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여자는 복잡해...

샘연구소 2012. 4. 10. 23:44

나는 여학생 상담하기가 어렵다.

 

여중, 여고를 다녔는데도 친한 친구들은 다 남자인 내가 우연히 사회 첫 발을 디딘 곳부터 시작해서 줄곧 남자 중학교에서만 근무했다. 그래서일까? 남자들과 소통하기가 더 편하다.

오래 전 미국의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연구조사에서는 어릴 적에 아빠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자란 딸들이 당당하고 남자와 관계를 잘 한다고 했다. 나도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늘 '장녀'라고 특별히 대해주셨으니까....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마흔에 사회복지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그것도 '여자대학'에서. 물론 다들 여학생이었다.

여고 졸업 후 20년만에 여자들과 어울리니 다시 고3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데 어찌나 불편한지. 처음엔 낯선 학우들이 다가와 '언니'하며 와서 팔짱을 끼는 것이나 삼삼오오 모여서 긴 시간 수다를 떠는 것이 참 닭살스럽고 어색했다. 

 

대학원을 마친 후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사회복지 시범사업의 학교사회복지사가 되어 학교에 상주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학교가 남자중학교에서 처음 남여공학으로 바뀌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을 다룰 줄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학교분위기도 어수선, 그 틈에 남자아이들도 술렁술렁....

 

여학생 다루는 것이 나만 어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여자란 특성이 워낙 복잡했다.

폭력이나 소위 일진사건만 봐도 남자 아이들은 대개 단순 폭력이 많다. 때리고 싸우고 맞짱 뜨는 것. 그런데 여자 아이들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정서적 폭력, 언어폭력, 오빠 일진들과의 관계까지 얽혀있어서 해결점이 잘 보이지도 않고 금세 해결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도 않고 조금 친해진 듯 싶어도 이내 배신을 때리기도 한다. 거짓말도 잘 한다. 어흐!...

 

굳이 비유하자면 남자 아이들이 '개'과라면, 여자 아이들은 '고양이'과이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여학생들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에서

우리 그때 진짜 재밌게 놀았다. 그치? ^^

 

 

한 친구는 우스꽝스럽게 이렇게 비유했다.

남자를 조종하는 리모콘엔 단 두 개의 버튼 뿐이라고 그건 food 그리고 sex라고 한다.

그러나 여자를 조종하는 리모콘은 요즘 복합리모콘처럼 수십개의 버튼이 복잡하게 있어서 사용법을 익히기조차 어렵다고.

인터넷에 떠도는 개그 수준이지만 일리가 없지 않다.

 

사춘기 여학생들은 정서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자기도 자신을 모른다.

아침엔 웃겼는데 저녁엔 슬프고, 오늘은 행복한데 내일은 죽고싶기도 하다. 10대에 이르면 우울증 발병 수치가 남자에 비해 여자에게서 2배나 높게 뛰어오른다고 한다. 유전적인 요인, 가정의 물리적 환경, 가족과 학교의 대인관계 등은 아이들을 충동적인 자살 충동으로 몰아갈 수 있다. 사실 나도 여고시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때는 제법 심각해서 한 번은 친구랑 둘이 삼화고속버스를 타고 인천 연안부두로 동반자살을 시도하러 나갔었다. 그런데 바닷물이 너무 더러워서 그냥 돌아왔다. -_-;; 아마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학생들 중 몇몇은 나처럼 감상적인 수준일 것이다. 친절한 이해와 공감, 환경을 조금 바꿔주거나 다른 자극을 줄 때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몰려다닌다. 화장실 갈 때도, 선생님에게 혼자 꾸중들으러 갈 때도 늘 여럿이 가서 문밖에서 기다린다.

사춘기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증가하는데 여학생들의 경우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외모에 치중한다.

요즘 여중생들 가방을 뒤지면 화장품 하나 정도는 꼭 나온다. 유일한 패션인 교복, 헤어스타일, 양말, 가방 등은 정말 중요하다. 다이어트에 목 매는 아이들도 있다. 졸업선물이 성형수술이라고도 한다. 좋아하는 남자선생님이 생기면 그 과목은 성적이 완전 로켓트 수준으로 올라간다.

 

또 여자아이들은 정서적으로는 관계지향적이고 소속감과 애정욕구가 강해진다.

그래서 가장 빈번한 상담주제가 교우관계이다. 그런데 바빠서 며칠 상담을 못 해주다보면 어느 새 해결되어서 사이가 좋아지기도 하고, 그 새 다른 아이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몰려다니며 누구를 따돌리기도 한다. 내가 따돌림당할까봐 늘 불안해서 은근히 더 강한 아이에게 동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여학생은 온 가족을 돌보고 살림을 해내거나 학급원들을 훌륭하게 품고 이끌어나가는 억척스런 아이들도 있다. 반대로 가족이나 교우관계에서의 갈등, 관계의 상실에 대한 공포는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와 상처를 준다. 아이들은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지고 누군가 자신을 품어줄 사람, 안전감을 느낄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찾아서 방황하기도 한다. 

비행 동아리를 만들어도 남자 아이들이 '영역', 힘 겨루기, 도전과 경쟁, 승부, 지위 등을 키워드로 모이고 집단이 굴러간다면 여자 아이들은 무리짓기와 소속감, 안전, 애정 등이 집단을 형성하고 누군가를 배척하는 등 집단을 이해하는데 참고할만한 키워드가 된다.

또 여자아이들은 참 시끄럽다. 쉬지 않고 조잘댄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 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자는 보통 남자보다 하루 평균 두 세 배 더 많은 단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또 기억중추가 발달하다보니 요즘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속에서 남학생들보다 좋은 성적을 얻기가 쉽다.

 

함께 웃고 울고 이야기하고 영화보고 떡볶이 사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밥해먹고 같이 자고 꽃 심고 청소하고 집에 가고, 동네에서 아이 찾아다니고, 때린 오빠 만나 욕하고 혼내주고, 아이들 편드느라 교사들과 싸우기도 하고 한밤중 24시 식당에서 부모를 만나 설득하기까지 해가며 일해도 여자애들은 별로 고마운 내색을 안 한다. 그냥 지가 잘 나서 잘 된 것이다. 흐흐... 강력한 strength! 

남자애들은 종종 문자도 해오고 전화도 하고 밥 먹자고 찾아오고 선물도 들고 오는데...

하지만 여자의 이런 묘하고 복잡한 것이 약한데도 오래 살고 인류를 지속시켜온 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아이가 전화를 했다.

"박쌤, 저 취직했어요."

"응? 니가 취직을? 어이구~~ 어딘데?"

"새마을금고요."

... 그러면서 제법 금융상품을 선전하고 자기네 지점에 와서 한 구좌 들란다.

짜식... 많이 컸구나...

 

그 여자 아이들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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