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어머니

샘연구소 2012. 9. 17. 14:29

영화 <피에타>를 보았다.

 

전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두어편 보고 그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보려고 했는데

여론과 언론은 그를 괴짜라고 왕따시키더니만 이번에 해외에서 큰 상받았다고 너무 소란을 떨어서 오히려 안 보고 있는데

한 친구가 그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다.

CJ 등 배급사의 독점으로 좋은 독립영화들이 국내 영화관에 걸기도 힘들다는 말에 '사회적 행동'으로서 그 영화를 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나마 의사를 표현해야 할 것 같다고. 흐흐...

 

가난하고 가난한. 그래서 몸뚱이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삶이 나온다.

서로 물어뜯고 제 살도 잘라내면서 산다. 죽지 못해 사는 게 바로 그런 거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수억, 수조의 탈세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잔꾀 부리지 않고 죽어라 미련하게 일한 것 밖에 없는 사람들.

우아하고 깔끔하고 낭만적인 고상한 어투와 화면을 기대했던 중산층적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역겨울 것이다.

그렇다고 재미나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액션이나 코믹도 없다.

그런데 이 삶이 지금 이 순간 한반도에선 실제로 누군가의 삶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바로 내 앞에, 옆에, 뒤에 있다.

 

 

 

 

주인공 이강도는 엄마가 없다. 그리 30년을 잘 살아왔다.

청부폭력업자다. 빚 받아주고 약자들 등쳐먹고 살아가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 인간들에 빌붙어 먹고사는 쓰레기같은 폭력배이다.

감정도 윤리도 없다. 그의 먹이는 시궁창. 더이상 기댈 곳도 파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엄마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용서라하며 그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그런 냉혈한이 차츰 엄마 앞에서 녹아내린다. 영화라서 그렇겠지만 너무 쉽게. 현실은 그러기 힘들 텐데..

아무튼 그래서 그의 몸엔 더운 피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삶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흐트러진다.

그는 엄마에게 간절히 매달린다. 엄마를 통해 구원받고자 한다. 엄마를 지키고 싶어한다.

 

 

 

 

엄마를 다시 회복하게 되자 그의 먹이이던 약자들의 삶이 비로소 유채색으로 체온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이들도 치매의 노모를 모시고, 아빠가 된다고 제 몸을 버려서라도 아이를 지켜주고자 한다.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지금의 삶이 죽음보다 더 낫다고만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돈에는 복수도 따른다... 고 그 '엄마'란 여자가 말한다. 복선이었다.

그녀는 이강도의 엄마가 아니라 그 때문에 죽은 채무자의 엄마였다. 연기를 한 것이었다. 너무나 소름끼치게 잘.

그녀는 자기를 죽음으로까지 던져서 이강도에게 복수한다.

이강도는 그러나 그녀와 심은 나무에 물을 주고, 비록 그녀가 친엄마는 아니었더라도 그녀 곁에 나란히 누워본다.

 

그 역시 속죄의 결심을 한다. 그대론 살 수 없기에.

그래서 그가 망친 다른 채무자의 트럭 밑바닥에 몸을 매달고 차에 끌려간다.

긴 고속도로에 그의 몸이 남기는 핏자욱이 길게 남는다.

 

다른 김기덕의 영화에서 감독 자신이 배우가 되어 거대한 돌을 끌고 언 산을 맨발로 오르던 장면이 떠올랐다.(오래 전 본 영화라 기억이 정확한지는 좀 자신이 없다)

속죄.

 

그래서 피에타.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죄악에서 용서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그 구원의 열쇠는 어머니, 모성이 가지고 있다.

 

 

 

과연?

여기서 다시 얼마 전 개봉했던 <케빈에 대하여>란 영화도 떠올랐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중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면 싸이코패스적인 범죄자들은 대개 어린 시절 '모성애착'이 잘못되었다고들 심리학자들이 인터뷰를 한다.

공감간다. 많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자고?

엄마가 다 뒤집어쓰면 되는 거야?

나쁜 놈들만 그런 거야? 그 놈들만, 그 놈을 낳고 만든 엄마들만 책임지면 되는 거야? 

 

우리는 종종 개인에게, 그 개인과 엄마간의 둘만의 관계로 너무 좁혀버리지 않나 걱정된다.

그럴 수밖에 없던,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살기 힘든 그런 여건들에 나도 한 발 가담하고 있음은 너무 자주 외면한다.  

 

주변의 어린 이강도들, 좀 덜 한 이강도들이 보인다.

어쩔 것인가.

피에타.

자비를 베푸소서.

 

 

 

 

 

 

 

 

 

 

 

 

'책과 영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빨래'  (0) 2012.10.03
의자놀이  (0) 2012.10.03
아이가 웬수?  (0) 2012.09.13
교육의 상상력  (0) 2012.09.13
힐링이 대세  (0) 201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