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의자놀이

샘연구소 2012. 10. 3. 09:49

얼마 전 공지영씨가 <의자놀이>란 책을 냈다.

2천명이 넘는 해고자를 낸 후 23명의 삶을 앗아간 쌍용차 사건을 정리한 '르뽀르타쥬'라고 했다.

사실 르뽀라고 하기에는 여기저기 나온 자료들을 짜깁기 한 게 대부분이고 그동안 자기가 이런 현실을 외면한 것에 대한 반성과 회한이 마구 뒤범벅되어 있어서 무슨 고백록같이 질척거린다. 그래도 읽을 만 하다...

 

 

 

 

의자놀이.

의자를 두고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주변을 돈다. 의자수는 사람수보다 한 두 개 적다.

노래가 멈추면 사람들은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야 한다.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은 술래가 되거나 그 놀이에서 'OUT' 된다.

 

그녀는 쌍용차 사태를 의자놀이에 빗대었다.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쌍용차 사태를 일자리를 서로 다투어 차지하게 하는 그런 의자놀이 정도로 비교될 수는 없다고 본다.

 

쌍용차. 벌써 2년이 지났나? 3년이 지났나?

그동안 한 사람, 한 사람 세상을 등지는 소식이 간간이 신문으로 전해올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신과의사인 정혜신 씨가 참다못해 평택에 내려가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했어도 여전히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

평택은 저주의 도시가 된 것일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고 쌍용차는 잘 굴러가고 있고 회사가 '정상화' 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왜 그럴까.

 

쌍용차 사태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해보았다. 

잘 나가던 튼실한 국가의 자동차 생산공장을 상하이차에 팔았다. 

상하이차는 투자약속도 하고 재정능력도 있었지만 그 약속을 배신하고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소유한 동안 기술을 다 가져갔다.

상하이차는 더 가져갈 것이 없다고 판단하자 회사가 망해간다며 한국에 엄살을 피웠고 이것을 안진회계법인이 서류를 도왔다.

그리고 갑자기 건물과 시설이 똥값이 된 상하이차는 다시 헐값으로 인도의 마힌드라사에 팔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KPMG가 도왔다.

이 과정에서 2천여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이름은 복잡하지만 어쨌든 회사 하나보고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오로지 노동력밖에 없던 사람들이 졸지에 쫓겨났다. 이들은 회사를 살려보려고 별 짓을 다했다. 웃긴다. 돈 댄 투자가들은 회사가 망하던 노동자가 다 쓰레기가 되든 자기 돈만 챙기면 그만인데 노동자들이 뭉쳐서 돈을 모으고 나라에 호소하며 회사를 살리겠다고 했다. 이렇다.

그러나 회사와 나라는 투자자들이 돈을 챙기는데 걸림돌이 되는 노동자들이 귀찮았다.

물건이면 그냥 버리면 되는데 사람들은 깽깽거린다.

그래서 나라 경찰, 검찰, 용역, 회사 다른 노동자들까지 몰아서 이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렀다. 전쟁이었다. 내가 믿던 나라, 내가 낸 세금으로 나에게 총을 겨누고 죽음의 약을 뿌리고 죽으라고 몽둥이를 내치는 모습.

 

그리고 쫓겨난 사람들.

그럴 수도 있다고? 직장을 옮기면 된다고? 그동안 돈 많이 받은 사람들이니 조용하라고? ...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책을 읽어보시라.

게다가 그 과정에서 가족, 동네 이웃들, 같이 일하던 동료들 사이에 금이 가고 갈등이 생겼다. 회사와 나라는 오히려 이들에게서 보험금, 벌금을 박박 긁어간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이들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심리치유로는 부족하다. 물리적,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학교폭력도 그렇지 않은가. 가해자가 멀쩡이 잘 나가는데 피해자만 상담하면서 '네 우울증이 너를 죽일 거야. 마음을 다잡아. 괜찮아. 힘을 내야지. 그리고 정 힘들면 이 약을 먹어..'라고 해봐야 쑈밖에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아빠가 가고,

엄마가 가고,

아들이 가고,

형제가 가고,

아이들은 방황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65569.html

 

 

요즘 국회에서 쌍용차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심상정 의원 등이 각종 문서들을 입수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다그치고 있지만 당시 경찰총장이었던 조현오를 비롯해서 돈계산의 숫자놀음을 도운 회계법인들은 모두 '배째라'식이다. 그리고 여전히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무대에 얼굴도 비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면 나와 우리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숨어서 내 지갑을 움켜쥐고 있을지 모른다.

밉고 화나고 부끄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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