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사업을 하면서 변한 것은 무엇일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성적이 올랐나, 어떻게 착하고 바른 성실한 아이가 되었나, 가난한 아이들이 무슨 지원을 받았나, 무슨 상을 받았나 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주관부서인 교육계에서는.
그런데 변화는 오히려 그밖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나.
교육복지사업을 2003년부터 처음 시작한 강서지역. 가양4복지관에 가보니 배울 점, 칭찬할 점, 고마운 점이 많았다.
교육복지사업 10년이 흐르는 동안 교장, 교감, 사업담당 부장, 담당교사, 학교 내 지역사회교육전문가와 교육청 프로젝트조정자까지 모두 계속 바뀌어왔다. 그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곳이 바로 가양4복지관, 그리고 이 사업담당 이효정 사회복지사이다. 가족복지, 지역사회조직화 등과 같은 분야별 핵심사업의 틀 속에서 교육복지사업의 지역 거점축 역할을 당당하게 해오고 있다.
처음에 만났던 아이들이 군인도 되고 대학생도 되고 직장인도 되었단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고향처럼 다시 찾는 곳도 바로 복지관이란다. 선생님도 바뀌었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도 바뀌었고 학교는 생소하지만 복지관은 늘 열려있고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회복지사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지관 사업의 강점인 것 같다. 교육복지사업이 없어져도, 예산이 줄어도 복지관은 꾸준이 주민들과 함께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양4종합사회복지관 홈페이지 캡쳐
오는 19일에는 또 한 번의 '뒤뜰카페'가 열린다고 한다.
가양2동의 통, 반장이 중심이 되어 1993년부터 조직되기 시작한 나눔누리회. 나눔누리회는 가양동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주민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매일 아침 동네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공진초부터 시작했던 이 사업은 지금은 공진중에서도 하고 있다. 공진중은 중학생들의 정서적 특징을 감안하여 선생님들이 담당하고 계시다고 한다. 처음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올까?' 하고 회의적으로 대하셨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복지관이나 모금회의 지원만에 의지하지 않으려고 이 카페를 연다. 또 알리고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의미도 있다.
이곳 어머님들은 내 아이, 네 아이 가리지 않고 관심갖고 팔 걷어부치고 도우려고 하신다. 복지관에서 무얼 받을까 하지 않고 오히려 복지사들도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신단다! 당당하고 멋지시다.
어떤 이들은 빈민복지를 얘기하면 흔히 '거지근성'이니 '노예근성'이니 하며 험담을 한다. 현장을 모르고 아주 소소한 일화 하나 듣고 본 것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복지관은 이처럼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돕고 돌보도록 밀어주고 끌어주고 세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복지관 주변을 걷다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구나.. .싶다. 마치 시골 장터에 온 것 같은 구멍가게들은 정겹고 지갑을 열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 동네 길에선 차들도 천천히 지나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스스럼없이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도 구수하시다!
훌륭하다!
교육복지사업을 하는 교육청 동네마다 이런 복지관이 하나씩 있다면 정말 좋겠다!
둘.
그밖에도 지역의 변화들이 많다.
어떤 피씨들은 교육청에 자리를 잡아놓고 다시 지역 네트워크 활동가로 돌아갔다.
어떤 동네에서는 가정방문을 하다보니 하도 딱해서 피씨와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지역의 유관기관 담당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씨름한 끝에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품을 쉼터를 꾸리기로 했다. 다행히 전세집도 지원을 받게 되어 바빠졌다.
어떤 곳에서는 아이들과 여행프로젝트를 하며 꿈과 의지를 불어넣던 학교사회복지사가 아예 청소년책임공정여행을 주 사업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을 출범시켰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어떤 이는 지역에 공부방이 아닌 '놀이터'를 꾸려서 문화를 매개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노래하고 춤추고 공부하고 시도하고 꿈꾸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다. 청소년 거리축제도 해보고, 연극도 해보고, 청소년들이 직접 카페도 열게 해본다.
이런 일들이 교육복지사업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아이들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허무함.
내가 허무하다고 좌절하는 때는 하는 한발짝 물러서서 볼 때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볼 수록 허무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을 수는 없다. 현장에 있다보면 어떻게든 꼼지락거린다.
꼼지락 거림, 그것이 곧 살아있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용감한 이들이 결국, 마침내 '일 냈다'. 그 '일'도 가지가지다.
그래서
허무함에 맞서는 이들. 그들덕분에 교육복지사업은 허무함 만은 아니다.
교육계에서 측정하려는 온갖 평가로는 허무함밖에 확인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학교밖에 있다.
즐겁고 용감한 동지들에게 Cheers!
계속 사고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