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교장의 리더십

샘연구소 2012. 4. 15. 13:31

교육복지사업학교를 방문하면서 훌륭한 교장 선생님들을 많이 본다.

참 기쁘다.

최근에 뵌 분 들 중 정말 좋은 분들이 있다.

 

한 분은 정년을 얼마 안 남겨두신 남자 교장샘이신데 에너지가 펄펄 넘쳐서 지금이라도 1킬로미터는 거뜬하게 뛰실 것 같았다.

목소리도 화통하시고 얼굴도 둥글넙적하니 긴 이마까지 환하셨다.

체육 선생님이셨나? 여쭤보니 국어 전공이셨단다. 하하...

 

잠깐 교장실에서 말씀을 나누고 나가려 일어섰는데 너무나 씩씩하게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학생 두 명이 당당하게 청소를 하러 들어온다. 마치 무슨 진군행렬같다. 교장샘은 길을 비켜주고 아이들은 '무기'인 비자루와 걸레 따위를 들고 저벅저벅 내딛으며 교장실을 휘익 한 눈에 훑어본다. 제 할 일을 하러 제 시간에 온 것이란 메세지가 팍 전해온다.

하아...

 

교사연수 내내 교장샘도 자리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해주셨다. 와우.

강의가 마치자 굳이 차 한 잔 더 들고 가라며 이끄셔서 또다시 교장실에 들어갔다.

이번엔 어떤 귀여운 여학생이 노크도 없이 종종거리며 종이를 들고 들어와 교장샘 옆에 서서 말을 건다.

"교장 샘, 뭐 좀 부탁드려도 되요? 저 기억하시죠?  저번에 시조 낭독한... "이라던가?

아마 어디서 발표할 원고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려는 모양이다.

교장샘은 미안해하며 아이에게 조금만 나가서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아이는 그제서야 내 존재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며 밖으로 나간다.

나는 아이가 오래 기다릴까봐 서둘러 차를 마시고 나왔다.

 

교장샘이 그러신다.

"교장이 되니까 아이들만 보여요. 학부모, 교사 하나도 안 보여요."

 

아. 이런 분을 뵙게 되다니!

정년을 앞두신 남자교장샘이 이렇게 자유롭고 호탕하게 아이들과 가까이 소통하고 교사들을 신뢰하고 세워주시고 계신다. 

 

 

 

또 다른 학교에서도 정년을 앞두신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교육복지사업에 불만이 많으셨다.

아이들이 가난하다고 다 공부를 못 하는 게 아니라면서 가난해도 공부 잘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한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본인을 비롯해 예전엔 가난해도 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셨다.

교육복지사업 때문에 부모들이 제자식 밥값까지도 공짜로 키우려고 한다며 책임감을 흐리게 하는 나쁜 사업이라고 하셨다.

게다가 복지사업을 왜 학교에서 하는지 교장이 온갖 비정규직 관리하랴, 식당 관리하랴, 이게 무슨 학교냐고 투덜투덜 불평하셨다.

 

교장선생님 말씀은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틀리기도 하다.

 

나는 천천히 조목조목 말씀을 드렸다.

우선 많은 사회통계가 10년 이상 가난할수록 학력이 낮고 중퇴율이 높으며 비행율도 높은 것을 상기시켜드렸다.

또 부모가 소득에 따라 각자 능력껏 세금을 내고 아이들을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갈라내는 일 없이 그 세금으로 좋은 밥을 먹이면 그것은 공짜가 아니라 함께 먹이는 것이다. 복지는 자선이 아니라 민주주의고 교장샘이 강조하시고 교육이 목표로 하는 성숙한 공동체의식인데 무상급식도 그 중 하나의 지엽적인 프로그램이다.

나도 학교 밖에 가족과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 교사들에게 업무가 많아지고 아이들이 이 사람 저 사람 비정규직의 손에 휘둘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형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당분간 학교가 그 가교 구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교육복지 사업은 교사들에게 복지사업을 하라는 게 아니지 않나. 학교 밖의 다양한 문화, 복지, 보건, 학습 프로그램들을 연결해서 아이들이 방과후에도 지역에서 누릴 수 있게 학교밖까지도 교육적인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종종 자주성가한 분, 독학해서 성공한 분, 어려움을 공부로 극복하신 분들 중에 편협한 가치관을 고집하는 분들이 계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 경험이 그렇게 만드니까. 그런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에 따르면 세상은 두 세 번쯤 바뀌었다. 바뀐 세상에서도 변함없이 관통되어야 할 가치관이 있고 수정해야 할 행동지침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을 위협하는 것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장선생님도 훌륭한 교육자임에는 틀림없다.

교사들이 징계하려는 학생을 거듭거듭 타이르고 용서해주자고 하시고 몇 번이나 용서해서 마침내 돌아서게 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우리는 종종 교육복지사업이나 상담사업을 한답시고 아이들이 삐딱하거나 문제행동을 하면 대번에 상담전문가나 기관으로 내보낸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처럼 상담의 전문성과 관계없이 '교사의 전문성'과 정체성으로 아이들과 직면하고 용서하고 또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서로 인고의 시간 끝에 변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분은 요즘 학교 현장이 안타깝다면서 곧 정년이라며 더 힘쓰고 왈가왈부하기 싫다고 하신다.

그리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내 강의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강사소개도 부장선생님이 해주셨다.

그 학교에선 지역사회교육전문가나 담당선생님이 사업을 추진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관장의 특정 사업에 대한 이해나 의지를 넘어서 가치관과 실천지식, 소통 유형은 기관 전체의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지역사회교육전문가나 교사의 전문성, 헌신보다도 더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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