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 이슈

좋은 부모

샘연구소 2012. 5. 20. 21:19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강좌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단연코 '의사소통'에 관한 것들이 대세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갑갑해하며 자녀들과 의사소통을 해보려고 많이 배우는 모양이다.

엄마들이 의사소통을 배우려는 속내는 아이를 고단수의 대화기술로 유능하게 조종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부모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몇 가지 원리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1. 경청

일단 듣고 보자.

궁금한 게 있으면 묻고, 끝까지 듣고, 좀 다른 의견이 있어도 다 듣고 난 뒤에 얘기한다.

<비폭력대화>같은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2. 공감

고쳐주고, 의견을 제시하고, 시키고, 야단치고, 잘못을 지적하고, 엄마의 뜻을 권유하거나 강요하기보다 먼저

아이의 감정과 생각에 주파수를 맞춰보는 것이다.

<내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같은 책이 도움이 된다.

 

3. 확고한 가치관과 일관성있는 태도

아이에게 부모가 조급하게 무엇을 일러주지 않아도 아이는 결국 다 알게 된다.

부모가 할 것은 잘잘못을 다져주고 지식과 기술을 넣어주는 것보다도 아이에게 든든한 기둥, 비춰볼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부모는 아이들과 말로 의사소통하기보다 스스로 삶의 자세로 아이가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다.

<스크림프리 부모혁명>,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한다>같은 책이 도움에 되겠다.

 

아이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복잡한 아동청소년 심리를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아이의 사생활>, <10대들의 사생활>과 같은 책이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이 안다고 잘 소통하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그런데, 정말 부모와 자식간에 이런 대화의 기술이 꼭 필요한 것일까?

 

내가 자랄 때를 생각하면 부모와 대화는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엄하고 말이 없으며 가끔 중요한 일에 야단치는 분.

엄마는 '밥 먹어라', '공부해라' 같은 지시만 말하는 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떠들고 놀면서 자랐다.  

그런데도 우리는 잘 자랐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서강대 영문과)가 아버지 장왕록 교수를 회고하며 쓴 글을 읽었다.

북에서 월남한 장왕록 교수는 남쪽에 기반이 없어서 늘 단칸방살이였는데 아버지는 그 좁은 방 아랫목에서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계셨다. 아이들은 웃목에서 숙제도 하고 놀고 싸우고 웃고 했다.  

지금으로 치면 빵점 아빠였던 셈이다. 아이들과 대화도 않고, 함께 놀이공원에 가거나 목욕탕에 가거나 외식을 하는 등의 추억은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그냥 저렇게 사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말로 하는 대화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무언의 소통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경상도 산골짝의 가난한 집에서 넷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독학으로 자수성가해서 군인이 되셨다. 그러면서 기독교에 귀의하셨으니 그 자존심과 의지, 고집스러움과 권위의식은 이룰 말할 수가 없었다. 가끔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우리 남매들을 즐겁게 해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정말 숨도 못 쉬었을 것이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 도배장판도 혼자 하고, 밥짓고, 옷 지어입히며, 작은 땅에 야채 키우랴, 친척과 어르신들 돌보랴 꾀꼬리같은 노래솜씨도 발휘하지 못하고 일만 하셨다. 유일한 나들이가 교회가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단칸방에서 여섯식구가 새우잠을 자면서도 우리들끼리 떠들고 웃고 나가 놀고 넘어지고 울고 하면서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나 각자 근면, 성실, 책임, 정직, 겸손과 같은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무언의 교육을 받았다. 아주 강력하게! 

 

어쩜 요즘 정말로 의사소통이 필요한 것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인지 모른다.

또래와, 형제자매와, 나무와 풀과 돌과 흙과 동물, 곤충들과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스스로 갈등과 화해를 연습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

부모는 일차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의식주와 안전, 사랑과 같은 기초적인 욕구들을 채워주는 일에서 시작하여

사람됨의 전형, 즉,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굳이 의사소통을 한다해도 그것이 꼭 '말'이어야 할까. 부모와 자식간에 지식과 기술이 그렇게 중요할까.

 

나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말로, 생활로 모범을 보이는 일에 더 애썼으면 좋겠다.

정직, 성실, 책임, 자유, 겸손, 평화, 사랑, 신의, 존중, 배려, 근면, 인내,,, 그런 가치를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말이다.

말로써가 아니라.

 

 

 

 

 

 

'동향과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교육희망선언  (0) 2012.05.23
좋은 부모 2  (0) 2012.05.21
허무함에 맞섬!  (0) 2012.05.19
허무함  (0) 2012.05.18
공감  (0) 2012.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