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Le Havre는 프랑스의 서북쪽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모네의 그림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이 지명이 제목인 영화.
프랑스의 휴양지 바닷가 모습도 아니고 항구도시의 갱단 이야기도 아니다.
아마 큰 창고 안의 세트장에서 다 찍었을 저예산 영화가 아닐까 싶다. 제작에는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가 함께 했다. 배우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영화의 화면은 마치 1960년대 무성영화나 다큐영화처럼 무채색에 가깝다. 음악도, 효과도 거의 없다. 그런데 2011년, 작년에 나온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묘한 매력에 이끌렸다.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앙드레 윌름스(마르셀 마스), 카티 오우티넨(알레티), 장 피에르 다루생(모네))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핀란드 여행을 가면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만든 <과거가 없는 남자>(The Man Without A Past, 2002) 라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 만났다. 그 영화 역시 <르 아브르>처럼 마치 무성영화시대의 영화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속에는 핀란드 빈민의 삶이 무채색처럼 건조하고도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진솔하고 따스하게 그려져있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처음에는 우체부, 접시닦이, 영화평론가로 일했으며, 후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의 형 미카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출연했다. 80년대에 형 미카와 빌 알파 영화사를 만들어 연간 10편 남짓 생산되는 전체 핀란드 영화의 1/5를 제작했다. 처음에 이들은 외국의 우수한 영화를 배급하는 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머지않아 갖고 있던 두 개의 극장을 모두 팔아버렸는데, 그들이 모든 종류의 영화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튼 특별한 영화들을 만든 이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인 마르셀 막스는 젊어서는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구두닦이 할아버지다. 구두닦이통을 메고 기차시간을 따라 목 좋은 곳을 옮겨다닌다.
그의 주변엔 베트남 난민이면서 중국인의 등록증으로 살아가는 다른 구두닦이도 있다.
이들은 비가 오면 일을 못 가고 집에 일찍 들어가거나 작은 푼돈으로 동네 선술집에서 와인 한 잔, 또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두고 주인이나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기도 한다. 모두 가난하지만 소박한 '변두리인생'들이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항구의 뒷골목에 아프리카(아마도 알제리?)에서 영국으로 밀항하려다 못 한 난민 아이가 밀려들어오게 된다.
어느 날 마르셀이 그를 발견한 후로 그는 용의주도하게 아이(이드리사)에게 먹을 것을 건네고,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숨겨두고 아이를 살려보낼 방법을 찾아나선다.
와중에 아내는 중병(아마도 급성 암 같은 것)으로 입원하게 된다.
마르셀은 아이를 살릴 방법을 찾아 칼레의 난민촌을 찾아가고, 이미 그곳을 떠나 빈민수용소에 갇힌 아이의 할아버지를 만난다. 아이의 아빠는 죽었고 엄마에게 데려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셀은 아이 엄마가 산다는 런던의 주소를 받아온다.
하지만 보낼 방법은 밀항뿐. 돈이 많이 든다. 동네 사람들은 조용히 그와 논의한다. 그리고 역시 초라한 동네의 늙은 퇴물 가수 친구를 불러서 자선음악회를 한다. 가수는 노래한다. 이민자들의 삶을. 구리공장에서 일하는 노예같은 삶을 사는 노동자라면서.
거기서 모인 돈에 자기 전재산을 보태서 결국 아이를 밀항선에 태운다.
동네 경찰 모네는 윗선의 강압 때문에 계속 아이와 마르셀을 맴돌지만 결국 마지막엔 모른 척 아이의 도주를 방조해준다.
아이를 태운 배는 떠나고, 마르셀은 형사와 선술집에 들어가고 중병으로 입원했던 아내는 기적처럼 병이 사라져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아내의 병은 정말 나은 것일까?
아이는 영국으로 가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경찰(형사)는 '도주 방조'를 들켜서 좌천, 파면되지 않을까? 그렇게 살면서 계속 진급을 못한 채 동네 경찰로 머물게 될까?
해피엔딩 같지만 사실 많은 미제를 남겨둔 채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나 프랑스의 낭만을 파는 화려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무언가 퇴색되고 초라한 극도로 절제된 감정표현과 음악, 미술 효과들 속에서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가난한 노동자, 상인, 어부, (한때 불법이었을) 이주민인 동네 사람들의 선행(먹을 것을 주고, 아이를 숨겨주거나 돌봐주고, 음악회를 열어주고,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의 도주를 돕는 등...) 외에도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 구두닦이 할아버지는 아내를 병문안 갈 때 꽃을 들고 간다. 노동조합 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했던 가난한 노동자이거나 학자 출신의 외국인 할아버지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가난하지만 교양있고 정의를 알았으며 따스한 매너남들이었다. 또 아내는 남편을 위해 중병이란 사실을 숨긴다. 의사도 거기에 마지못해 동조한다. 사람들은 서로 담배를 권하고 나눠피우고, 술을 산다.
이들 사이에는 '신뢰'와 진실함, 배려가 있다.
물론 빈민촌에도 폭력, 불신, 더러움, 거짓말, 증오 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고상하고 깨끗한 부자촌이라고 해서 없나? 우린 왜 굳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악덕이 있는 것처럼 치부하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인간 속에 있는 것이 환경 때문에 더 드러나보이는 것 뿐 아닐까? 사실 가장 큰 도둑, 강도는 버젓이 권력을 누리고 오히려 추앙을 받고 있지 않는가?
요즘 복지국가에 대해 논의가 웅장하다.
교육복지사업이 힘차게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복지정책들을 통해 무엇을 몰아내려고 하는가?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가?
이 영화를 통해 가난을 몰아내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 땅에서 없앨 듯이 말하기보다
가난 속의 인간다움, 가난한 이들을 인간으로, 이웃으로 바라보는 눈을 다시 씻게 된다.
잠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진출처: 영화 <르아브르> 공식 홈페이지 http://www.janusfilms.com/lehavre/
영화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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