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부활절

샘연구소 2012. 4. 8. 13:00

 

 

 

보름이었던 4월 5일 식목일에 양평에 갔었다. 보름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참동안 밖에 서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비바람 후의 맑은 하늘엔 별도 총총했고 북쪽 산 위로 북두칠성이 선명했지만 보름달 덕분에 별들이 쏟아질 듯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름달은 저 높은 곳에 밝혀둔 아주 강력한 조명등 같아서 산 속 길이 희미하게 다 드러나보였다. 발밑을 좀더 잘 보겠다고 플래시를 켜면 당장 발 앞은 환해도 그 주변은 오히려 더 깜깜해지고 눈이 적응하지 못해서 불편했다. 은은하고 넓게 밝혀주는 달빛!

돌아와서 이튿날 조마조마하며 보니 역시 보름달이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들고 나왔지만 아무리 줌을 당겨도 무의미했다.

서울에서 보는 보름달은 양평의 산속에서 본 달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지만 그래도 보름달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춘분(3월 20일)을 지낸 후 온 보름(만월)날의 다음 일요일인 4월 8일, 오늘은 교회에서는 부활주일이다.

예수가 부활한 날짜가 언제인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란을 거친 끝에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부활절 날짜를 “춘분을 지난 보름 바로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기로 하였다.

 

나는 부활절에 예수의 죽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부활은 신화이거나 우리의 간절한 바램일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죽음을 믿지 않는다면 부활은 없으며, 죽음을 따른다면 부활의 진위 논쟁 또한 유치하다.

세상과 거꾸로 살다가 치욕적으로 죽은 청년.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름없이 죽어간, 죽어가고 있는 작은 예수들.

멀리 수천년 전 다른 나라 식민지 청년의 죽음보다도 "씨앗이 죽어야 싹이 날텐데 아직도 제 몸 하나 아끼느라 살아서 펄펄 뛰는구나!"하셨던 이모님의 말씀은 여전히 나를 늘 때린다. 제대로 살아서 펄펄 뛰지도 못하고 있다.

 

 

한 친구의 블로그에서 '프란치스코 수사들의 4중 축복기도(A four-fold Benedictine Blessing)'라는 글을 읽고 마음에 새긴 적이 있다. 참 좋은 문구였다. 하지만 내가 조사해 보니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그들은 다른 기도문을 사용한다) 성베네딕도회 수녀인 Ruth Fox 수녀가 1985년에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성 베네딕도수도회는 예수회나 프란치스코회 처럼 중앙집권적인 조직이 아니며 성베네딕도의 규칙을 따르는 개별적인 남녀수도회의 연합체라고 한다. 이들의 모토는 ‘평화’(pax)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다.)

 

헌데, 이보다 더 가슴을 때리는 기도문을 발견했다.

(http://theagnosticpentecostal.com/2010/05/13/4-anti-prayers-to-screw-up-your-life-and-save-it/)

위 기도문 중 주님의 자비와 기적을 비는 대신 자신이 실천하겠다는 내용으로 비틀어서 쓴 것이다. 이름하여 Anti-Prayers이다.

크리스챤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 기도문이 원 기도문보다 더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오늘 이 기도문을 읽어본다.

 

 

 

Bless me with discomfort.

Discomfort at easy answers, half truths, and superficial relationships,

so that I will live from deep within my heart. (Amen.)

 

나에게 불편함의 복이 내리시길.

쉬운 대답들과 거짓 진리, 피상적인 관계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도록,

그래야 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Bless me with anger.

Anger at injustice, oppression, and exploitation of people,

so that I will work for justice, freedom, and peace. (Amen.)

 

나에게 분노의 복이 내리시길.

불의와 억압,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들에 대해 화가 치밀어오르도록,

그래야 내가 정의와 자유, 평화를 위해 일하게 될 테니까.

 

Bless me with tears.

Tears to shed for those who suffer from pain, rejection, starvation, and war,

so that I will reach out my hand to comfort them and turn their pain into joy. (Amen.)

 

나에게 눈물의 복이 내리시길.

내가 고통과 따돌림, 굶주림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울 수 있도록,

그래야 내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일에 나설 테니까.

 

Bless me with foolishness.

Enough foolishness to believe that I can make a difference in this world,
so that I can do what others claim cannot be done. (Amen.)

 

나에게 어리석음의 복이 내리시길.

내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을만큼 어리석음을,

그래야 남들이 '안 돼!'라고 하는 일을 하려고 나설 테니까.

 

 

 

아멘.

 

 

나는 이 네 가지 복을 다 받았다. I'm blessed!

복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즐겁게 누리며 산다.

죽는 일만 남았다.

아마 내 의지로 못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거나 인류역사에 남을 큰 일을 할 마음도 없다.

그래도 지구별 어느 구석에서 찌질하게라도 계속 꼼지락거릴 것이다.

이미 충만히 받은 이 네 가지 복들이 나를 계속 불편하게, 화나게, 눈물나게, 어리석게 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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