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샘연구소 2012. 6. 13. 21:25

<어쩌다 중학생같은 걸 하고 있을까>

쿠로노 신이치 지음, 장은선 옮긴, 뜨인돌 펴냄.

 

 

얼마 전 읽은 '청소년' 소설 책 이름이다.

그러게...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읽다보니 삐직삐직 웃음이 나온다.

어쩜 정말... 맞아 맞아...

 

일본의 어느 중학생 소녀 '스미레'가 사춘기를 겪어가는 과정인데 부모님을 보는 눈, 친구들과의 관계

공부, 선생님, 학교...

모든 것이 참 비슷하다.

아이의 눈에 비친 부모들의 행동도 정말 나를 보는 것 같아 우습다.

소녀가 본 대로 중학교 시절은 정말 폭풍 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중1때부터 왠지 불행해질 것 같다고 예감했지만, 진짜로 '굉장한 불행'이 닥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완전히 다르다. 당연한 소린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이 될 때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된 순간 마치 다른 차원에 내던져진 것 샅았다. 양쪽 다 한 살 더 먹은 것뿐인데

 

정말 그렇다. 초5에서 초6은 그냥 그렇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

그런데 어른 입장에서 볼 때는 초6 때 거들먹거리던 녀석들이 중1이 되면 완전히 '새삥'이 되어서 '시야시'가 되어있다. (이런 말 써도 되나?...-_-;; )

 

교복, 묘하게 높아진 철봉, 과목별로 바뀌는 선생님, 초등학교 땐 없었던 것들에 익숙해지느라 시간을 잡아먹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제일 큰 차이는 반 아이들이다.

 

아... 아이들은 이런 것을 먼저 느끼는구나...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극히 평온했다. 왕따 따위는 구경도 못해봤다. 우리 6학년 1반 아이들은 모두 평화주의자였다. 졸업할 때는 반 친구들 전부 목놓아 울었다. 이토록 완벽한 친구들을 강제로 갈라놓은 교육제도의 잔인함을 원망하면서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어?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모습이랑 똑같네...

나도 초등학교 때 3개반씩 있었는데 나는 6학년 3반이었다. 중학교에 가서 정말 앨범 펼쳐놓고 친구들 얼굴 보면서 많이 울었다. 삭막한 중학교... 지금 생각하니 정말 우습다. 하지만 그 땐 진짜 그랬다. 우리 초등 동창들인 지금도 친해서 전체 동창회보다도 우리 반창회가 더 잘 되고 있다. 중학교에 오니 선생님들도 무섭고 아이들도 살벌하고...

 

하지만 중학교에 와보니  역시나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녀석들은 그야말로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과 비교하면 우리들은 레벨이 달랐다. 나와 같이 1학년 3반이 된 아이들 중, 나카바라 초등학교에서 온 여덟 명의 아이들은 낯선 곳에 던져진 고양이처럼 얌전했다. 초등학교 때는 꽤 개구쟁이였던 남자아이도 다른 학교에서 온 녀석들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모양이었다. 그럴만도 하다. 책상에 침을 뱉지 않나, 교실 창문을 박살 내지 않나, 수업 시간에 야한 만화를 읽지 않나.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이런 역동을 느꼈다. 특히 초등학교 때 사립학교에서 '곱게' 자란 아이들이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도 꽤 보았다. 더구나 남학생들의 경우는 좀 거칠게 자란 아이들이 재빨리 세를 파악하고 권력을 잡는 민첩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선생님 말씀대로 '수컷의 세상에서는 힘의 서열이 평화를 가져온다.'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대로 굉장하다. 수업 중에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학교에서 정해 준 책가방은 브랜드 백으로 바꿔 들고, 교복치마는 팬티가 보일만큼 짧다. 화장에, 염색한 아이까지 교실이 완전히 나이트클럽이다. 정말로 중학교 1학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와중에 교사들은 참 싱겁다.

 

그런데 우리 중학교는 너무 물러 터졌다. 선생님들이  의욕이 없다. 교실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야단 한 번 안 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살았다는 얼굴을 하고선 교무실로 도망가 버린다. '일단 법적 노동시간은 채웠으니 됐어. 애들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건 말건 나랑은 상관없잖아.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알 게 뭐야.' 딱 이런 느낌이다.

 

어쭈... 어린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다만 조용히 있을 뿐이다. 사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이런 야단법석을 일일이 관여할 틈도 없고 여유도 없다. 이런 가운데 주인공 소년는 조용히 관망하면서 방관자처럼 지내기로 한다. 일종의 '스따'(스스로 왕따가 된 듯이 살기)가 되기로 한다. 아니, 왕따인 셈이다.

집에선 평범한 가정의 외동딸. 학교에서도 평범한 학생. 성실하고 착한 아이다. 그래도 사춘기는 사춘기다.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주변이 돌풍 몰아치듯 하니 본인도잠잠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 사춘기를 치르는 이야기가 알콩달콩 재미나게 펼쳐진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니 역시 내가 변했다는 사실이 팍팍 와닿는다. 충격이긴 하지만 만일 변하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충격이었을 것 같다.

평생 나비가 될 수 없는 불구 애벌레가 된 것처럼.

 

그래. 그렇단다. 너희는 나비가 되려고 이제 애벌레를 지나 고치단계로 들어선 거야.

주인공은 여학생답게 결국 혼자 있기를 견디다못해 이 무리, 저 무리에 끼어본다. 그리고 남학생에게 두근거리는 마음도 느끼며 혼자서 '밀땅'도 해본다. 정말 여자애 들은 '무리에 속하기'가 중요한 사춘기의 키워드이다.

 

역시나 지옥같던 열네상과 중1, 중2를 거쳐서 중3이 되자 모든 게 희한하게 술술 풀려간다. "지금까지 충분히 고생했으니까 하나님이 호의를 베푸신 건지." 어른의 눈으로 볼 땐 철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열아홉이 된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노력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2때의 나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잘 안 될 때는 지나치게 고민하면 안 된다. 좋아하는 간식이나 따뜻한 차라도 들면서 폭풍이 자니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폭풍우는 금방 지나갈 테니까. 절데로 리스트 컷(wrist cut ; 손목을 칼로 긋는 자해행위)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열아홉 살이 된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러면서 힘든 시기를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워하고, 무작정 부모님에게 기대고 탓하기만 했던 부모님의 한계도 수용하게 된다. "어떤 부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는 걸 나도 이제 알게 됐으니까."

 

 

제목만큼이나 상큼발랄한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중학교시절, 요즘 중학생들의 세상 속으로 잠시 즐거운 여행을 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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