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감동한다.
너무 마음이 가벼운지도 모르겠다.
잘 웃고, 잘 감탄하고, 잘 감동하고, 잘 감사하고, 잘 울고, 쉽게 아파한다.
음악을 듣고도 감동하고 하늘을 보고도 감동한다.
매일 보는 여명과 노을에 감동하고, 노래와 풀잎에 감동하고, 늘 보는 익숙한 친구에게도 곧잘 감동한다.
나는 잘 드러낸다.
좋은 기분, 슬픈 기분, 힘든 몸, 아픈 마음을 잘 감추지 못한다.
싫은 사람 앞에서 싫은 기색 감추지 못하고, 좋은 사람 앞에서 안 그런 척 내숭 떨지도 못 한다.
안 그런 척 해도 소용없고 옷깃을 잔뜩 여미고 마음 단속을 꼭꼭 해도 소용없다.
다른 사람이 내 얼굴을 슬쩍 보기만 해도, 눈빛만 보아도 내 마음 속까지 훤히 비칠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에 잠시 다녀왔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바쁜 일정을 비우고 무작정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다행히도 내 대신 내 돈을 정기적으로 강탈해서 적금을 들어준 딸 애가 만기가 되었다면서 목돈을 건내주어 여행경비를 쓸 수 있었으니 이런 걸 보고 '하나님이 예비하셨다'고 하나...
여행 중 세 명의 친구를 만났다.
계획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일정은 기쁨과 감동, 발견과 감사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나눈 솔직한 대화들이 나에게 지혜를 일깨워주고 따스한 격려가 되었다.
친구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도 좋았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 넓은 강과 호수, 길가에 갑자기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던 사슴, 검은 곰, 다람쥐, 오포섬...
맑은 공기와 햇살, 하얀 구름.
자연과 사람에 날마다 감탄하는 여행.
한 친구는 내 그런 모습이 좋다고 했다.
나의 변덕스런 감동의 춤사위를 무어라 하지 않고 그래도 좋다고 하니 나도 좋았다.
감동이 없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건조하고 무미할까. 그렇지?
뉴욕 숙소에서 내다 본 허드슨 강과 부두
줄서서 기다렸다 들어가 앉은 'good enough to eat' 카페에서의 와플 브런치
친구 집 뒷마당에서 햇살을 쬐며 책을 읽었다. 다람쥐가 나를 관찰하곤 멀어져갔다
키크고 듬직한 나무들과 울창한 잎들. 그들을 보고나니 나도 키가 더 자란 것 같다.
넓은 땅, 넓은 하늘, 맑은 구름과 바람. 비록 정복자들이 일군 문명일지라도.
가을 빛을 띠기 시작한 뉴욕주 북부의 시골마을. 몇 백년된 겸손한 집과 너그러운 묘지.
촌스런 시골 카페에서 노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