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 김려령 장편소설
비룡소 2012
<완득이>에서 남자 아이의 세계를, <우아한 거짓말>에서 여자 아이들의 세계를 맛깔스럽게 그려낸 김려령이 이번엔 남여가 섞인 그림을 그려냈다. <가시고백>.
'가시고기'도 아니고, '가시고백'이라고?
그러나 예전처럼 첫장을 펼치기가 무섭게 끝장을 만날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아이들이 자기 속에 숨긴 '가시'를 고백한다.
어른이 했더라면, 전문가가 상담했더라면 그 가시가 과연 잘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잘못하다가는 나를 더 아프게 하거나 더 곪아들거나 깊이 박혀버릴 수도 있을 가시 뽑기.
아이들의 친숙함과 무의도성, 천연덕스러움, 함께 함, 고만고만하게 부족하고 덜 여뭄...
나는 그런 것들이 가시고백을 느리지만 후유증 없이 이루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인공은 해일이라는 남학생이다.
날 때부터 손이 빠르고 예민한 그는 전문 좀도둑이다. 친구들의 물건도 슈퍼마켓에서의 물건도 감쪽같이 해치운다. 넉넉잖은 살림살이에 마주하면 싸움만 하는 부모님과 띠동갑인 형 틈에서 외롭다고 여기며 자라며 아마 도둑질에서 자신감을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말한다.
'나는 도둑이다.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교사로서 학교에서 가장 곤란한 일이 도난사건을 만났을 때이다.
폭력사건이나 컨닝은 아무 것도 아니다.
도둑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다.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도둑잡는다고 여러사람 잡기 십상이고, 잡아봐야 물건은 사라졌을 수도 있고, 잡고 나도 또 없어지기도 한다. 잘못 짚으면 교사 품격 완전 땅에 떨어지고, 머리 아프고, 기분 찝찝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해일이 바로 고런 놈이다! 담임은 도난사건에 그다지 심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쿨한 말 몇 마디로 도둑 마음을 쿡쿡 찔러놓을 뿐이다.(그래, 잘 했어... )
해일의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있다.
엄마, 새아빠와 사는 대찬 십대 지란, 멋진 '반장병'자 다영, 욕에도 스타일이 있다는 진오, 거울아 거울아... 얄미운 짓만 골라하는 왕재수 미연이..
특히 담임 조용창 선생님은 완득이의 담임 똥주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아이들은 그를 '용창느님'이라며 숭배한다. 그는 쿨하지만 나름 제자한테 흠씬 얻어맞은 상처도 가지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 맺고 끊고 할 말 하는 그가 내가 봐도 매력적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지란이 새아빠에게 인강 듣겠다며 새아빠의 전자수첩을 가지고 학교에 왔는데 해일의 손이 그것을 그대로 두었을리가 없다. 감쪽같이 해치웠다. 지란은 새아빠와 모처럼 가까워지려던 시도가 오히려 꼬이게 되었다.
해일은 전자수첩을 인터넷 중고시장에 내다 팔았다. 완전범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영이가 거울로 보았던 것이다.
이후 해일은 유정란으로 병아리 부화를 시도한다. 이로써 담임과도 싸이친구가 되고, 학급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게 된다.
병아리 '아리'와 '쓰리'가 매개가 되어 친구들, 선생님과 해일이가 얽히고 섥히며 서로의 삶 속으로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다가 지란의 옛아빠에 대한 복수랄까 나쁜 짓이 실마리가 되어 해일의 도둑질이 드러나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해일은 김빠지게 자신의 도둑질을 고백하고 만다. '가시고백'.
사실 해일의 도둑질만 가시가 아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각자의 가시를 품고 산다. 그것이 이리 저리 살을 찔러 곪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남에게 드러내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함부로 뽑지 못한다. 가시고백은 이런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믿어주고 들어주고 받아주어라
내 심장 속에 박힌 가시고백,
이제는 뽑아내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