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詩)가 좋다.
화장실엔 꼭 시집이 한 권 꽂혀있다.(^^;;)
여행길에 시집 한 권을 곧잘 챙겨간다.
김수영, 신경림, 정호승, 이해인, 이정록, 이시영, 김용택, 도종환, 마종기....
그 외에도 좋은 시인들이 많다.
개인시집도 가지고 있지만 모음시집도 좋다.
모음시집 중에서는 시인 신경림이 엮은 <아침의 시>(북갤럽),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창작과비평사), 안도현이 엮은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나무생각), 문정희가 엮은 <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중앙M&B), 그리고 <국어시간에 시읽기 1/2>(나라말)을 좋아한다.
한 때 큰 딸애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워서 암송하며 시골길을 드라이브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얼마나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는지. 딸아이가 드디어 '동지(同志)'로 소통하는 느낌, 뿌듯함, 기특하고 자랑스러움.
한동안은 작은 모임 자리에서 좋아하는 시를 암송하기도 했다.
내가 시를 암송하는 버릇은 교사 초년병 시절 성래운 교수님의 그 포효하는 듯한 시 낭송에 반해서 따라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 습관도 가물가물해졌다.
영화 '일 포스티노(우편배달부)'에서 시골의 무지랭이이던 청년이 망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전속 우편물 배달부가 되면서 '시'를 알게 되고 시를 만들게 되는 과정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여인을 향한 사랑은 시를 낳고, 그 시는 온 민중에 대한 사랑으로 자라서 결국 그는 스러지게 된다. 시인은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시는 은유다.'라고. 은유, 메타포의 힘.
부모가 자녀와 좋아하는 시를 같이 암송해보는 것,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성적 올리라고 하고 칭찬하기보다, 시를 하나 암송하면 칭찬하고 상주는 건 어떨까.
선생님이 아이들과 좋은 시를 암송해보는 것. 매달 또는 매주 한 편의 시를 교실에 붙이고 함께 아침마다 낭송해보면 어떨까.
어떨까?
어떤 훌륭한 '인성지도 프로그램'보다 쉽고도 교육적이고 인성지도에도 부작용없고 강력하지 않을까?
사랑
- 이해인
1
그저 가만히
당신을 생각만 하는데도
내 조그만 심장이
쿵쾅거려요
아무도 모르게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내 심장이 멎을까보아
걸음을 더 빨리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2
진작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진작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이해인 시집 <작은 기쁨> 중에서
사춘기의 여고생들과 이런 시를 읽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일까.
물론 이해인 수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겠지만...
교사수첩 15
어느 날
- 여태전
아이들보다 내가 더
공부하기 싫은 날
아이들보다 내가 더
놀고 싶은 날
왼종일
창틀에 기대고
하늘만 보고 싶은 날
분필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가
칠판에 짤막한 시 한 편 적어 놓고
아무 말
아무 표정 없이
구름만 보고 싶은 날
- <국어시간에 시읽기 2>(나리밀) 중에서
선생님들도 이런 시를 쓴다. 지금은 마산의 공립대안고등학교 태봉고등학교 교장이 되신 여태전 선생님의 시다.
아이들과 함께 외운다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살며시 웃음이 피어오를 것이다.
봄밤
- 김수영(金洙暎)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 시집 <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 중에서
이건 우리 학교사회복지사, 지역사회교육전문가 동지들을 위하여.
여름을 향해 가는 봄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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