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 대해 별 관심도 애정도 없고 지식도 빈천한 학교사회복지사들을 보면 참 답답하다.
특히 그런 이들이 교육청에서 일하는 교육복지사업의 담당 프로젝트조정자(피씨)일 때는 더 화가 난다.
나는 어느 학교에 교사연수나 컨설팅, 수퍼비전을 하러가더라도 미리 그 학교를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학교현황과 동네사정을 둘러본다. 학교 역사, 전교 학생수, 학급별 학생수, 교사수, 유관사업 현황,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과 교장선생님의 인사말과 얼굴 사진등을 보면서 대강의 그림을 그려 본다. 그리고 담당교사나 사회복지사와 연락해서 자랑거리, 힘든 점,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 보람, 고민 등도 미리 듣는다. 그리고 일찍 가서 동네 골목도 걸어보고 학교 분위기도 미리 느껴본 후에 들어간다.
특별히 함구하는 것이 나은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안 간 것보다 간 후에 무언가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기를 바래서 열과 혼을 다해서 성심껏 말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내 교사연수나 수퍼비전은 잠깐 어느 학교에 가서 한 두 시간 지식이나 경험을 말하고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몰입하는 방식이다. 시간도 많이 들고 에너지도 많이 든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면 기운이 쪽 빠진다.
하물며 잠시 스쳐가는 손님인 나도 그러는데 어떤 피씨들은 나보다도 지역에, 학교에 더 무감하다. 늘 살아야 해서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것인가.
도무지 어떤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일하는지, 관내 학교 담당자인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의 강점과 애환을 얼마나 공감하고 키워주고 해결해주려고 연구하고 협력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이들을 보면서 친한 동지들은 '몇 년 교육청에서 일하더니 꼭 장학사 같다'고 한다.
나는 오늘 이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사회복지사가 몇 년 학교, 교육청에서 일하더니 '장학사 같다', '교사 같다'.
그럼, 장학사나 교사의 어떤 점을 닮아서일까?
무감한 점이다. 자기 직에 대한 소명감이나 아이들과 학교에 대한 생생한 애정 같은 것이 없다. 그냥 이번엔 이 학교, 다음엔 저 직책을 무난히 하면 된다. 해야할 것들, 즉, 지시된 것들을 그냥 하면 된다. 유별나게 잘 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계속 일하게 되고 월급 액수가 얼마인지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제 때에 넣어주니까.
'정규직'의 함정이다.
학교사회복지사가 혹은 교육복지사나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제도화되어서 정규직이 되면 어떻게 될까?
장학사나 교사들이 하듯, 혹은 동사무소 직원이 하듯, 가난한 아이 문제를 그냥 무감하게 행정적으로 처리하게 될까?
그래도 내 일자리는 계속 변함없을 것이고, 내가 뭐 특별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진급하거나 봉급이 오르지도 않을 것이며 그러지 않아도 그냥 이 월급으로 이 자리에서 일하면서 사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괜히 더 열을 냈다가 실수라도 하면 옴팡 책임을 져야할 판이니 차라리 조용히 시키는 것이나 하고 지내는 것이 나을 테니까?
그런데 아직 정규직도 안 된 피씨와 지전가들이 그 흉내를 내고 있다. 위험하다.
그들은 동네 시장, 골목길, 지역아동센터, 가난한 학생의 집들을 뾰족구두와 화사한 정장 대신 운동화 신고 다녀보기나 했을까.
늦은 밤 허름한 식당이나 주점, 동네 아이들의 엄마나 아빠일 아줌마 아저씨들 옆자리에서 그들의 아이걱정, 살림걱정을 어깨넘어로 들어보기라도 했을까.
초라한 동네 재래시장이나 미장원, 구멍가게에서 주인 아줌마와 요즘 아이들 기르는 걱정을 맞장구치며 비닐봉다리에 몇 천원 찬거리를 담아봤을까.
불빛도 어둡고 인적도 드문 으슥한 동네 구석에서 외로운 십대 아이들이 꽁초를 나누어 피우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래침과 함께 뱉어내는 그런 자리에 함께 있어봤을까.
했을까.
했는데도 그럴까.
안 해봐도 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잘 할 수있을까.
잘 할 수 없어도 괜찮은 것일까.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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