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사랑방

봄비

샘연구소 2012. 4. 11. 00:58

비가 온다. 봄비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교과서에 나왔던 시조가 떠오른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이 호우의 시조)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여고시절 윤동주와 청마 유치환의 시들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고 외웠다.

그러다보니 이 시조를 지은 이호우의 여동생인 이영도를 알게 되었다.

그녀를 청마 유치환이 열렬히 사랑했다. 2천통이 넘게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보이는 통영 우체국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부치는 마음을 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나는 유치환이 그렇게 미치도록 사랑한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영도를 찾아서 그녀의 시조와 수필들을 읽었다.

모두가 너무 좋았다.(특히 '매화' http://blog.naver.com/pysun1234?Redirect=Log&logNo=93699182)

전통적인 정갈하고 단아하며 지적이고 지조있는 여성상이었다.

그녀에게 내 모습을 겹쳐보았다. 나도 나이가 들면 이영도 여사처럼 매화를 심고 꽃밭을 가꾸고 장독을 닦고 풀먹인 하얀 모시한복을 입고 사박사박 걷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결혼하고 석 달 동안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에 행주치마를 두르고 시집살이를 했다. 특별한 날에는 학교에서나 교회 갈 때 한복을 즐겨 입었다. 이영도 여사의 호는 청마가 '정운'으로 고쳐주기 이전까지는 정향이었다. 청마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들 속에서 그녀를 '정향'이라고 많이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 중 한 글자를 따서 혼자 속으로 내 호를 지어두기도 했다.

살다보니 나는 그녀와는 영 다른 색깔로 살고 있다. 정갈, 단아하고 거리가 멀게 사는 것 같다. 이젠 한복도 안 입는다. 그래도 이게 내 색이려니 하고 그냥 내 하고싶은대로 산다.

 

 

그런데...

 

문제는 봄비 내린 후 한강이 흙탕물인 것이다. 저런 흙탕물 옆에선 이 호우가 노래한 것처럼 강나루 긴 언덕이 푸르게 변하기 힘들 것 같다. 아니, 이미 많은 강들에서 그 푸르러질 강둑들이 돌과 시멘트로 포장되고 있다. ㅠ.ㅠ

우리 연구소는 한강 바로 옆 강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누렇고 탁한 한강물을 보면 마음이 정말 심린하다.

작년에도 이랬다.

정부는 이게 일시적 강우시 흔히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뿐 4대강 개발공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서울의 상수원인 팔당수질은 안전하다고 하고 있다. 나는 정부의 말이 안 믿어진다. 이미 '늑대와 소년' 꼴이 되어 있지 않은가.

 

맑은 한강물을 돌려달라...

 

 

사진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7026.html

양수리 운길산 근처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한강 모습. 북한강쪽은 괜찮은데 남한강쪽은 흙탕물이다.

이 물이 합쳐져 서울까지 흘러와서 서울의 한강물도 흙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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