만 자는 걸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좀더 친절하게, 재미있게, 차근차근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어요. 절반밖에 못 이해하는 수업이 하루의 반이 넘어요. 겨우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 때문에 버티고 있어요. 그런데 또 남아서 공부하라니 정말 왕 짜증나요.”

 

 

내가 만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 할머니가 기르는 아이들, 외국인 결혼이민 여성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겪는 어려움은 올라갈수록 공부가 너무 어렵고,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워오기 때문에 진도가 빨리 나가고 선생님이 수업 중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않고 자기만 남아서 보충수업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했다. 빈곤여부를 떠나 학원이나 과외를 안 하는 아이들의 불평도 그것이다. 선생님이 수업 좀 제대로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은 가난해서 뒤처지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교사가 수업을 충실히 준비하고 학생들의 능력차를 고려해서 친절하게 가르쳐 내 수업에서만큼은 낙오자가 없게 ‘책임지는’ 수업을 했으면 한다.

또 이런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작은 학교, 작은 교실 여건이 필요하다.

미국의 어느 빈곤지역에서 다른 프로그램이나 사업 없이 학교를 소규모로 개선했는데 그것만으로 학생 비행이 줄고 학업성적이 올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연하다. 내가 교사로 근무했던 중학교도 부근의 다른 학교들보다 학생사안이 적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 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작은 규모라고 생각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비인간적인 분위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좋은 대안학교들도 작은 학교, 작은 학급이 기본이지 않은가.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일수록 배움의 속도가 느리고 손길이 더 필요하니 교사가 더 많은 수업준비와 더 섬세한 돌봄을 해줄 수 있도록 빈곤지역일수록 작은 학급, 작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 또 연간교육계획서에 없는 각종 사업, 보고, 타 부처의 협조 공문 등이 없어져서 교사에게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2. 저도 인간답게 존중받고 싶어요.

“저한테는 야단치고 지시하는 사람들밖에 없어요. 제 말도 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수줍고 자신 없어서 말을 잘 못하고 제대로 표현도 못 하지만 참고 좀 들어주셨으면 해요. 사실 선생님하고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아요. 친구들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 속으로 고민하면서 끙끙 앓고 있는 것들도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늘 바쁘시고 저 같은 애한텐 관심도 없으시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귀찮은 존재일 뿐이에요. 저같은 아이에게도 좀 관심 가져주시고 챙겨주세요. 지난 번 학교에서는 상담선생님도 있고 교육복지실에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계셔서 좋았는데 우리학교에는 왜 그런 분이 안 계시죠?”

 

 

아이들을 겉모양과 드러난 행동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드러나지 않은 가정환경이나 생육사, 신체와 정서심리 상황을 전인적으로 볼 수 있는 교사의 안목이 필요하다. 이는 우선 사랑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볼 수 없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할 수 없다. 여기에 발달학, 사회복지 관련 지식과 의사소통 훈련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보호자에게 아이의 강점과 필요한 것을 여쭙고 듣는 가정방문, 가난해서 뒤처지고 외로운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생일파티나 이벤트로 우리반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일,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주저없이 상담사나 사회복지사, 지역아동센터 선생님과 상의하고 협력하는 실질적 지원 등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빈곤지역일수록 사회복지사나 청소년상담사와 같은 전문인력이 학교에 상주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가정환경이 열악하거나 저연령일수록 심리상담보다도 사회복지사의 사례관리(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필요에 따라 전인적으로 개입하고 가정과 지역사회를 두루 살피며 학교안팎에서 지속적으로 통합서비스를 연계, 조정하는 일)가 더 유용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굳이 ‘교사’자격을 따지 않아도 간호사로, 사회복지사로, 상담사로, 영양사로 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교사와 행정직 외에 ‘전문지원직’을 신설하든지 해서 교사자격이 없더라도 사회복지사나 (청소년)상담사들이 단기계약직이 아닌 교직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으면 한다.

 

 

3. 가난해도 교육걱정 없었으면... 복지국가를 통한 교육복지의 실현

“엄마 아빠가 집에 일찍 들어오셔요. 이젠 밤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요. 내가 아파서 학교 못 갈 때 엄마가 일 안 나가시고 돌봐주셔요. 아빠가 일하다가 다쳐서 직장을 그만두셨는데 새 직장 얻을 때까지 생활비도 나온대요. 동생 태어날 때 엄마가 일 쉬면서 집에서 동생을 직접 돌보셔서 너무 좋았어요. 엄마 아빠가 더 행복해보이고 우리 가족이 더 화목해진 것 같아요. 이제 교복, 수학여행, 급식비, 준비물 같은 것 걱정 안하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 하셔요.”

 

 

교육복지사업이 10년 가까이 시행되고 있지만 가난한 부모들은 점점 더 살기가 힘들다. 일자리는 더 팍팍해지고 수입은 줄어들고 집안에 만성 환자가 생기거나 가정이 해체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는커녕 방임하거나 학대하게 되기도 하고 마지못해 버리기까지 한다. 학교에서는 아무리 교육복지사업을 해도 새로 입학하는 가난한 아이들은 더 열악하고 여전히 여러 위기에 취약하다. 아니,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도 학교가 행복하지 않다. 이처럼 우리가 애써도 안 되는 이유는 교육이 더 큰 정치․경제 구조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정의롭고 평등해지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학교가 교육복지사업을 해도 교육복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거나 ‘호박잎으로 비 가리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사들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한 번 가난해지면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와 애통함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복지국가체제가 발달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나라들에서 교육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교사가 가난한 아이들만을 골라내서 지원하는 교육복지사업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교육복지와 교육복지사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인 2012년, 복지국가 논쟁에 교사들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박경현

(이 글은 월간 <좋은교사> 2012년 3월호 특집에 실렸습니다.)

'동향과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의 학교사회복지  (0) 2012.03.12
외국에서도 힘든 학교사회복지사  (0) 2012.03.12
교육복지의 역사와 현주소  (0) 2012.03.04
진정한 크리스마스  (0) 2011.12.25
송년  (0) 201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