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

샘연구소 2012. 6. 13. 22:30

 

 

포스터를 보고 이런 영화는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부유한 백인과 흑인 돌보미의 우정이라고? 왜 맨날 그런 거지?

shit!

 

그런데 평들이 다 좋았다.

그냥 심심할 때, 고전적인 '따스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 한 번 보자고 다운을 받아두었다. 그래도 헐리우드 영화 아닌 프랑스 영화니니 실망시키진 않겠지... 하면서. 그러다가 정말로 무료했던 어느날 밤 보게 되었다.

보고나니 생각할 것들을 남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릭 토레다노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TV 다큐를 다시 영화한 것이라고 한다.

갑부중에 갑부인 필립이라는 이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사고로 목 아래 전체를 못 쓰게 되었다. 게다가 아내도 암으로 사망. 입양한 딸은 사춘기. 꼭 이렇다. 불청객 손님은 한꺼번에 입장하신다.

 

이때 돌보미 겸 간호사로 채용된 이가 드리스였다. 그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알제리(내 기억이 맞나?...) 출신인데 친척이 자식이 없자 입양되어 프랑스로 어릴 때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로 이분은(고모 아니면 이모나 숙모..) 아이를 갖게 되었고 결국 한참 어린 동생이 6명이나 생기게 되었다. 여전히 가난하고 숙모는 하급 노동자이다. 아이들은 많은데 그 중 10대에 접어든 남동생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고도 친다. 사춘기 아니랄까봐...

 

프랑스나 스페인에 가면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가난하게 모여산다. 도심 거리에서 이들이 모여다니는 것을 보면 흠칫 긴장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여행자 숙소도 안전하지 않다고도 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든 프랑스라면 드리스가 사는 동네는 우리의 교복우사업인 ZEP를 시행하는 마을일 것이다.

그런 동네의 빈들대는 백수청년 드리스.

내가 생각해도 그런 청년을 들인다는 게 한심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맺어진다.

인연이란 참 묘한 것.

그리고 이들은 좌충우돌끝에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드리스 역의 오마 사이는 눈빛이 참  맑고 장난스러움이 철철 넘치는 것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것만 같다.

이 역을 하기 위해 프랑스의 빈민가 흑인들처럼 보이려고 살도 10킬로를 빼고 근육을 만들고 머리도 짧게 자르고 나타났다고 하는데 중간에 한 번 멋진 근육질의 몸통을 보여준다. 아름답다!

 

그는 문화적으로 고용주인 필립과 맞지 않는다. 일상 하나하나가 다 불편하고 어색하다.

필립도 역시 그런 드리스가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빈곤과 부유함은 삶의 결 속에 속속들이 밴 '문화'에서 갈등하게 된다.

 

조지오웰은 자신의 지식인 중산층 취향을 자조하면서 탄광 광부들의 삶의 '냄새'를 자동적으로, 자율신경계의 반응처럼 거부하는 자신을 고백한 적이 있다. '뼛속까지' 하층민이 되지 못하면서 머리로, 말과 글로만 그들을 옹호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귀여운 여인'이란 영화를 보면 콜걸 출신의 여성을 부유한 상류층 취향으로 만들기 위해 공들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외모는 쉽게 비싼 옷으로 가릴 수 있지만 말투, 걸음걸이, 무엇보다 밥 먹는 모양 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다름을 뛰어넘는 우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과연 가능할까?

아마 필립이란 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드리스의 말도 안 되는 일탈행동들, 필립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언행들이 제 의지로는 밥 먹고 말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필립에게 청량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장애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없다보니 '배려'할 것도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대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그를 감동시킨다.

 

 

드리스에겐 무의미하고 지겹기만 한 필립의 취향, 플래식도 함께 들어준다.

비싸기만 하고 무의미하고 고루하고 답답하지만, 저 나름의 상상을 펼쳐 이해하면서..

 

드리스의 세계는 대중음악의 세계다. 자유롭게 '몸'을 쓴다. 이 유쾌함!

고상하고 품위있는 필립의 친척, 지인들도 몸을 들썩이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이론이나 의사소통 기술보다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소통한다.

이거 한다고 안 죽어요...

   

우아함으로 위장한 펜팔놀이 대신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열고 여인을 만나게 주선한다.

그리고 불안과 좌절, 포기 끝에 그녀를 대면하고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

 

필립이 마침내 드리스와 함께 자신의 인생을 불구로 바꾼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은

그가 '내면의 힘'을 다시 갖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요즘처럼 '배려'나 '이해'란 말이 넘치는 시대가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배운 것은

얄팍한 '배려'나 '이해'는

순수한 마음, 정직, 자연스러움, 존중, 같은 가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드리스가 가정을 돌보기 위해 필립을 떠난 뒤 그 자리를 대신한 도우미들은

몸에 나쁘다고 담배를 못 피우게 하고, 그를 상처줄까봐 너무 조심하고, 건강에 나쁘다고 잔소리를 하고

갑작스런 상황에서는 무언가 자기가 생각해내지 못한 지침에 어긋나서 잘못된 서비스를 하게 될까봐 당황해한다.

 

어쩌면 우리들도 지금 필립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존재들이다.

돈이 없어서, 권력이나 권한이 없어서,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서, 없어서 없어서, 빼앗겨서 억눌려서...

이럴 때 드리스와 같은 일탈과 저항은 새로운 상상력과 생명력의 실마리가 될 것 같다.

 

드리스가 필립에게 담배를 권하던 장면에서는 영화 <리빙 라스베가서 Leaving Las Vegas>에서 세라(엘리자베스 슈)가 죽어가는 알콜중독자 벤(니콜라스 게이지)에게 오히려 술을 먹게 해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나 처절한 사랑이고 배려인가.

우리는 곧잘 청소년들에게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하면서 자꾸 벽을 높이고 몰아세우기만 한다.

대신에 "그래, 해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까짓 담배, 가출? 진짜 중요한 건 말이야. 네가 소중한 존재라는 거야."라면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몸을 하나도 못 쓰는 장애인도, 문제행동 투성이인 여드름쟁이 우리 청소년들도 다 소중한 존재이다.

 

 

영화에 등장하던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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